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극의 새로운 연애 매칭 프로그램 ‘선다방’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타인의 삶의 모습을 엿보는 예능은 많지만 엿듣기 예능은 또 처음이다. 평범한 청춘남녀의 소개팅을 주선해주는 <선다방>은 삼청동에서 유인나, 이적, 양세형, 로운이 카페를 운영한다는 콘셉트보다 카페나 식당에서 어쩌다보니 들리게 된 옆자리 소개팅 남녀의 대화를 몰래 관전하는 듯한 묘한 재미를 기획의 중추로 한다.

청춘 남녀의 첫 만남은 언제나 어색하고 풋풋하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면 그 다음이 궁금해진다. 사랑이란 보편적인 감정인데다 누구나 한 두 번은 경험을 해봤을 상황이기 때문에 쉽게 몰입하게 되는 까닭이다. 서로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설렘과 낯섦이 공존하는 달달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때로는 그다지 매력 없는 유머를 끊임없이 던지며 구애하거나,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애를 쓰는 애잔하고도 어색한 상황이 주는 코칭 욕구를 자극한다.

이적, 유인나, 로운, 양세형은 카페 직원을 분한 큐피티 요원이다. 매주 오늘의 메뉴를 개발하고 카페를 청소하고 꾸미고 서빙에도 열심이지만 그들의 가장 큰 일은 손님의 대화를 엿듣는 데 있다. 분위기가 좀 애매하거나, 특징적인 문제가 반복될 시 소머즈처럼 집중력은 한층 높아진다. 긴장하면 말을 빨리하는 손님을 위해서 ‘천천히’라는 사인을 건네고, 지난주처럼 눈도 안 마주치고, 연신 빨대로 음료를 휘젓는 등 무기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여자 손님의 태도를 지켜보다가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빨대를 빼앗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손님이 돌아간 다음에, 오늘 있었던 소개팅을 복기하면서 각 커플들의 애정 전선이 어떨지, 애프터가 성사될지에 대해 토의하고 예측해본다. 방송이란 콘셉트, 대놓고 듣고 참견해도 되는 도덕적 지위를 얻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일상에서 어쩌다 듣게 된 소개팅 남녀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타인의 소개팅 자리의 대화를 엿듣고 이를 재구성하고 추리하는 게 <선다방>이란 예능이 추구하는 재미다. 우연히 친구들과 함께 듣게 된 옆자리 소개팅의 성패를 추리해보는 일상에서 가끔 겪을 법한 상황을 기획의도로 잡은 셈이다. 소개팅 자리 직후 애프터 여부를 제작진에게 바로 전하기 때문에 정답을 바로 맞춰볼 수 있다는 점이 현실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러면서 흔한 연애 매칭 예능의 함정들을 피해간다.



<선다방>의 매력은 시청자를 소개팅 자리에 앉히는 듯한 대리만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데 있다. 물론, 출연자들의 외모나 스펠이 간혹 매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첫 번째 마케팅 요소는 아니다. 정말 우리 주변에서 만나볼 만한, 소개팅의 모습을 옆자리에서 듣고 참견하거나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덜 부담스럽고, 결국 방송을 위한 방송이란 냉소 대신 호기심이 자연스레 인다.

매칭도 인위적이지 않다. 주선의 기준부터 극히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갖는 현실적인 소개팅 설계에 가깝다. 그래서 실로 다양한 직업과 인간 군상이 등장하지만 시청자들의 일상과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다 사랑의 첫 걸음을 내딛을 때 보이는 엇비슷한 모습, 자신들은 모르지만 제3자 입장에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낯간지러움’, 자살골을 넣은 지도 모르고 환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안타까움 등이 함께 방송을 보고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게 만든다.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넘겨짚는다. 상황에 따라 앞으로 소개팅을 나간다면 어떤 점을 조심하고,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는 사회생활과 관련한 실질적인 팁이 될 요소로 여길 여지도 많고, 소개팅 자체를 할 이유가 없는 시청자들은 모처럼 연애 감정을 복기할 수 있다. 여기에 라디오에서 이미 인증된 유인나의 사랑학 강의와 공감 능력, 그리고 차분하고 따스한 말투가 더해져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든다. 소개팅 백전백패의 자신감이 떨어진 손님들 위로와 안정이 될 수 있는 한마디를 건네고 여자의 심리에 대해 쉬운 말로 잘 설명한다.

그래서, <선다방>은 선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반적인 연애 매칭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친구들끼리 카페에 둘러앉아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소한 수다 같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 주제가 연애의 하이라이트라는 첫 만남이다보니 할 말이 끊이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주고 싶은 일종의 오지랖 정신이 발동한다. 깊숙이 개입해 출연자의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기보다 한 발 물러선 엿듣기를 통해 저자극의 순수한 연애 매칭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일요일 심야라는 편성시간이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흥미로운 새 예능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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