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김은숙 작가, 부정적 여론 어떻게 잠재울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명불허전이다. 드라마계의 흥행기록제조기 김은숙 작가가 또 하나의 기록을 경신했다. 2018년 최고 대작 드라마로 기대를 모은 신작 tvN <미스터 션샤인>의 첫 회 시청률은 8.9%를 기록하며 역대 케이블 드라마 시청률 역사를 새로 썼다. 기존의 기록은 김은숙의 전작 <도깨비>가 보유하고 있었다. 대작드라마가 실종된 방송계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서사극의 압도적 위용이다.

하지만 부정적 여론도 적지 않다. 이병헌 캐스팅에 대한 비판, tvN <나의 아저씨>에 이은 남녀 주연배우 나이차 논란, 유연석 역할을 둘러싼 친일파 미화 의혹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첫 회의 높은 시청률이 김은숙 작가 이름값의 결과였다면, 앞으로의 이야기는 논란도 극복할 정도의 매력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시청률을 접어두고 본 <미스터 션샤인>의 첫 주 방송분은 과연 그 가능성을 보여줬을까? [TV삼분지계]가 구한말의 한성으로 들어가 봤다.



◆ 김태리만으로는 납득 안가는 의문의 캐스팅

방송 칼럼니스트. 앉아서 TV를 보고 글을 쓰니 세상 편하겠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자신들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먹고 산다고 비죽거리는 제작진이며 방송인들도 봤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괴로움도 있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일, 바로 이번 <미스터 선샤인> 같은 경우다. 한참 나이 어린 후배 연예인과의 추문 이후 이병헌의 영화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버젓이 드라마 주인공이란다. 게다가 드라마 안에서 스무 살 아래 배우와 연인 관계로 발전할 예정이라나? 성 관련 말썽꾼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TV 출연을 막는 것이 옳다고 믿어 왔다. 적어도 그 정도 제재는 있어야 하지 않나. 관용의 미덕이니 뭐니 언제까지 쓸어 덮고 감춰줄 겐가.



고애신(김태리)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자신의 부모들처럼 격변하는 조선에 도움이 되고자 애를 쓴다. 손녀가 심히 걱정스러운 조부는 장 포수(최무성)에게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스승 장 포수에게 애신이 말했다. “한 나라의 황후가 시해 당했습니다. 나라님은 이 나라 저 나라 황제에게 글로 손을 벌립니다. 그 덕에 서양 대국들이 줄지어 조선에 간섭합니다. 글은 힘이 없습니다. 저는 총포로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여성 쿠도 히나(김민정)는 손님에게 희롱당한 종업원에게 당부한다. “그깟 잔이야 다시 사면 그만, 나는 네가 더 귀하단다. 그러니 앞으로 누구든 너를 해하려하면 울지 말고 물기를 택하렴.”

이런 당차고 지혜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든 제작진이 왜 의문의 캐스팅을 했는지 납득이 아니 된다. 숨은 큰 뜻을 찾아내길 바라며 몇 번이나 돌려 봤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하기는 극중 애신의 대사처럼 작금의 이 나라는 이상한 것 투성이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첫 주는 김지원-김태리 모녀가 다했다

<미스터 션샤인> 첫 회는 남주인공 유진(이병헌)의 등장으로 시작해 여주인공 애신(김태리)의 등장으로 끝이 난다. 분량의 대부분은 유년기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유진의 서사로 채워졌으나, 고작 1분 여에 불과한 애신의 등장신은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순식간에 그녀 쪽으로 끌어올 만큼 인상적이었다. 애신이 방물장수를 기별지의 위장 전달책으로 이용하는 그 짧은 장면은 그녀의 지적 욕구 뿐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시대을 향한 저항까지 포함한다. 애신과 같은 사대부집 규수는 바깥세상 소식에 관심을 가져서도, 과도한 지식을 추구해도 안되는 시대였다.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장신구 대신 금기의 기별지를 손에 쥔 모습만으로 애신의 캐릭터는 강렬하게 완성된다. 그 손에 본격적으로 총이 쥐어지니 폭발력은 한층 배가될 수밖에 없다.



애신 캐릭터의 무게는, 역시 짧고 굵게 등장했던 모친 희진(김지원)의 존재감이 더해진 것이다. 남편 상완(진구)과 함께 일본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희진은 상완의 거사가 실패하자 어린 애신과 동료들을 피신시키고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최후를 맞이한다. 조국을 위해 총을 잡는 애신의 모습은 모친의 운명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희진과 애신 모녀의 서사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의병의 역사라는 점에서 영화 <암살>의 안성심(진경)과 안옥윤(전지현) 모녀 이야기 못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미스터 션샤인>의 핵심 주제와도 잘 들어맞는다. 2회에서 희진이 그저 “상완이 사랑했던 여인”으로 설명되는 장면이나, 애신이 저격 활동 뒤 사대부집 규수의 얼굴을 드러내며 추적을 따돌리는 장면은 모두 여성들의 익명성을 보여준다. 제목은 <미스터 션샤인>이지만, 첫 주 방송에서 가장 큰 빛을 발한 존재들은 그 익명성을 뚫고 나온 여성 캐릭터들이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더 많은 이들을 초대하기 위한 ‘김은숙 월드’의 변화

한국의 로맨스드라마 시청자들은 결국 두 부류로 나뉜다. 김은숙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김은숙의 여성관과 언어 모두에 동의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리 화제인 작품이어도 그 세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전자가 SBS <상속자들>로 대표되는 ‘남자주인공에게 끌려다니며 그에게 구원받는 여자주인공’이라는 종속적인 여성상이라면, 후자는“이 안에 너 있다.”처럼 로맨스의 신화성을 강조하는 무대적인 대사들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그간 ‘김은숙 월드’로 넘어올 수 없었던 이들을 초대하고자 하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다. 김은숙은 종속적인 여성상에 대한 혐의를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주인공 고애신(김태리)에게 장총을 들려주는 것으로 돌파하려 한다. 두 아들에 이어 손녀까지 잃을까 걱정하는 할아버지 사홍(이호재)은 손녀 애신을 단념시키겠다고 “지애비 그늘에서 나비나 수놓으며 꽃처럼 살”라 말하지만, 애신은 그 만류를 “차라리 죽겠습니다”란말로 내치며 끝내 사홍을 설득해내는 걸물이다. 글로리호텔에서 난동을 피우는 조선남자 손님을 사기그릇 조각으로 베어버리는 히나(김민정)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상적이다.



한편 가장 심하게 호오가 갈리는 지점이었던 무대적인 대사들은, 배경을 1900년대초 한성으로 옮기며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는다. “조선에선 그 어떤 사내도 감히 나를 노상에 이리 세워 놓을 수는 없거든”(애신) 같은 자의식과잉의 대사는 신분제의 흔적이 선명한 1900년대 한성이라는 시공간을 만나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어느 쪽으로 가시오?”(유진) “그건 왜 묻소?”(애신)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사방엔 낭인이고, 우린 서로 뭔가 들킨 듯 하니.”(유진) 같은 대화 또한, 수많은 작품들에서 낭만적으로 신화화된 독립투사들의 비장한 대화라는 맥락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미스터 션샤인>에는 여전히 불안한 대목이 많다. 신문물을 배우는 동네처녀로부터 자신은 벼슬보다 ‘러브’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애신은 과연 벼슬보다 좋다는 ‘러브’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조국의 자강만을 바라며 살아온 의병이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는 전개로 가기 위한 밑밥인 셈이다. 그런가하면 비로소 제시공간을 만났다 싶었던 대사들은, 역설적으로 종종 현대어투를 다버리지 못해서 몰입을 방해한다. “룸에 프리드링크 달아놓을게요”(히나) 같은 21세기풍 대사가 21세기의 어투로 연기되는 걸 보고 있는 건 고통스럽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 어떤 비판에도 제 작품 세계를 크게 흔든 적은 없었던 김은숙이 보여주는 이 작은 변화가 더 흥미롭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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