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전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나의 아저씨’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tvN 새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방영 전부터 많은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작품이었다. tvN <미생>, <시그널> 김원석 PD와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 tvN <또 오해영> 박해영 작가의 조합은 흥미롭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논란의 대상이었다. 특히 성평등 문화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시대에 남녀 간의 권력차를 낭만으로 포장하는 일명 ‘삼촌 로맨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도깨비>, <아르곤>, <블랙>, <미스터 선샤인> 등 최근 tvN이 방영하거나 준비 중인 드라마들이 유독 남녀 주인공과 주연배우들의 나이 격차가 심한 가운데 <나의 아저씨>가 그 정점을 찍은 것이다. [TV 삼분지계]가 첫 방영을 시작한 <나의 아저씨>에서 방영 전의 우려가 어떻게 현실이 됐는지를 지켜봤다.



◆ 첫 주인만큼 실망은 잠시 유보한다

수년 째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늘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와 JTBC <청담동 살아요>(2011)을 꼽아왔다. 하늘이 선택한 양 눈부신 주인공 없이도 흥미로웠고 소탈한 사람들끼리 만들어가는, 삶의 의미를 짚어보게 만드는 잔잔한 에피소드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삶과 가치관의 충돌을 통한 여러 군상의 고민을 진솔하게 보여준 이 두 작품. 그래서 박해영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번 <나의 아저씨>가 주인공의 24년 나이차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을 때도 뭔가 숨은 이유가 있겠거니, 기다려보자 했다.



하지만 홈페이지 인물 소개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나이인 두 인물에 대한 묘사다. “이상한 애가 동훈을 뒤흔든다. 거칠고 무모한 스물 한 살의 지안. 그 아이의 말은 거침없다. 칼로 푹 찌르고 들어오듯 서늘하다. 하지만 그 아이, 동훈의 인생을 아는 것 같다. 동훈이 어디에 눈물이 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지를. 나이 마흔 다섯에, 처음으로 발견된 길가의 꽃이 된 기분...(박동훈, 45세/ 이선균)”, “여자 나이 45세, 거울보기도 싫어지는 타이밍. 이럴 때 돈 많은 중년들은 젊음 유지 보다는 고가의 명품으로 품위 유지에 신경 쓰는 쪽으로 넘어가는데, 돈이 없으니 속수무책. 가장 많은 돈이 필요한 나이에 빈털터리가 됐다(조애련, 45세/ 정영주).”

처음으로 발견된 길가의 꽃이 된 기분이라니. 거울보기 싫어지는 타이밍이라니. 이제 막 첫 주를 지난 만큼 입 닫고 지켜볼 생각이다. 부디 ‘실망’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되기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지안 캐릭터의 흥미로움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

지안(아이유)의 삶은 맨 밑바닥에 묶여 있다. 닥치는 대로 일해도 줄어들지 않는 빚,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폭행까지 서슴지 않는 사채업자, 그리고 돌봐야 할 유일한 가족인 병든 할머니. 거동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할머니 봉애(손숙)의 모습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안의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런 지안이 예상치 못한 서열 파괴자로 변신한 반전의 순간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회사의 차기 후계자 지위를 놓고 서열 다툼에 여념이 없는 고위직 남성 기득권층의 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우편 부치고 영수증 처리하고 시키는 건 다” 하던 어린 파견직 여성 하나가 그들의 치졸한 정치판을 통째로 뒤흔들어 버린 것이다. 정작 희생양인 남주인공 동훈(이선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장기판의 말처럼 휘둘리는 사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내는 지안의 모습은 ‘가난하고 무력한 여주인공’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이 이야기의 주도권이 그녀에게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지안 캐릭터의 흥미로움만으로 계속 지켜보기에는 우려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중년 남성들의 과도한 자기연민은 방영 전부터 많은 이들이 지적하던 그대로였다. “나이 오십도 안돼서 집구석에서 삼시세끼 밥 쳐 먹을 줄 누가 알았겠어”라고 밥상을 갖다 바치며 한탄하는 노모의 말에 공감하다가도 드라마는 곧 그 속 터지는 엄마의 시점이 아니라 구박받는 남자들의 구구절절 한탄에 더 힘을 실어준다. 술 마시고 노상방뇨하는 49살 아저씨의 전립선까지 걱정하는 대목은 더 가관이다. 1회 마지막 장면에서는 상훈(박호산)과 기훈(송새벽)이 “아저씨 마을”을 만들자는 대화를 나눈다. 남자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라면 끓여주고 단순하게 사는 안전한 마을. 그들이 70대 노모가 차려준 삼시세끼 밥상을 꼬박꼬박 받아먹는 40대 남자라는 점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냉소하지 않을 수 없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니 아저씨 너나 귀엽지

<나의 아저씨> 속에 나오는 아저씨들에게는 뭔가 변명거리가 많다. 변호사 아내 윤희(이지아)는 동훈(이선균)의 후배이자 직장상사인 준영(김영민)과 불륜 중이고, 준영은 동훈을 해고하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시켜 동훈에게 뇌물을 주고는 감사를 벌인다. 동훈이 자꾸 지하철 안에서 지안(이지은)에게 다음 역에서 내리라고 하는 건 지안이 서랍 속에 넣어둔 돈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을 것 같아서고, 상훈(박호산)과 기훈(송새벽)이 지하철 역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출구로 나오는 젊은 여성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건 위기에 빠진 동훈을 도우려면 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아저씨> 속 사람들은 이렇게 착하고 선량한 아저씨들의 사정을 모르고 오해한다. 동훈이 지안에게 다음 역에서 내릴 것을 종용하는 걸 본 남자승객은 동훈을 밀쳐서 열차 밖으로 밀어내고, 지하철 역 출구로 나오던 젊은 여성들은 상훈과 기훈을 불쾌한 눈으로 바라본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모두 <나의 아저씨>가 나이 많은 남자와 젊은 여자 사이의 멜로가 아니라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니 오래 지켜봐 달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의 진짜 문제는 멜로이냐 아니냐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꾸준히 문제적 행동으로 지적되는 중년 남성들의 행태에 대해 쉬지 않고 변명을 해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지하철에서 젊은 여자에게 지분거리는 일, 거리에서 젊은 여자들을 눈으로 훑는 일, 가정이 있는 남자가 자꾸 다른 젊은 여자와 업무 외적인 교류를 시도하는 일 같은 행동들을 꼼꼼히 모아서, 하나하나 사실 이 사람들에겐 별다른 악의가 없는데 세상이 이들을 오해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는 <나의 아저씨> 속 세계관은, 중년 남성들에게 부당하게 오해를 받았을 뿐 제 행동을 성찰할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라는 식의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심히 유해하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건 알겠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후지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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