지상파에서 이렇게 자주 주진우 기자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정권이 바뀌니 라디오뿐 아니라 TV방송 프로그램도 바뀌고 있다. 보다 바른 가치, 투명한 정치를 추구하는 정권이 들어서자 그동안 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던, 혹은 어쩔 수 없이 따랐던, 어쨌든 언론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지상파 채널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좌우 개념이나 지지 정당의 여부를 떠나 언론 장악의 징후가 농후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엔 꿈도 꿀 수 없었던 TV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연일 등장한다는 점이 그 증거다.

포문은 조심스럽게 SBS가 먼저 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간간히 강력한 잽을 날리더니 해적방송으로 시작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성장한 김어준을 공중파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섭외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취재보도를 병행한다는 점에서 그간의 시사토크쇼와 궤를 달리한다. MB는 물론 삼성과 네이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연루된 강원랜드채용비리 등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이야기를 다뤄왔고, 최근 방송에서는 동계올림픽 중 국가적 공분을 일으킨 여자 팀추월전 당사자인 노선영 선수의 단독 인터뷰를 공개했다. 단독 특종을 확보했다는 건 그만큼 영향력을 인정받았다는 방증이다.



그간 주눅 들었던 시사탐사 프로그램들도 날카로워졌다. 지난해 8월 이후 제작거부로 중단했던 KBS <추척60분>은 지난 7일 ‘삼성공화국 2부작’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해 5월 31일 경찰 수사까지 이끌어냈던 ‘한남동 수표의 비밀’의 후속보도이자, 방송과 수사를 통해 범법임이 밝혀졌는데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이건희 일가의 차명계좌 문제가 왜 자꾸 흐지부지되는지 또 한 번 파고든다. 10여 년 전 차명계좌의 실명전환과 사회 환원을 약속했던 이건희 일가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다.

‘정상화’라는 표현이 적합한 MBC는 탐사보도 전문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새롭게 런칭했다. 가드를 올리고 전략적으로 경기운영을 하는 대신 일단 펀치부터 선사하고 보는 이종격투기 선수 제롬 르 벤너나 마크 헌트를 보는 듯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우리 사회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삼성과 모피아에게 당할 무시무시한 반격은 계산치 않고 일단 강력한 펀치부터 날리고 시작한다.



지난 4일 ‘단독입수, 삼성-언론 유착 문자’ 편에서는 최기화 전 MBC 보도국장을 비롯해 언론사 간부들이 삼성의 장충기 전 삼성그룹 사장에게 보낸 눈뜨고는 못 볼 문자메시지를 단독 보도했다. 한 언론사 간부가 보낸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봐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저희는 혈맹이다”라는 범죄느와르 영화에서나 볼법한 메시지 등이 공개되면서 세간에 떠돌던 삼성과 언론사 간의 유착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진우 기자의 방송 입성이다. 2015년 백종원과 스타셰프, 2016년 설민석을 비롯한 인문학 강사, 2017년에 유시민 작가가 방송가의 새로운 핵으로 치고 들어왔다면, 올해는 주진우 기자가 그 바통을 넘겨받는 모양새다. MBC에서만 두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트위터에서 펀치력을 연마한 배우 김의성과 <스트레이트>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파일럿 프로그램 <판결의 온도>에도 패널로 참여한다.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의구심을 소재로 삼은 만큼 이 프로그램 또한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예능이라 분류할 수 있는 KBS2의 신작 <1%의 우정>에도 출연하고 있다. 극과 극의 인물이 우정을 만들어간다는 관찰형 예능으로 김희철과 짝을 이뤄 다니면서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공개했다. 이처럼 전문 분야인 시사 콘텐츠부터 일상 예능까지 활발히 섭렵 중인데, 세 프로그램 모두 새롭게 런칭한 신생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5년 <힐링캠프> 이승환 편에 ‘강동모임’의 일원으로 출연했다가 통편집 당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의 증표라 할 수 있는 캐스팅이다.

<추적60분>의 정범수 PD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9년 동안 삼성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많은 언론사와 프로그램이 감시를 하지 못한 결과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언론인들의 자각이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며 어느 정도 구체화되는 듯하다. 물론, 이 또한 패션으로 지나갈지, 삼성에 굴복하게 될지, 아니면 언론사들이 탐사 보도를 놓고 취재 경쟁을 펼치는 그림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난 9년과는 다른 이야기와 사람들이 방송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시즌 개편은 충분히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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