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지진희의 헌신, 사랑 아닌 집착이었던 걸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당신이 죽였니?” 아마도 고혜란(김남주)의 이 질문에 담긴 부정하고픈 마음은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남편 강태욱(지진희)이 케빈 리(고준)를 죽인 진범이었다는 사실은 지금껏 그가 고혜란에게 해온 헌신이 ‘진정한 사랑’이었다는 걸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들은 어쩌면 집착이었고, 고혜란의 변호인으로서 그를 지켜주겠다는 그 말은 어쩌면 변명이었을 수 있어서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결국 강태욱이 자신이 진범이라는 걸 인정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하지만 지금껏 제목처럼 누가 진범인지 안개 속 오리무중의 상황과 반전을 거듭하던 <미스티>를 봐온 시청자들은 그의 인정조차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사실은 진범이 따로 있고 그가 그렇게 수긍한 건 일종의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껴서일 거라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된 건 강태욱이 그만큼 사방이 적인 고혜란의 거의 유일한 지지자로 자리매김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대형로펌의 권력자들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것은 인권변호사로서 지켜오던 소신까지 꺾는 것이었다. 또 아내가 특별한 증거도 없이 검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을 때도 그는 언론을 통해 여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시청자들로서는 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그만큼 크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태욱이 진짜 범인이라는 사실은 이 모든 사랑이 엉뚱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걸 드러내는 일이다. 결국 강태욱은 고혜란에게 접근하는 케빈 리에 대한 분노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고, 어쩌면 그런 사실을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혜란을 용의선상으로 세워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 후 그를 변호했을 수 있다. “진범은 고혜란 씨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메이드 해놓고 안전하게 뒤로 숨어버린 사람”이라는 강기준 형사(안내상)의 말은 그래서 새삼 강태욱의 행위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가장 믿고 있었던 사람조차 자신을 이용하려 했다는 배신감은 그래서 고혜란에게도 또 이 드라마를 봐온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고혜란이라는 커리어우먼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그는 사랑이나 결혼보다 일에서의 자신의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이다. 그는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던 걸까.



남편인 강태욱이 진범이라고 밝히는 그 장면은 거기에 대한 어떤 해답을 전해준다. 고혜란에게 사랑이나 결혼 같은 것들은 믿고 싶어도 결국 깨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직장에서는 도처에서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이들과 내부적으로 싸워가면서 동시에 외부와는 진실보도를 위한 고군분투를 해왔던 그다. 그렇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와도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전직 대법관 아버지를 둔 남편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어떻게든 더 높은 자리로 가는 것만이 집안에서도 자신을 세울 수 있는 길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남편도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 자신들이 ‘갖고 싶은’ 욕망을 포장하는 어떤 것이었다. <미스티>는 어쩌면 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들이 가진 일터에서도 또 가정에서도 쉽지 않은 그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땅 어딘가에서 그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무수한 고혜란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아픈 이야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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