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의 ‘짠내투어’가 아닌 ‘짠내투어’ 속의 김생민으로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짠내투어>는 따뜻하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르는 여행예능이나, 힐링을 모토로 하는 예능과 달리 한정된 예산과 빡빡한 일정에 쫓기고, 예상치 못한 난관이 이어진다. 게다가 멤버들이 하루씩 가이드를 맡아 서로 평가하고 경쟁하는 관계에 있으면서도, 뭉쳐 다니는 여행이 편안해 보인다.

<무한도전>이나 <해피투게더>에서 볼 수 없는 예전 호통 개그 시절의 박명수를 만날 수 있고, <1박2일>에서 보다 차분하고 다정한 정준영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박나래는 <짠내투어>를 통해 여성 예능인도 특정 프로그램과 캐릭터에 한정되지 않고 활약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실제 나이도 출연진의 중간인 박나래는 <나 혼자 산다>에서 그랬듯 다른 멤버들이 원활하게 활약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우리’ 논란이 있긴 하지만 박명수의 아바타로 출연하기 시작한 허경환은 샌드백 역할과 선배인 박명수와 김생민 모두에게 할 말은 다하는 재치 있는 평가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면서도 그간의 모습과 달리 무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편안해 보인다.



<짠내투어>의 ‘알뜰살뜰하게 사치하는 청춘들을 위한 가성비갑 럭셔리 여행 프로그램’이란 기획의도는 전적으로 자린고비 김생민 캐릭터에서 기인했다. 같은 토요일 밤에 방송되는 KBS2 <배틀트립>과의 차별점은 김생민의 경제지론을 접목한 여행에 있다. 수입의 82%를 저축하다보니 여행 경험도 별로 없고, 비용 절감에 굉장히 민감한 김생민이 소비행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난다는 부조화가 포인트였다. 유명한 짠돌이가 마련한 여행 안이 얼마나 기상천외할지, 관광지와 유명 장소를 소개하는 기존 여행 방식과 다른 볼거리와 예기치 못한 여행의 모습이 어떨지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여행 경험이 많고 이른바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박나래와 정준영이 대척점에 서서 다양성을 확보했다.

그런데, <짠내투어>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여행처럼 처음의 모습과는 꽤 많이 다르게 진화했다. 절약에 있어서는 노하우가 있지만 예능과 여행에 모두 익숙지 않은 김생민은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비용으로 포함해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무조건적인 저렴함을 추구하려다 이런저런 난관에 봉착하는 등 여행을 잘 안 해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들을 리얼하게 연출한다. 유명한 이슬람 사원에 갔더니 공사 중이고, 로컬 맛집이라고 찾아갔지만 평이하다거나 홍콩의 훠궈집처럼 너무 현지식이라 먹기 힘들거나 하는 돌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또한 한정된 예산으로 움직이다보니, 경비를 아끼기 위해 식사 시간을 맞추지 않고, 음료도 빡빡하게 주문하는 등 여타 여행예능에 비해 보다 현실적인 여행자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시청자들이 참견하고 싶게 만든다. 가장 저렴하게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자는 설정에 따른 강행군은 피로를 유발할 수밖에 없고, 여유는 늘 부족하다. 이런 고난의 여정들은 심폐소생 단계에 들어간 박명수의 호통과 짜증 개그를 다시 되살렸다. 이렇게 툴툴거리는 반응이야말로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나올 수 있는 극사실적인 반응 중 하나기 때문이다.

다른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여행설계자가 되어 멤버들을 이끌고 다니지만 종종 예상대로 되지 않는 점이 다른 여행 예능에 없는 재미와 리얼리티다. 홍콩에서 처음 여행 설계자로 활약한 박명수는 20대 동생들과 감성 교류에 실패한 데다 예산을 초과하면서 징벌방으로 끌려간 바 있다.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다는 정준영도 동료들의 리얼한 반응에 종종 눈동자가 흔들리고 입은 할 말을 잊는다. 여행예능이 주로 여행의 로망과 들뜬 설렘만 다룬다면, <짠내투어>는 별로인 건 별로라고 솔직히 말한다. 여행 가서 겪는 짜증나는 상황과 피로와 때로는 실망감, 카페에 앉아 남은 현금을 정산하는 친숙한 장면까지 20~30대 친구들의 여행 풍경과 조건, 여행지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감정 등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멤버들이 스스로 짠 루트로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복불복식 게임과는 다른 감정이 이들을 감싸고 있다. 늘 유재석의 보살핌 속에서 웃음꽃을 피우던 박명수는 김생민의 투박한 여행 스타일을 타박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다소 진지한 김생민의 캐릭터를 살려낸다. 여기에 동생들은 김생민의 과다한 설명과 일반적이지 않은 여행방식을 힘들어 하면서도 선배이자 형으로 대우한다. 예능 버라이어티 경력으로나 여행의 경험으로나 모두 막내급인 김생민은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또, 배우고 적응하려 노력하면서 어우러지고 있다. 실제로 여행 스타일도 박나래를 따라가는 등 변화하는 중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생민의 캐릭터를 갈빗대 삼아 나온 이 여행 예능은 김생민의 절약 캐릭터에 함몰되지 않고, 예능 초보의 성장스토리를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생민의 <짠내투어>가 아니라 <짠내투어> 속의 김생민으로 융화되면서 좌충우돌의 여행기와 예능인으로의 성장기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김생민이 중심에서 한 조각으로 녹아들면서 또 하나의 ‘예능 가족’이 형성됐다. 이렇듯 <짠내투어>는 여행예능의 홍수 속에서도 가장 리얼한 여행의 풍경과 따뜻함을 담아낸 캐릭터쇼이자 여행예능으로 자리매김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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