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은 여전히 멜로를 원한다, 다만 새로워야 할 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우리네 드라마에서 멜로는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그래서 어떤 장르물을 봐도 어느 순간 멜로로 빠져드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의 드라마 정국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성되어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멜로 없는 드라마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월화드라마 SBS <기름진 멜로>는 중식당 헝그리웍을 둘러싸고 거대 자본을 갖고 있는 호텔 중식당의 갑질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루지만, 제목에 이미 담겨있듯이 멜로가 중심이다. ‘갑질하는 자본’이라는 사회적 코드가 복수극의 형태로 그려질 수도 있었지만, 드라마는 시종일관 멜로에 천착한다. 그래서일까. 어딘가 이 멜로는 제목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JTBC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현직 판사가 쓴 작품답게 현실감 넘치는 법정과 판사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판사가 주인공인 본격 법정물이지만, 이 드라마에도 멜로 코드는 빠지지 않는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박차오름(고아라)과 임바른(김명수)은 이미 고교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바 있고, 다시 판사로서 만나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 중이다. 물론 이들의 멜로는 본격 법정물로서의 색채를 흐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아니라도 조연인 정보왕(류덕환)과 이도연(이엘리야)이 맺어가는 관계는 본격적인 멜로의 색깔을 드리운다.



우리에게 멜로는 이제 판타지나 SF 장르라고 해도 빠지지 않는 코드가 되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KBS <너도 인간이니?>와 tvN <어바웃타임>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지만 그 로봇과의 멜로가 엮어지고, 죽음의 시간을 볼 수 있는 판타지적 능력이 등장해도 임박해오는 죽음 앞의 사랑을 다룬다. 심지어 수목드라마 MBC <이리와 안아줘> 같은 작품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그만큼 우리네 대중들은 드라마에서 멜로를 좋아하고 또 원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큰 성공을 거둔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도 외면은 블록버스터 액션과 판타지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 액면은 멜로가 담겨져 있다. 물론 <시그널>이나 <비밀의 숲>처럼 멜로 없이 장르적 힘만으로 대중적인 열광을 이끌어낸 작품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많은 작품들이 멜로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멜로를 그린다고 해서 이제 모든 작품이 성공하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수목드라마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케이블 채널이면서 8%(닐슨 코리아)가 넘는 시청률을 가져가는 반면, SBS <훈남정음> 같은 경우 4%대에 머물러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여전히 멜로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가 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새롭지 않은 멜로는 이제 외면 받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성공한 멜로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심지어 미투 현실을 환기시키는 사회적 코드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관계로서 갑을의 위치에 있던 남녀가 사적 관계에서는 그 갑을이 역전되는 모습을 이 드라마는 담고 있다.

물론 장르물과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멜로의 등장은 큰 무리가 없지만, 때때로 장르물로만 가도 될 이야기에 사족처럼 멜로가 들어가거나, 본 이야기는 없이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사랑이야기로만 태만하게 전개되는 멜로는 식상해졌다. 대중들이 원하는 건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지 않다면 아예 없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MBC <검법남녀>처럼 멜로 없이도 충분히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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