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츠’, 박형식,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맞서는 청춘

[엔터미디어=정덕현] 미드 원작이어서일까. 아니면 이 캐릭터가 본래 독특한 청춘을 그려내고 있어서일까. KBS 수목드라마 <슈츠>의 고연우(박형식)라는 청춘은 지금껏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청춘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N포세대로까지 불리는 청춘들의 현실이 워낙 각박해서인지, 많은 드라마들이 담는 청춘의 초상들은 고개 숙인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연우는 어딘가 다르다. 좌절의 이미지보다는 그걸 극복해가는 청춘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다.

물론 고연우가 처한 현실은 여타의 청춘들과 다를 바 없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변호사를 꿈꿨지만,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스펙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남다른 두뇌를 갖고 있지만 스펙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차요원 같은 일이다. 심지어 형처럼 지낸 클럽 매니저 철순(이상이)이 조폭들의 마약운반을 고연우에게 시키려 한 걸 거부하면서 고연우는 조폭들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고연우에게는 최강석(장동건)이라는 운명을 바꿔줄 히든카드가 나타난다. 최고의 로펌 강&함의 에이스인 최강석의 제안으로 아무런 스펙도 없고 심지어 변호사 면허증도 없지만 이 로펌의 신입 변호사가 될 기회를 갖게 된다. 최강석이라는 판타지적인 인물의 도움이 절대적이지만 그렇게 갖게 된 기회를 고연우는 그 누구보다 절박하게 붙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가짜 변호사가 아니라 진짜 변호사로 거듭나기 위해서.



주사위를 던져도 늘 뒤로 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현실을 토로하는 고연우에게 최강석은 주사위를 던질 판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연우가 그간 발을 딛고 있던 세계에서는 주사위를 던져봐야 뒤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 대신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연우에게는 새로운 판이 열린 셈이었다. 고연우가 숨겨둔 마약을 조폭들에게 건네며 그 세계로부터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최강석은 그들의 방식과 변호사로서의 방식이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최강석이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건 바로 그 이기는 판에 자신이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고연우 역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 판 자체를 이기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슈츠>는 물론 원작이 유명한 미드이기 때문에 우리네 법 현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새로운 의뢰인으로서 래퍼 비와이를 섭외하기 위해 클럽에서 함께 고연우가 랩을 하는 그런 모습은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건 미국적인 정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이 고연우라는, 조금은 쿨하고 스웨그 넘치는 청춘의 성장담이 독특하고 멋있게도 다가오는 면이 있다. 우리네 좌절한 청춘들이 소주 한 잔을 걸치고 현실을 개탄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이 청춘은 나름 즐기고 나름 치열하게 부딪치며 그 어려운 판에 서 있는 자신을 다른 판으로 옮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물론 이건 판타지다. 세상에 어디 최강석 같은 인생을 바꿔줄 멘토를 만나는 일이 쉬울 것인가. 그래서 고연우라는 능력은 갖췄지만 현실 때문에 스펙이 없는 청춘과, 스펙 없어도 능력을 보고 기회를 주며 스펙까지 쌓게 해주는 멘토 최강석이 만들어가는 판타지는 에둘러 우리네 현실을 꼬집는 면이 있다. 우리네 현실이란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곳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맞서는 고연우 같은 청춘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그렇게 맞설 수 있는 기회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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