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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정앵순 할머니를 ‘인간극장’에서 만나다
기사입력 :[ 2011-11-09 13:33 ]


“이제 우리가 늙어서 오그라져야 되는데 거기(김광옥 씨 내외) 땜에 크고 있는 셈이여. 갈 데는 산 밖에 없는디, 뭣도 보고, 어디도 가보고, 염색도 해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어디 놀러도 가보고. 참 좋아.”

- KBS1 <인간극장> ‘산내리로 간 미술관’에서 정앵순 할머님의 한 말씀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전라남도 함평군, 산속 깊숙한 시골 마을 산내리에는 능선은 누에와 같이 일렁이고 밤에는 커다란 달이 떠오른다 하여 누에 잠(蠶), 달월(月) 자, ‘잠월 미술관’이라 이름 붙인 미술관이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일종의 문화 커뮤니티 역할도 겸하고 있는 이곳의 주 관람객이자 미술을 배우는 학생들은 바로 동네 할머님들이시고, 따라서 전시는 주로 할머님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다고.

“산내리 우리 작가님들, 점심 자셨으면 마을 회관 앞으로 나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셔서 작품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마을 이장님의 안내 방송이 있자 할머님들께서 한분 두 분 디지털 사진기를 목에 걸고 등장하시는데, 아니 이거 어디서 봤다 싶은 낯설지 않은 장면이 아닌가. 옳거니, 지난해 MBC <무한도전> 추석특집 ‘은혜 갚은 제비’ 편 때 멤버들이 연미복을 입고 찾아갔던 그 마을이다. 박명수를 ‘벼멸구’라고 불러 웃음을 자아내게 하셨던 앵순이 할머님이 보이는가하면 황금 들녘으로 풍성한 마을 어귀며 어르신들이 모여 열심히 설명에 귀 기울이시던 정자도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는데, 대체 누가 이 어르신들에게 왜 사진을 가르쳤는지, <인간극장>을 통해 상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올해로 쉰 넷이 된 김광옥 씨는 평생의 꿈을 펼치고자 아내 임혜숙 씨와 함께 6년 전 이 외딴 마을에 미술관을 열었다고 한다. 부부가 모두 중학교 미술 교사로 왕복 두 시간 가까운 거리인 광주까지 출퇴근을 해야 하고, 소득이 있을 리 없는 미술관 운영으로 지출도 만만치 않는 상황이지만 꿈을 이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가르친 것 보다는 배운 게 많은 것 같아요. 그냥 스쳐 지나치는 말씀들인데도 뜨겁게 와 닿아요.” 무미건조하니 하루하루를 보내는 황혼의 노인들께 사는 재미 하나를 보태 드리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분들에게서 인생의 깊이를 배우게 됐다며 활짝 웃는 두 부부를 보고 있자니 문득 내 식구만 챙기며 살아온 편협하기 짝이 없는 나의 삶이 부끄러워졌다.







또한 언젠가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김명민 분)가 강건우(장근석 분)에게 던졌던 일침이 생각나기도 했다. “꿈을 이루라는 소리가 아니야. 꿈을 꾸기라도 해보라는 거야.” 왜 꿈을 꿀 생각도 못하느냐는 강마에의 질책에 가슴을 찔려 한동안 우울해 했던 기억이 있는데 광옥 씨 부부의 꿈은 내가 염두에 두었던 꿈과는 아예 차원부터가 다른 것이다. 이때껏 꿈을 이룰 생각은커녕 꿔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살아오셨을 노인들에게 꿈을 안겨드리는 일이 자신들의 꿈이라니 말이다.

“땅에다 낙서하는 것처럼 그리시면 되요. 어렵다 생각마시고요.” 쉽게 설명하는 선생과 “생전 안 해본 것 하니까 재미있어.” 하시며 그리고, 찍고, 만들기에 열중하는 나이 많은 학생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누에를 치는 일을 하셨다는 할머님은 붓으로 누에를 그리시고 다른 할머님은 “우리 영감이 좋아해.” 하고는 술병과 술잔을 그려 넣으신다. 출근길 읍내 병원에도 모셔다 드리고, 깨도 함께 털어 드리고, 아플 땐 서로 보듬으며 오순도순 외로운 노인들의 벗으로 지내는 지금의 시골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김광옥, 임혜숙 부부. 그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최고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나는 과연 지금 행복한가?’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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