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한 미스코리아?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사랑하는. 세계인에게 그 향기를 진하게 남길 수 있는 그런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습니다.”

- KBS2 <여유만만>에서 2011년 미스코리아 진 이성혜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1957년에 시작된 ‘미스 코리아’. 혼삿길이 막힐까 걱정돼 괜찮은 집안일수록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막던 시절이었다지만 우리 친정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해 미스코리아 ‘眞’ 오현주 씨의 이름을 따서 나를 ‘현주’라고 불렀다. 할아버님께서 돌림자로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리시는 바람에 불발됐으나 꽤 오래 나는 내 이름을 ‘현주’로 알고 살았다. 입학을 앞두고서야 갑자기 ‘실은 네 이름은 석희다’라고 해서 나름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철이 든 후엔 ‘아니 미스코리아가 무슨 존경할 인물이라고 이름을 따라 지으셨느냐’ 따져 묻기도 했는데 어머니의 변에 의하면 오현주 씨는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 인기상, 스피치상, 포토제닉상 등 4개의 상을 거머쥐며 15위 내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선전했고 귀국 후 카퍼레이드까지 벌이는 등 화제를 몰고 온 인물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미모를 닮으라고 이름을 빌려 왔던 것이 아니라 세계무대에 나가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자신감에 반해 딸이 오현주 씨처럼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지난 월요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미스코리아 그 이후 이야기’에서 마침 오현주 씨의 사진 한 장을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는데 어쨌거나 그 뒤로부터 어언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그에 필적할 성과를 올린 미스코리아가 없는 걸 보면 우리 어머니의 선택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요즘에야 올해 미스코리아가 누군지 아예 알지 못하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지만 그 당시만 해도 미스코리아는 그처럼 여러 사람이 동경해마지 않는 슈퍼스타 같은 존재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1970년대에 이르러 지상파로 생중계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가 연예계 진출의 통로로 적극 이용되기 시작했는데 대회가 방송되는 날 TV 앞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치 못할 가히 진풍경이었다.

최근의 Mnet <슈퍼스타 K>며 MBC <나는 가수다>에 쏟아지는 관심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니 볼거리가 워낙 없던 시절이었던지라 오히려 몇 배는 더하고도 남을 폭발적인 반응이었지 싶다. 생각하면 코미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야회복이라 불리던 드레스 심사, 수영복 심사를 거치는 동안 각자 결선에 오를 후보를 종이에 적어가며 가족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는가 하면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의 당락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기는 그때는 대통령이나 과학자만큼 장래 희망으로 미스코리아를 꼽는 여자아이들이 흔하던 시절이니까. 그 시절에도 만약 ARS 투표가 있었다면 참여도가 엄청나지 않았을까?










MBC가 2001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생중계가 여성의 성 상품화를 부추기고 방송의 공공성에도 위배된다는 이유로 방송을 중단하면서 비로소 톱스타 등용문이라는 허울이 벗겨졌지만 사실 이 대회를 통해 꿈을 이룬 이들은 무수히 많았다. 또 그와는 달리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연예계의 러브 콜에 흔들리지 않고 바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도 꽤 있었으나 이렇든 저렇든 세상이 달라졌으니 만큼 여성으로서의 최고의 가치를 美에 둔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여유만만>을 통해 밝힌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세계인에게 그 향기를 진하게 남기겠다’는 2011년 미스코리아 진 이성혜의 포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장래희망이 현모양처라느니, 꿈이 세계평화라느니, 미용실 원장님에게 영광을 돌리겠다느니 하는, 지금껏 개그 소재로 쓰일 정도로 놀림거리가 되는 과거 미스코리아들의 발언에 비하면 진일보한 소망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리고 단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한 미스코리아에게 뭘 그리 바라나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국가중대사 FTA가 부지불식간에 통과된 시점이라 그런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1957년 출발 당시의 미스코리아와 2011년의 미스코리아, 강산이 다섯 차례나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의식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다. 왜 한때 그토록 뜨거운 관심 속에 있던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는지, 과연 단지 성 상품화 문제 때문 만일지, 한번 생각해봐야 옳지 않을까? 그녀들이 수십 년간 주야장천 앵무새처럼 읊어온, 사랑하며 지키며 널리 알리겠다는 한국의 아름다움, 우리가 진정 지키고 사랑하고 알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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