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남녀’, 검시된 사체가 말하는 우리 사회 현실들

[엔터미디어=정덕현] 전교 1등 하던 고등학생이 사체로 발견되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것. 자살인가 타살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법의관 백범(정재영)이 사체를 검시한다. 사건을 추적하는 수사팀은 엘리베이터 CCTV에 잡힌 자살 몇 시간 전 옥상에 함께 올라간 4명의 아이들을 의심하지만, 백범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함부로 “소설 쓰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가 다룬 한 고등학생의 죽음은 법의학을 통해 그 원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미드 CSI류의 장르물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법남녀>는 토착적인 우리네 정서의 느낌을 준다. 살벌한 살인사건이나 치밀한 연쇄살인 같은 걸 밝혀내는 미드와는 달리 훨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질 법한 사건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고등학생의 죽음은 애초에 타살이 아닌가 의심되었지만, 사체 속에 남겨진 음식물의 소화시간을 분석해냄으로써 사망시간에 그 아이가 혼자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결국 자살로 판정된 것. 하지만 백범의 라이벌이자 죽은 아이의 아버지인 마도남(송영규)은 이를 인정할 수가 없다. 사망 당일 아이가 돈을 아껴 주문한 프라모델이 도착한 사실 때문이다. 자살할 정도로 비관했다면 그런 주문을 할 리가 만무라는 것.



백범 역시 타살은 아니지만 학생의 죽음에 남는 의문점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찾아낸 사인은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각성제 과용에 의한 환각 증상이었다. 검시된 아이의 몸에서 갖가지 약 성분들이 과다검출된 것. 전교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시험기간에 잠을 깨는 각성제를 과다 복용한 학생은 “오늘은 자라”는 엄마의 말을 환각과 환청으로 들으며 아파트 옥상에서 침대에 뛰어들 듯 뛰어내렸다.

법의학은 ‘사체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그런데 <검법남녀>는 그 사체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려준다. 결국 이 고등학생을 죽음으로 내몬 건 무엇일까. 그 사체 가득 채워져 있던 독 같은 각성제들이 의미하는 건 뭘까. 그건 입시경쟁이 학생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끄는 현실이다. 심지어 그 부모가 ‘공부 잘하는 약’이라며 불법 유입된 약을 사다 주는 현실이라니.

그래서 <검법남녀>가 다루는 사건과 그 사건에 등장하는 사체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드러난다. 첫 번째 사건으로 다뤄진 한 여성의 사체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가정폭력’의 비극을 담았다.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오던 한 여성의 사망. 결국 그 죽음은 이 여성이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자작극으로 판명난다.



고인의 냉동정자를 통해 임신해 아이를 낳았다며 그 유산을 주장하는 한 여인의 사건은, 유산을 두고 벌어지는 가족, 친족 간의 갈등을 담았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던 이야기는 결국 그 여인이 유산을 노리고 벌인 범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씁쓸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고인의 유산을 두고 종종 벌어지곤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사체를 검시하고 그걸 통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법의학이라는 소재가 가진 힘이 남다르다는 점은 <검법남녀>가 애초의 예상과 달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낳은 힘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 만이었다면 어딘가 부족했을 게다. <검법남녀>는 백범이라는 법의관이 검시하는 사체에 우리네 현실의 문제들을 담았다. 이 드라마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미드 장르물과 달리 토착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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