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와 스타일, 그리고 소수자적 감수성 살아있는 ‘독전’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이것은 약을 빨고 만든 영화인가. <독전>은 마약 조직을 검거하려는 경찰을 그린 영화로,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2014)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제목도 원작의 한자표기를 그대로 쓰지만, 질감은 판이하다.

<마약전쟁>은 장르적 쾌감을 배제한 채, 야비하고 잔인한 마약조직과의 사투를 마치 기록영화처럼 담는다. <독전>은 반대의 길을 간다. 암흑조직과의 대결을 그린 영화들이 그동안 쌓아온 클리셰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캐릭터와 스타일 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 결과 서사에 구멍이 많고 반전도 그리 놀랍지 않지만, 장르적 쾌감이 상당하다. 영화는 개연성에 치중하기보다 캐릭터 열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조진웅, 故 김주혁, 류준렬, 박해준, 진서연, 김성령 등의 열연이 백화만발 한다. 여기에 스타일리시한 음악과 과잉된 미장센이 뛰어난 감각을 뽐낸다. 유머감각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소수자적 감수성이다.



◆ 서사의 개연성보다 캐릭터와 스타일에 치중한 영화

영화의 결말을 두고 설왕설래가 심하다. 혹자는 이 선생이 누군지 금방 눈치 챘다며 공력을 과시한다. 하기야 <유주얼 서스팩트> 이후 이런 식의 반전은 일종의 클리셰이다. 혹자는 마약조직의 버려진 조직원이 경찰과 협조하며 ‘믿네, 안 믿네’ 타령을 한다고 <불한당>과 비슷하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따지면 비슷한 영화가 수천 개다. 오히려 이토록 닳고 닳은 장르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더욱이 <독전>은 리메이크 작이 아닌가. <독전>에서 서사의 새로움을 찾는 것은 번지수가 어긋나 보인다. 그보다는 수많은 장르의 관습을 바닥에 깐 상태에서, 캐릭터 열전과 스타일리시한 만듦새에 한껏 도취되는 것이 ‘약 빨고 만든 영화’에 맞는 감상법이다.

영화 <독전>은 SBS에서 파일럿으로 방송되었던 예능프로그램 <신스틸러>를 연상시킨다. 연기 좀 한다하는 배우들이 강렬한 연기로 맞붙으며 불꽃을 튀긴다. 영화는 극악한 범죄 집단을 수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느와르나 수사극과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엄중한 상황임에도 블랙 코미디적 질감을 풍기며, 수위 높은 액션에도 잔인함보다는 힙하고 펑키한 독립 영화적 생동감이 감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빨간 옷의 조연옥(김성령)이 차에서 내려 위풍당당 걷다가 폭발음에 나자빠지고 허겁지겁 일어나 도로 차에 오르는 민망함, 수화 통역하는 사람이 진지하게 옮기는 쌍욕들, 온갖 작전을 멋지게 소화하던 조원호(조진웅)가 궁지에 몰리자 “살려 주세요” 라고 말하는 부조화 등이 블랙코미디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조원호가 역할을 바꿔가며 동일한 상황을 연출하는 시퀀스이다. 물론 이 설정은 원작에서 온 것이지만, 영화는 ‘차이와 반복’이 빚어내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가령 조원호가 가짜 진하림 역할을 하기 직전, 운명처럼 부하의 머리를 깨며 2막을 여는 것은 단편영화 같은 아이러니를 안긴다. 이 시퀀스에서 배우들은 마치 연극 무대처럼 과잉된 이미지들을 표출한다. 번들거리는 실크 로브를 입은 진하림(故 김주혁)과 보령(진서연)이 뿜어내는 흐느적거리는 똘끼와 예측불허의 행동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함을 쌓는다. 이들의 미친 짓을 최대한 태연하게 대하는 영락(류준렬)의 무표정한 얼굴도 블랙코미디 적이다.

특히 영락의 카메라를 알아챈 것 같은 보령이 넘어가주는 것도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는 보령이 단순히 액세서리 같은 존재가 아니라, 뭔가 꿍꿍이가 있는 존재로 보이게 한다. 박선창(박해준)의 캐릭터도 화려하다. 신제품과 깔맞춤한 양복을 입고 나타난 박선창이 실무자적인 매의 눈으로 금세 가짜 마약을 알아보는 것이나, 영락에게 한껏 거들먹거리며 지분거리는 꼴은 캐릭터의 향연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흑백사진 같았던 원작에 알록달록 형광 페인트로 그림을 입힌 듯한 변주이다.



◆ 젊은이들의 로망 ‘덕업일치’의 삶

영화 <독전>의 마지막 총성이 누가 누구를 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영화가 품고 있는 대결구도와 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마약조직은 대기업에 비유된다. 오연옥은 마약조직의 중국진출을 말하며 “이게 상상이 잘 안 될 텐데, 삼성과 맞먹는다.”고 말한다.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도 대기업과 비슷하다. 투자자가 있고, 이사가 있고, 상무가 있고 대리가 있다. 공장이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와 잡역부가 있다. 신제품 개발이 중요하고, 기술이 중요하고 유통이 중요하다. 진하림은 말한다. 한국이 기술력이 좋아서 휴대폰도 잘 만들고 약도 잘 만든다고.

실제로 마약조직을 이처럼 키운 것도 이학승이라는 재벌이었다. 해운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더 이상 마약조직 보스로 나설 수 없게 되자 자신을 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영락이었던 모양이다. 영락은 말단 운반책의 어린 아들이었지만, 실무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모양이다. 진하림 같은 거물 바이어도 “다들 중간이 없는데, 딱 실무자로서 정도를 지킨다”며 칭찬하지 않던가. 하지만 너무 어린 그를 공개할 수 없었기에 이학승은 자신이 사부를 맡고, 영락을 얼굴 없는 보스 ‘이 선생’으로 이미지화 했을 것이다. 오연옥은 이런 신비주의 홍보 전략에 자신이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한다.



마약조직이 여느 대기업과 다른 점은 나이보다 실력을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영락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남매도 그 나이에 최고 기술자로 인정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따로 독립해 나갔다. 그들 외에도 중앙실험실에는 어린 엔지니어들이 더 있다. 요컨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로 보자면, 대기업과 마약조직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조직 안에서 청년들의 위치가 다르다.

영화에서 청각장애인 남매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밤새 마약을 만드는 장면은 기이한 활력을 뿜는다. 영화는 공들인 배경음악으로 이 활력을 최대한 끌어 올린다. 청각장애인 남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시시해보였지만, 이들은 업계 최고의 천재 기술자이고 독립된 공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마음에 드는 연락책 하고만 소통하며 일한다. 즉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일하고 있다. 이들은 음악을 진동으로 즐길 만큼 최대출력으로 틀어놓고, 약을 빤 채 30시간 동안 흥겹게 일한다. 180억 원어치의 명품을 완성하여 납품하기 위함이다. 이런 삶이야말로 지금 젊은이들이 가장 꿈꾸는 ‘덕업일치’의 삶이자,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구현태가 아닌가.



◆ 청년, 장애인, 외국인

영화 <독전>에서 오연옥, 박선창, 브라이언(차승원) 등은 허세 가득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표현된다. 이들은 모두 멋지고 돈 많은 사업가, 대기업 출신의 생존력이 높은 상무, 재벌의 아들이자 목사 등으로 자본과 종교의 권위를 표상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허접한 존재로 취급함으로써 그 권위를 조롱한다.

반면 영화는 영락과 청각장애인 남매를 존귀하게 그린다. 평범한 얼굴의 영락을 최대한 잘생기게 잡는 것은 물론이고, 청각장애인 남매의 자유로움과 능력을 부각한다. 결국 재벌, 목사, 엘리트 등을 작살내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은 이들이다. 이들은 일찌감치 일에서 물러나 노르웨이에서 호젓한 일상을 누린다. 이들이 청년, 장애인, 외국인 등 변방의 소수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락은 바나나 컨테이너에서 발견된 밀입국 소년으로, 국적도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다른 이의 신분으로 살아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정체불명의 원군들이 방독면을 벗자 다인종의 얼굴이 나온다. 혹자는 이것을 <황해>나 <아수라>가 그러했듯이 외국인들을 값싼 폭력의 용병으로 묘사하여 위험 집단이라는 낙인의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지향점이 반대임을 간과한 처사이다. 영화에서 외국인들은 <초능력자>나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등장했던 외국인들과 비슷하게 그려진다. 즉 이미 한국사회의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구성원으로, 폭력의 용병이 아닌 연대할 수 있는 이웃으로 표상된다. (역시 故 김주혁이 악당으로 등장했던 <나의 절친 악당들>도 재벌 등 기득권 세력에 맞선 청년 및 외국인들의 대결을 통해 소수자들의 승리를 보여주려던 영화였지만,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심지어 재벌인 악당을 죽이지도 못하는데, 이는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한 임상수 감독의 자의식 탓으로 보인다.) <독전>의 영락은 아예 국적을 알지 못한 채 우리사회 안에 스며든 이방인으로 표상된다.

<독전>은 재벌과 종교인 등을 우스꽝스러운 적으로 조롱하면서, 청년, 장애인, 외국인등 소수자들에게 응징의 칼자루를 쥐어준다. 그리고 영락에게 발언권을 준다. 영락이 응징에 나선 이유는 엄마와 개에 대한 복수의 뜻도 있지만, “이 선생을 사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있는데, 이건 뭐 감도 없고 센스도 없고...” 즉 도덕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미학에 대한 단죄이다. 최악의 실수는 “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 말한다. 단순히 스타일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천재성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불경스럽다 여길 정도로 오만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를 이러한 오만을 밉지 않게 그리며, 오히려 그의 입을 통해 한국인 특유의 허세문화를 비판한다. “한국 사람들의 부계유전이며, 이는 현실이 지질하기 때문”이라고. 이는 소수자의 정서를 품은 이해영 감독이 주류 한국 사회에 날리는 일침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쓸쓸함과 처연함을 담는다. 이는 집착에서 허망해진 결과이기도 하고, 주류적인 욕망을 벗어난 사람 특유의 헛헛함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미련이 한 오라기도 남아 있지 않은 이들끼리 누가 총에 맞은들 무슨 상관이랴. 푹푹 쌓인 눈밭 속에 총성조차 아득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독전>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