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주말예능 ‘두니아’, 흥행 실패했지만 가치 있는 도전

[엔터미디어=정덕현] MBC 주말예능 <두니아>는 망했다. 아직 3회밖에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망했다’고 말하는 것이 과하다고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파도 사실은 사실이다. 이를 지표적으로 말해주는 건 시청률이다. 첫 회 3.5%(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두니아>는 3회에 2.8%로 떨어졌다.

반응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래도 지지하는 이들은 이 ‘처음 만난 세계’가 보여주는 ‘게임적 요소’와 인터넷 ‘짤방’에 등장할 법한 병맛을 낄낄대며 들여다본다. ‘언리얼 버라이어티’라고 붙여놓았지만, 사실은 ‘게임예능’이라고 하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두니아>는 게임 세대들의 감성을 예능 곳곳에 풀어놓았다.

매일 모바일 게임에 접속해 게임을 하는 것이 TV를 시청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10대 20대들에게는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풍경이다. 사실상 캐릭터를 선택하고 공룡이 출몰하는 낯선 세계 속으로 들어가 미션을 해결해가는, 그것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이들과 팀을 이뤄 해나가는 게임을 매일 같이 하는 이들에게 TV 예능은 너무 익숙하지만 지루한 세계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두니아> 같은 예능은 지상파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처음 만난 세계’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여러 차례 만났던 세계들이다. 그런 세계를 지상파로도 보게 됐다는 건 이들에게 그만큼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꾸로 지상파 예능에 익숙하지만 게임의 세계는 잘 모르는 세대에게 <두니아>는 ‘처음 만난 세계’의 당혹감을 줄 수 있다. 그 낯설음을 토로하는 이들의 가장 큰 반응이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건 그 당혹감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저건 시트콤인가 아니면 리얼리티인가. 어색한 연기가 들어가는 걸 보면 상당 부분이 대본으로 짜여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어느 부분에 들어가면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리얼리티인가 생각할 즈음에 갑자기 공룡이 나타나는 황당한 허구 속으로 또 들어간다.

가상이지만 현실이고, 현실이지만 가상인 세계가 바로 <두니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미 ‘두니아’라고 설정된 무인도 같은 섬의 공간 자체가 가상이자 현실이다. 그 곳은 갑자기 워프되어 들어가게 된 인물들이 함께 힘을 합쳐 생존해가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가상공간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먹을 걸 찾아내서 먹어야 하고 잠자리를 만들어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이미 SBS <정글의 법칙>을 통해 이러한 야생의 공간에서 생존해가는 병만족의 이야기를 들여다본 적이 있지만, <두니아>는 그 공간이 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정글의 법칙>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리얼함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공간이 가상이며 그런 가상 속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재밌다는 걸 끝임 없이 끄집어낸다. 이 프로그램에 컴퓨터 게임 속에 쓰였을 법한 자막들이 계속 등장해 병맛 유머가 섞인 설명을 달고 있는 건 그래서다. 두니아라는 이 세계는 가상이라는 것.

하지만 한때 ‘리얼리티’ 논쟁을 자주 벌여왔던 것처럼 지상파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그것이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낚시를 하러 가서도 이상하게 한 출연자가 물고기를 연거푸 잡으면 그 바다 밑에서 누군가 물고기를 꿰어 주는 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었던 것. 리얼리티 예능의 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진짜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두니아>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건 가짜이지만, 그 가짜의 세계가 얼마나 실감을 주기도 하고 재미를 주기도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중요한 건 가상의 세계는 수용자(시청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그 세계를 수용함으로써만 받아들여지고 나아가 즐길 수 있는 세계가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게임에 빠져 있는 사람과 그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그 세계에 대한 수용 감각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두니아>는 그 낯선 게임의 세계를 갑자기 꺼내놓았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반색하지만, 모르는 이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두니아>는 그래서 망했다. 시청률이 바닥이고 반등할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열성적으로 보는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에겐 지상파의 기준으로 망했건 시청률이 바닥이건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지상파의 기준으로 만들어진다는 예능 프로그램의 세계가 그들에게는 지루해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니아> 같은 시도는 더더욱 가치 있게 다가온다. 이제 곧 지상파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그 옛날 방식에만 머무르며 과감한 시도나 도전을 하지 않아 외면 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망했다고 손가락질 할 일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만한 도전을 시도할 패기조차 없다면 지상파의 미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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