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피해자의 주체성에 방점을 찍었다는 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빨간 마후라 사건’(1997)을 기억하는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일반인이 찍은, 그것도 청소년이 찍은 ‘야한 비디오’ 정도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두 명의 남자고등학생들이 여중생을 협박하여 촬영한 뒤 여중생의 허락 없이 유출한 음란물이었다. (당시 여학생은 영상이 유출되고 신상까지 노출되어 자살시도를 할 정도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며, 3년 후에는 다시 ‘노예매춘을 당하는 윤락녀가 되었다’는 기사로 언론에 신상이 노출되는 2차 피해를 당했다.)

즉, 엄연한 디지털 성범죄의 증거물이다. ‘빨간 마후라’를 ‘야동’으로 기억하느냐 ‘디지털 성범죄’로 기억하느냐 사이에는 굉장히 큰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실제로 누군가는 ‘빨간 마후라’ 사건을 떠올리면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따위를 찍었다. 이하 감독은 ‘발랑 까진’ 그때 그 청소년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하다가 ‘성적인 매력으로 여왕벌처럼 남자들을 조종하는 여교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었다. 남성 리버럴리스트의 오류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고방식이다.



반면 ‘빨간 마후라’ 사건이 성범죄임을 인식하면, <나를 기억해>가 만들어진다. 비디오를 찍힌 여학생이 성인이 되어 어떤 용기로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위협과 마주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피해자를 중심에 둔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물론 여기에는 2000년대 초반의 성의식과 현재의 성의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가령 탁현민이 2007년대에 출간한 책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서 자신이 청소년기에 저질렀던 행위라며 자랑스럽게 떠벌린 이야기들이 지금의 눈으로 보았을 때 심각한 젠더폭력으로 인식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를 기억해>는 현재의 각성된 눈으로 디지털 성폭력과 청소년 성범죄의 위험을 경고한 영화이다. ‘미투 운동’이 현재와 같이 퍼져나가기 전인 2016년 겨울에 찍은 영화라고 하니, 꽤 빠른 인식의 변화를 담고 있다.



◆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인 고발자

영화 <나를 기억해>는 분명한 사회 고발을 담으면서도, 이를 장르적인 문법 속에 녹여 내기 위해 여러 장치를 활용한다. 이런 장치들이 때로는 과하게 느껴지거나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에 끝까지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교사 한서린(이유영)과 학생 민아(김다미)가 겪는 일을 병치하여 보여준다. 학교에 만연한 성범죄를 보여주려는 방식이려니 생각할 즈음, 두 인물의 관계가 드러난다. (영화 <사랑니>에서 사용했던 기법이 반대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만연한 성범죄’라는 메시지가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에 달하는 단톡방에 사진이 업로드 되는 장면에서 또 다른 학생 세정(오하늬)이 연루되었다는 사실로 초점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납치, 추행, 강간, 디지털 성폭력, 협박 등이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를 보여주며, 상당히 예리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한서린은 마스터라는 의문의 인물에게 끊임없이 협박을 당하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그는 과거에 좋지 않은 인연으로 알게 된 전직 형사 오국철(김희원)에게 연락하여 탐문을 부탁한다. 관객들은 왜 한서린이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는지 답답하게 여기며, 혹시 결혼을 앞두고 있기에,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한서린의 결혼과 약혼자는 어느 순간 그의 뇌리와 영화에서 사라진다. 정확히는 “그 여자애는 인생 쫑난 거지”라는 약혼자의 무심한 말을 들은 이후이다. 한서린은 약혼자에게 반박하지 않는다.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 그의 존재를 삭제해버린다. 그때 한서린이 어떤 심정인지는 “내가 나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세정의 대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된다. 즉 참혹한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평범한 결혼을 통해 ‘안정된 삶’ 속으로 숨고 싶었을 수 있지만, 그런 결혼은 허구적인 봉합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다. 한서린이 지키고 싶은 것은 결혼 따위가 아니라, 자신과 제자이다.

요컨대 한서린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 세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한서린은 경찰과 언론에게 최악의 ‘2차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 더구나 ‘2차 피해’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비리 경찰과 기자 사이의 이권에 의해 피해자 신상이 거래된 결과였다는 사실이 더욱 분노를 자아낸다.



◆ 두 가지 반전

한서린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해자의 그림자를 쫓고, 마지막에는 자발적으로 그들의 인질이 된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서린은 자신이 어렸을 때 도망치거나 숨으려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이다. 한서린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딛고,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범죄에 맞서는 모습은 피해자를 수동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기존 사고를 깨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대목에서 한 차례 반전을 보여준다. 이때 반전은 다소 억지스러우며, ‘반전을 위한 반전’ 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가해와 피해가 뒤집힌 상태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기는 힘들다. 동영상이 유포되고 소문이 퍼졌을 때, 남성이 겪을 피해와 여성이 겪을 피해는 강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다른 목적을 위해 자신이 피해자인양 거짓으로 꾸미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성범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비롯해 또 다른 성범죄의 대상이 되곤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영악하기는커녕 자살적인 행위가 되기 쉬운 까닭이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두 번째 반전을 내놓는다. 이는 나름 의미를 지닌다. 최종적으로 밝혀지는 범인의 얼굴이 놀랍긴 하지만, 아주 뜬금없지는 않다. 영화가 나름 복선을 깔았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 범인의 얼굴이 슬쩍 노출되기도 하지만, 그 보다 앞선 장면을 통해 이미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바로 오국철이 처음 등장하는 피씨방 장면에서 말이다.

피씨방 장면에서 초등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그런 소리는) 니 에미랑 해”라는 욕설이 섞여있다. ‘니 에미’를 멸칭으로 사용할 만큼 초등학생 남자아이들 사이에 ‘여혐’문화가 만연한 것이다. 또한 영화는 ‘소라넷’ 에 대해 오국철과 후배경찰이 대화할 때, “초등학생들부터 고삐리들까지...” 등의 말을 여러 번 들려준다. 인터넷 음란 사이트가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까지 일상적으로 파고들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지 어린이와 청소년이 인터넷 음란 문화에 노출되어 순진함을 잃게 되었다는 개탄으로 듣는 것은 곤란하다.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동영상에 찍힌 피해여성들 말이다.

‘소라넷’에 무수히 올라오고 공유되는 동영상들은 어떻게 찍혀서 어떤 경로를 통해 유포되는 걸까. 동영상에 찍힌 여성들은 누구이며, 이들은 어떤 이유로 동영상을 찍게 된 것일까. 동영상이 유포된 후 이들은 무슨 일을 겪을까.



17년간 소라넷이 121만 명의 회원을 모으며 성업하는 동안, 그 많은 남성회원들 중 누구도 피해여성의 입장에서 의문을 품지 않았다. ’화장실 몰카’ 라는 깜찍한 이름으로 불렸던 불법 촬영된 사진들과 ‘리벤지 포르노’라는 선정적인 이름으로 불렸던 헤어진 남성들이 유포한 동영상 속 여성들의 알몸을 품평하고 관음하고 조롱하면서, 영상 속 여성들이 존엄과 인격을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성관계 동영상이 유포된 여성들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면, 이들은 그 동영상을 ‘유작’이라 부르며 킬킬댔다. 이런 극단적인 대상화와 ‘여혐’ 문화가 성인은 물론이고,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유포되는 동안, 수사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이런 피해사실을 접한 여성들이 비로소 ‘소라넷’ 폐쇄를 이야기하자,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소리’라느니, ‘서버가 외국에 있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느니 혀를 끌끌 찼다. 정영진 같은 이는 ‘합법적인 포르노를 즐길 수 없어서 빚어진 현상이니, 남성들이 합법적인 포르노를 즐길 수 있는 권리와 양질의 콘텐츠를 내놓으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여성 인권은 안중에 없고, 남성들의 성적 자유만 중요하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완장 찬 페미 나치’라는 어처구니없는 비난이 돌아왔다. 하지만 마침내 소라넷의 해외서버는 국제공조를 통해 폐쇄되었고, 10명의 운영진이 검거되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단속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 ‘미투 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시의성

<나를 기억해>는 소라넷 같은 음란 사이트에 동영상이 공급되기 위해 여성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성범죄에 대한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피해자 신상이 노출되고 모방범죄가 가능해지는 문제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사회에서 숨고 추방당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미투 운동’은 이렇게 뒤집힌 윤리를 바로잡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수치심을 느끼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도록 하는 행위이다.

영화 <나를 기억해>가 디지털 성폭력의 위험과 청소년 성범죄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주체성에 방점을 찍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무력한 피해자가 용감한 고발자로 거듭나는 ‘미투 운동’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하는 대단히 시의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만듦새보다 이러한 시의성과 문제의식이 영화에 대한 지지를 부른다. 최근의 드라마<라이브>에서 경찰이 된 한정오(정유미)가 성폭행 피해자였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털어놓는 장면과 더불어, 곱씹어볼만한 영화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나를 기억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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