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이선균, 개저씨 세상에 진정한 어른이란

[엔터미디어=정덕현] “걔 엄마가 여기저기서 돈을 무지 끌어다 쓰고 도망쳤었어요. 듣지도 못하는 노인네랑 어린 거 둘이 맨날 빚쟁이들한테 들들 볶이고 에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고. 그래도 딸내미 졸업식엔 오겠지. 할머니도 다쳐서 못 움직이는데. 올 사람 없는 거 아니까 오겠지. 그 생각으로 빚쟁이들이 다 졸업식으로 몰려갔었는데. 안 왔어요. 아무도. 발길이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지 엄마 죽고 지안이가 그 빚을 다 떠안았어요. 상속포기라는 거는 몰랐으니까.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돈이었어요. 그 중에 광일이 아버지 돈이 제일 많았고. 사채 하는 놈이었는데. 정말 징글징글하게 못살게 굴었어요. 맨날 노인네 패고. 그러니 할 수 있나. 그 놈이 시키는 거 다 할 수밖에. 지안이 나쁜 짓 하는 거 알고 노인네 쓰러지고 다신 나쁜 짓 안하겠다고. 그 작은 게 뼈가 부서져라 일만. 그 사채업자 죽고 지금은 그 광일이라는 지 아들놈이 아버지랑 똑같이 그래요. 그래서 그 부장님 5천만원에 손 댄 거고. 그 놈이 훔친 거라는 걸 알아채서 돌려놔야 했어요. 부장님 돈을 훔치려 했던 건 사실이지만 사실이 뭐였는지가 중요한가요. 내가 지안이를 건사하게 된 거는 사실에 비추면 다 말이 안 돼죠. 마음이 어디 논리대로 가나요.”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아이유)을 은근히 돕던 청소부 할아버지 춘대(이영석)는 그를 찾아온 박동훈(이선균)에게 둘 사이의 인연에 대해 길게 이야기한다. 청소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할아버지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담겨진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세상일들에 나 몰라라 하며 내 것만 챙기려 들고, 지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고통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는 지독한 세상에서 이 어르신은 그 어린 지안이의 고통을 들여다봤다. 어쩌면 빚쟁이들 중 한 명이었을 수 있는 이 어르신이 그래서 지안이에게 졸업식에 꽃을 건네고 그를 건사하게 된 건 사실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하게 만들었던 일이니까.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박동훈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춘대에게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존경합니다. 어르신.” 어쩌면 춘대는 5천만 원을 손 댄 이지안을 도와준 인물로 박동훈을 곤경에 빠지게 했던 장본인일 수 있었다. 사실관계로만 말한다면. 하지만 박동훈이 춘대에게 들은 건 사실을 뛰어넘는 그의 마음이었다. 자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 속에 담긴 이 어르신의 마음. 그래서 존경한다는 말이 툭 나왔던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제목에 담겨져 있듯이 아저씨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최근 미투 운동 같은 사안들로 인해 아저씨라는 단어가 갖는 뉘앙스는 결코 좋을 수 없다. 또 신문 사회면을 들춰보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이른바 ‘개저씨’들의 공분을 자아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비뚤어진 남성중심적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들이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살아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범죄였다는 게 드러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이런 마당에 ‘아저씨’ 운운하는 이야기가 아무런 이물감 없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아저씨>가 그 개저씨 세상에서 그래도 춘대나 박동훈 같은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결코 개저씨들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 진정한 어른의 면모가 그 안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춘대의 이야기를 들은 박동훈은 사채업자 광일(장기용)을 찾아간다. 그 사무실이 있는 건물 계단을 오르는 그 발길은 물론 쉽지 않다. 머뭇대다가 결심한 듯 그는 사무실을 찾아 광일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의 기억 속에서 이지안의 얼굴과 손에 남아 있던 멍자국들이 떠오른다. “왜 불쌍한 아이를 때리냐”고 소리치며 싸우는 와중에 광일은 이지안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박동훈에게 말한다. 잠시 충격에 빠진 듯 보이던 박동훈은 그러나 “가족을 때리는 놈은 나라도 그럴 것”이라며 다시 광일에게 달려든다.

세상에 아저씨들은 넘쳐나지만 그들 속에서 진정한 어른을 발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어른이란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볼 줄 알고 그걸 지나치지 않을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라 부를 수 있을 게다. <나의 아저씨>가 박동훈이라는 특별한 아저씨를 세워놓은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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