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사람이 남매나 사돈이 된다면?
- 막장은 불치병으로 완성된다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MBC ‘불굴의 며느리’는 일일극치고는 자극이 덜하고 분위기도 훈훈했다. 제작진도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며느리상을 유쾌하게 그리겠다고 말했다. 남편과 헤어지면 항상 재벌 연하남이 기다리고 있는 등 재벌 2세와 과부의 만남으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친정엄마 못지않은 시어머니라는 새로운 고부관계를 모색하고, 이혼과 사별을 어둡게 그리지 않은 점, 살림만 하던 여자가 쇼핑 호스트로 성공하는 점 등 일일극으로는 장점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100회를 넘겨 종영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막장적 장치가 꽤 들어가 있고 일일연속극이 시트콤 못지않게 코미디화 되어 가고 있다. ‘불굴의 며느리’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축이자 갈등축은 종가집 과부 오영심(신애라)과 재벌2세인 신우(박윤재)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신우 모친 명주(김동주)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결혼에 골인했기 때문에 큰 갈등축이 사라져버렸다. 명주가 매번 오영심의 친정 같은 시집인 만월당에 찾아와 상식 이하의 난장판 같은 행동을 보이며 결혼을 못하게 방해하는 것도 더 이상 끌고갈 수 없게 됐다.

영심의 시집살이로는 큰 갈등을 만들기 힘들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임신하기 힘든 오영심에게 ‘임시 며느리’ 딱지를 달고, 영심의 손아래 동서가 손위 동서로 바뀌고, 시어머니가 가담한 상류층 계모임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건 소소한 코미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그 즈음에 미리 한 가지 멜로의 갈등 축을 더 만들어놨다. 만월당 안주인 혜자(김보연)의 딸 연정(이하늬)이 직장상사로 만나 사랑하게 된 장비(이승효)의 아버지가 혜자가 40년전부터 알고 지내며 뒤늦게 가족 몰래 사랑을 키워가고있던 석남(이영하)이라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매나 사돈이 되어야 하는 다소 무리한 설정이다.

이들 커플은 한동안 서로 자기들의 사랑을 밀고 나가기 위해 부모와 신경전(?)을 벌였다. 석남은 아들 장비에게 “우리 사랑은 40년 숙성된 사랑이다. 너희들의 한 달 된 사랑하곤 차원이 달라”라며 조금도 양보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1일 방송된 108회에서는 연정이 장비에게 이별을 고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석남이 바다로 떠나겠다고 하자 죄책감을 느낀 연정이 장비에게 결혼을 포기할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김보연의 시어머니인 최막녀(강부자)가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드라마가 마치 정해진 코스를 향해 가는 것 같았다. “막장드라마는 불치병으로 완성된다”는 시청자의 항의가 이어졌다.
 
최막녀는 손녀를 둔 며느리인 혜자를 여지껏 붙잡아놓은 셈이다. 방앗간집 딸 혜자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일꾼인 석남과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못했지만, 이제는 시어머니를 놔두고 석남에게 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최막녀의 암 선고는 뭘 의미하는지 너무 뻔해진다.
 
신우-진우(이훈) 형제가 동서 사이인 영심과 혜원(강경헌)과 각각 결혼하는 설정도 거슬렸다. 또 신애라와 박윤재 부부는 여성들의 판타지는 자극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신애라가 너무 나이가 들어보였다. 젊은 남자 윤재의 입장에서 볼 때 수많은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영심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해줄만한 그 무엇은 부족해보였다.

고아에 대학졸업장도 없는 신애라가 전업주무로 지내다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해 쇼핑 호스트로 성공하는 이야기는 통쾌함을 주지만 시아버지 회사에서 잘 나가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종영을 앞두고 있는 ‘불굴의 며느리’에 남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