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언니’, 이 선량한 예능 프로그램에 대하여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JTBC4 예능 프로그램 <나만 알고 싶은 비밀언니>는 예고편이 나왔을 때부터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퀴어 베이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이다. 나이차가 나는 두 명의 여자 연예인이 호텔에서 만나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데이트를 하다가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내고 헤어진다. 미션의 성격이나 연출과 각본, 음악 선정이 모두 대놓고 이들의 이야기를 유사연애로 몰아가고 있고, 한채영을 제외하면 모두 아이돌인 세 쌍의 출연자들 전원이 여성팬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특히 가장 화제를 모았던 선미/슬기 커플의 에피소드는 의도가 노출되는 것으로 모자라 폭발할 정도였다.

<나만 알고 싶은 비밀언니>에서 놀라운 점은 이 오글오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무시하지 못할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세 쌍의 커플은 모두 각자와 구별되는 분명한 차별성과 개성이 있었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유사연애의 위장처럼 보였던, 몇 년 더 연예계에 있었던 선배가 같은 직종의 후배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한다는 의도를 바탕으로 둔 이야기가 뜻밖에도 알찼다.

선후배 이야기는 한국 예능물에서 흔해 빠졌다. 흔해 빠진 걸 넘어 지나칠 정도다.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시청자들 앞에서 출연자의 선후배를 밝히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모두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나이와 데뷔 시기를 밝히며 교통정리를 한다. 한국 예능은 주로 남성 출연자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특유의 폭력적인 강압적인 선후배 문화가 두드러진다. 이 문화를 계속 노출시키는 게 올바른 일이긴 한 것인가? 왜 우리가 그들의 선후배 관계와 나이를 알아야 하는가? 시청자들 앞에서 그들은 그냥 평등하지 않은가?



<나만 알고 싶은 비밀언니>도 이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엔 위계질서의 폭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언니’는 ‘동생’을 통제하지 않으며 그들의 대화는 쌍방으로 흐른다. 프로그램의 유사연애적 특성이 이런 내용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고정된 위계질서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게 아니다. 모두 비교적 낯선 사람과 데이트 중이며 자신의 위치를 다지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의도는 여전히 유사연애로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것이었겠지만 계산 밖의 수확이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만 알고 싶은 비밀언니>가 얻은 것은 선량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재미를 위해 불쾌한 소동을 과장하는 부분이 없다. 있다면 출연자들의 대화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매스컴과 그에 반응하는 댓글들 정도일 것이다. 효연이 휘인에게 가장 눈에 뜨이지 않는 멤버로서 생존하고 살아갔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를 보라. 그 자체가 훌륭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모두가 곱씹어볼만한 긍정적인 메시지 역시 전달한다. 하지만 이를 다룬 연예기사들의 제목은 ‘덜 인기있는 멤버의 질투’를 강조하고 댓글은 여기에 반응한다. 실제 내용과 그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의 이상한 차이는 오히려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입증한다. <나만 알고 싶은 비밀언니>의 선량함은 시청자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보편화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인디와이어>의 평론가 데이비드 얼릭은 ‘나이스코어 nicecor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당연히 그가 좋아하는 <패딩턴 2>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하고 글을 읽었고 실제로 그랬다. 그가 다룬 나머지 영화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다.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프레드 로저스를 다룬 다큐멘터리인 [Won’t You Be My Neighbor]와 부녀 관계를 다룬 선댄스 히트작인 [Hearts Beat Loud] 같은 작품들인데 과연 이들이 뉴웨이브를 형성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비어트리스 포터의 겁에 질린 토끼를 ‘쿨하고 심술궂은 요새 남자애’로 만든 <피터 래빗>의 반응이 그저 그런 편이었고 원작 캐릭터의 따뜻한 마음과 친절함, 예의를 버리지 않은 <패딩턴 2>가 대히트를 한 걸 생각해보면 ‘나이스코어’가 실체 없는 표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왜 모든 재미가 무례함이나 폭력과 연결되어야 하는가? 과연 그게 진짜로 재미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선량함과 친절함을 더 많이 원한다면 왜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는 달라야 하는가? 특히 무례함과 위악과 천박함이 일상화되어 숨쉬기 어려워진 지금, 비폭력적이고 평등한 선량함과 친절함은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JTBC4]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