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표방한 새 시사 프로그램으로 본 MBC의 현주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난해 11월 14일, 72일간의 총파업을 마친 MBC는 공영방송 정상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제일 가시적인 회복의 노력은, 가장 심각하게 황폐화됐던 시사교양 분야에 집중됐다. <피디 수첩>이 복원되고 <백분 토론>이 귀환을 예고하는 등 간판 시사프로그램들이 부활하고, 새로운 시사프로그램들도 연이어 방영됐다. 특히 <아침발전소>, <판결의 온도>, <스트레이트> 등의 새 프로그램들은 하나같이 ‘신개념’을 표방하며 시사에 대해 다양하고 대중적인 접근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TV삼분지계]가 새 시사프로그램들을 통해 달라진 MBC의 현주소를 돌아봤다.



◆ <아침발전소>, 쉽고 편안한 시사

느린 걸음이라 답답한 마음이 들긴 해도 MBC는 달라지고 있다. 반가운 변화 중 하나가 허일후 아나운서와 노홍철이 진행하는 <아침발전소>다. 섬뜩한 사건사고들이며 연예인 뒷얘기, 맛집 탐방, 또 홈쇼핑 방송과 결이 비슷한 건강 정보들, 물리도록 그 나물에 그 밥을 차려내온 아침 정보 프로그램 자리에 과감히 들어선 <아침발전소>. 반가운 일이다. 물론 아쉽게도 단 하루, 금요일 아침뿐이지만.

최근 화두로 떠올랐으나 하도 이 말 저 말이 상반돼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믿을 수 있는 이가 자초지종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면 판단에 도움이 되지 싶은데 <아 발전소>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가려운 곳을 용케 찾아내 속 시원히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스피드 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경기의 특정 선수 밀어주기 논란을 비롯해 다문화가정 자녀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 해체 문제 등 그간 궁금증이 일었던 사안들을 균형감 있게 다뤄줬으니까.



그런가하면 김기덕·조재현 성추행 사건과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도 다른 각도에서 심도 있게 파헤쳐줘서 좋았고 ‘현대판 코르셋 된 여학생 교복’과 ‘명물 vs 흉물? 초대형 원시인 조형물 논란!’처럼 아침 시간대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소재도 신선해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할매 학교에 가다’, ‘우도에 책방이 피었습니다’ 등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지루하니 제 할 말만 늘어놓다가 끝나거나 혹은 그와 반대로 원색적인 어휘를 쏟아내며 날선 공방을 일삼는 시사가 아닌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인 것이다. 아침 시간대에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통념을 깬 실험적인 시도이기에 난항이 따를지도 모르겠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한 가지만 부탁하련다.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시간 인만큼 시청자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쉽고 편안하게!’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판결의 온도>, 지금 이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

<판결의 온도>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문장은 오프닝의 출연 소감에서 밝힌 신중권 변호사의 말이었다. ‘납득하지 못할 판결에 대한 국민적 공분의 이유 중 하나는 정보 전달 부족’이라고 지적한 그의 말은, 국민의 감정과 사법부의 온도차가 단지 ‘서로 다른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킨다. 이정렬 전 부장판사가 분석한 특유의 ‘판사어법’이나 이진우 경제전문기자가 지적한 높은 소송비용의 문제점에서도 알 수 있듯, 그동안 사법부는 국민의 접근성을 낮추는 여러 장치를 통해 권위를 강화해왔다. <판결의 온도>의 가장 큰 의의는 그 엄격하고 난해한 법리의 세계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며 높은 권위의 장벽을 뛰어넘는다는 데 있다. 법이 공정한가를 판단하고 감시하려면 일단 그 세계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판결의 온도>는 새롭다기보다는, 검열의 시대에 시사의 위기를 맞았던 지상파가 그동안 놓친 트렌드를 따라 잡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JTBC <썰전>이 주도했던 시사의 대중화, 예능화라는 큰 흐름 안에서 SBS <김어준의 블랙 하우스>가 변칙적 스타일로 승부를 걸듯, <판결의 온도>는 법이라는 틈새 영역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 선구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는 없지만, 탄핵과 개헌정국을 연이어 통과하며 법이 중요한 화두가 된 시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는 점에서 시대를 읽는 MBC의 녹슬지 않는 시선을 보여준다.

물론 ‘담배토크’에서 드러나듯 다양한 시각을 표방하면서도 중년 남성의 시선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나 단편적인 편집으로 인해 논쟁의 깊이가 부족한 점 등 한계도 명확하다. 그럼에도 근래 기획의도만으로 이만큼 공감을 이끌어낸 프로그램도 드물기에, 결점을 보완해 정규편성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스트레이트>, MBC 보도제작국의 야심과 고충

아직 4회밖에 방영이 안 됐지만, <스트레이트>는 MBC 보도제작국에 여전히 녹록치 않은 촉을 지닌 기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 과정에 맥쿼리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고은상 기자나, <시사IN>과 함께 공동으로 강원랜드 수사 검사 외압 사실을 취재한 양윤경 기자 등 인상적인 취재를 선보인 MBC 기자들의 존재감은 선명하다. 그러나 아이템 선정을 보면 <스트레이트>는 여전히 MBC보다는 주진우 기자의 색깔이 더 짙은 프로그램이다. MB 정권의 자원외교나 다스, 삼성의 경언유착, 모피아 등의 아이템들은 분명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이지만, 동시에 지난 몇 년간 주진우 기자가 쫓아왔던 대표적인 아이템이기도 하다.



회사의 조직을 파괴하고 논조를 오염시키던 세력과 싸워 다시 회사를 정상화 궤도에 올려 뒀으니, MBC가 <시사매거진 2580>, <세계의 창 W> 등의 탐사 저널리즘 프로그램으로 신뢰를 얻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수년에 걸쳐 꾸준히 자행된 보도국 탄압과 파괴로 인해 지금으로서는 MBC 자력만으로 탐사 저널리즘을 예전 수준으로 복원할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스트레이트>는 주진우 기자와의 협업으로 그 한계를 넘는 걸 시도한다. 배터리가 방전된 차량이 다른 차의 전력을 빌려 점프시동을 걸듯, MBC가 그간 잃어버린 세간의 신뢰와 취재 인프라를 주진우라는 브랜드를 빌려와 만회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딜레마는 여기에서 온다. 점프시동에 성공한 뒤에는 점프 케이블을 떼고 혼자 주행에 나서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지금은 핸들까지 옆 차주에게 맡긴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JTBC처럼 아예 정해진 방향성조차 없던 신생 방송사야 아예 손석희라는 탁월한 운전수를 데려와 방향을 잡는 게 가능했지만, MBC처럼 오랜 탐사 저널리즘의 역사와 방향성이 있던 방송사가 이처럼 외부 브랜드의 역량에 기대는 모습은 아직 낯설다. 과연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확언을 하기 조심스럽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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