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캐아’, 아저씨들이 로망 다시 꽃 피울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가 새롭게 내놓는 예능을 보다보면 그 기획의 의사 단계 과정이 매우 궁금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기획이 실제 제작되어 시청자들에게 선보였을 때 무엇을 강점과 신선함으로 삼고 판단했는지 기준이 늘 남달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금요 예능 <나물 캐는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안정환, 김준현, 추성훈, 오취리, 김응수, 최자 등 아저씨들이 뭉친 리얼버라이어티로, <남자의 자격>이나 <인간의 조건1,2>와 매우 유사한 리얼리티에서 한계를 드러낸 콘셉트에 다시 도전한다. 물론, 나물을 매개 삼아 산과 들로 떠나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는 이른바 힐링 예능, 슬로우라이프 예능이란 새로운 지향이 깃들어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자연 속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채취해서 어떻게든 먹음직스런 밥상을 차려내고 함께 둘러 앉아 맛나게 먹는 설정은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삼시세끼>의 전매특허다. 장르는 조금 다르지만 <도시어부>도 마찬가지고, 범위를 넓히면 <불타는 청춘> 등에서 늘 하고 있는 이야기다. 시골의 여유로움과 자연 풍광이 주는 안온한 감성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대나무 숲의 속삭임과 같은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리와 풍경 등도, 아예 살고 있는 집에서 찍는 <효리네 민박>이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실험을 하는 <숲속의 작은 집>에서 훨씬 더 좋은 비주얼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기존 힐링 예능과 달리 아저씨들이 등장하고, 나물이란 키워드를 삼고 있다고 하지만 이 지점이 차별화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예능에서 만큼 아저씨는 가장 보편적인 출연자 집단이라 할 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리얼버라이어티가 이미 3~5년 전에 열풍을 일으켰다. 나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가 추가되긴 했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부재료다.

새롭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기존 슬로우라이프 예능들이 더욱 정교한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삼시세끼>는 아예 한 마을에 며칠씩 눌러앉아 머무르는 콘셉트고, <숲속의 작은 집>은 여기서 더욱 깊숙이 나아가 1인 예능을 시도한다. 흔히 말하는 예능적 재미는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속에 시청자들이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초대한다. 유사가족 커뮤니티의 형성과 같은 스토리텔링을 배제하고 오롯이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물 캐는 아저씨>는 친자연주의 힐링 예능의 정서와 시끌벅적한 아저씨들의 리얼버라이어티 문법을 조금씩 섞은 세미 슬로우라이프 예능이자, 조금은 유행이 지난 리얼버라이어티를 선보인다. 조금 부족하고 서툰 아저씨들이 함께 나물을 캔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리얼버라이어티 스타일이다.



집 밖으로만 나오면 좋아한다는 아저씨들의 모임은 형동생, 친구의 관계를 금방 형성하고 이른바 아재 개그를 통해 웃음을 창출한다. 비빔밥 하나 만드는 데도 요란법석이다. “좀 힘들겠는데요, 앞으로”라는 김응수의 말대로 앞으로 더 향상되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캐릭터쇼의 성장스토리의 필수불가결한 출발이다. 나물의 이름과 생김새부터 채취법, 요리법까지 하나하나 힘을 합쳐서 배워가는 중이고, 그렇게 하룻밤 함께 지내면서 끈끈한 우정이 피어난다. 2회 말미에 이 방송이 자리를 잡든 말든 우리끼리 ‘나캐아’라는 나물 캐는 모임을 계속 갖자는 공허한 다짐은 남자들이 함께 힘을 합쳐 옥상 텃밭 경작이란 공동의 목표를 바탕으로 도시 농부 커뮤니티를 꿈꿨던 <인간의 조건2>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나물을 캐는 착한 예능이고, 입맛을 돋우는 쿡방과 먹방 모두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머위 예찬’을 풀어가는 방식이 올드하게 느껴진다. 이 올드함은 단순히 나이나 감성의 측면이 아니라 설정이 갖는 밀도에 따른 것이다. 과거 리얼버라이어티가 하루 모여 게임을 했다면, <나물 캐는 아저씨>는 하루 모여 나물을 캐는 것으로 변형된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즘 슬로우 라이프 예능은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의 예능보다 더 깊숙이 그리고 진지하게 접근한다. 리얼버라이어티의 작법 안에서 슬로우 라이프 정서를 담는 것으로는 실제 자기 집이나, 어느 마을에 며칠 머물러 살거나, 해외에 나가서 요리를 하는 이야기가 주는 감수성을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 굳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착한 예능, 힐링 감성을 가장 먼저 내세우기보다 그런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판타지를 만들기 위해 오지를 들어가거나 섬마을을 들어가거나 하는 진정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기존 슬로우라이프 예능을 가볍게 다루고, 한계가 드러난 리얼 버라이어티 포맷을 갖고 있다보니 출연진들이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리액션에 열중하면 열중할수록 어색함도 함께 드러나는 안타까움이 있다. 나물을 소개해주는 것은 유익하고, 김응수, 안정환 등이 마련하는 복고적인 예능 감성이 좋긴 하지만 나영석 사단의 지향을 얹은 리얼버라이어티, 반복되어온 아저씨들의 여행이란 로망이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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