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화제성에 심취한 ‘며느리’ 제작진 위한 몇 가지 조언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파일럿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정규 편성 될 예정이란다. 불편한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 공론화 시키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오리라고 믿는 모양인데, 과연 그럴까? 아쉽게도 제작진의 바람과는 달리 온라인은 물론이고 사석에서도 출연자 가족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었다. 화제의 웹툰 <며느라기>에서 착안한 기획이지 싶은데 웹툰에서는 실존 인물이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지 않나. 제작진으로서는 “나도 언젠가 며느리에게 저런 말을 했는데 우리 며느리도 가슴 아팠겠네.”라는 반응을 기대했겠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심지어 시집 식구와 남편으로부터 사과와 위로를 받기는커녕 ‘너 시집 잘 온줄 알라’는 속 긁는 소리를 들은 이도 있다고 한다. 화제성을 얻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진짜 성공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나온 내용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 대다수 며느리들이 체험해본 일들이다. 그러나 패널들은 마치 생전 처음 보고 들은 일인 양 기함을 했다. 적어도 자신들의 어머니가 겪어 왔고 여전히 진행 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어머니도 또 한 사람의 며느리가 아닌가. 누군가를 비난하기에 앞서 각자 자신의 주변부터 돌아보고 챙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속 한심한 상황들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릇된 관습의 연장으로 보는 편이 옳다. 마땅한 도리라고, 가풍이라고 대를 이어 배우고 익혀 온 것이다. 수십 년 몸에 밴 생각과 행동이 방송 출연으로 단박에 개선될 것이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자칫 잘못했다가는 무려 여덟 쌍의 이혼 커플을 배출한 SBS <스타 부부쇼 자기야>의 전철을 밟을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자기야-백년손님>으로 포맷을 바꾼 <스타 부부쇼 자기야>에서는 고부 갈등, 장서 갈등을 비롯해 외도, 폭언, 폭력 등 적나라한 폭로들이 매주 펼쳐졌었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부부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되는 듯 했으나 결국엔 이혼 양산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을 쓴 채 폐지 수순을 밟고 말았다. 부부 사이도 이럴진대 심지어 시집 식구와 며느리는 가족이라는 틀에 물려 있긴 해도 명백히 말하자면 남이 아닌가. 일단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 싸움처럼 쉽게 풀릴 수 있는 사이가 아니란 얘기다.



과거에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나온 그림들이 별스런 얘기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버스, 심지어 비행기에서조차 흡연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애연가들이 도처에서 눈총을 받게 된 것처럼 며느리의 입지도 시대의 흐름을 타고 달라지고 있다. 방송 출연으로 비난의 표적이 된 가족은 이상한 가정이 아니라 개화가 늦은 가정일 뿐이다. 반면교사가 깨우침을 위한 좋은 장치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공론화라는 미명 하에 굳이 ‘욕받이’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게다가 애꿎게 어린 자녀들까지 고스란히 노출시키면서. 새로 시작되는 정규 방송에서는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면 좋겠다.

또 하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아닌 ‘지혜로운 나라의 며느리’도 보여줬으면 한다. 모범적인 가족 관계를 통해 스스로 깨닫고 고치려 노력하게 만드는 쪽이 더 발전적이지 않을까? 언젠가 JTBC <한 끼 줍쇼>에서 노 할머님께서 분주히 반찬을 만들고 계시는 중에 손자며느리가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을 봤다. 아마 아이 밥 먹는 걸 곁에서 챙겨주는 쪽이 여러모로 편해서였을 게다. 세상 많이 달라졌네, 감탄했었다. 이처럼 TV 안에는 형편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가정도 얼마든지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는 개화에 늦은 시어른과 남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며느리도 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옳다. 첫 걸음은 쉽지 않겠지만 시집이라고 괜한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하자. 홀몸이 아니어서, 혼자 큰아이 데리고 짐 바리바리 이고 지고 명절나들이를 할 수 없다고 왜 말을 못하는가. 내가 나를 귀히 여겨야 남도 나를 아낀다는 사실, 만고불변의 진리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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