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내상, 정극연기 하니 통했다?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하이킥1’과 ‘하이킥2’에서는 할아버지나 중년 남자, 가장 캐릭터들은 다 떴다. 이순재, 정준하, 정보석 등은 다른 캐릭터보다 먼저 캐릭터 특성을 극대화했다. 이들은 김병욱표 시트콤인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를 포함해 정극 연기를 매우 잘 하는 배우였다.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적 요소가 있었고, 진지하면서도 웃기는 면이 있는, 양 면을 유연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배우였다.
 
‘하이킥3’의 가장인 안내상도 그런 연기파 배우에 속한다. 하지만 김병욱표 전작 시트콤들의 가장이 일찍 부각된 것과는 달리 안내상은 방송분량에 비해 시청자에게 크게 각인이 되지 못했다.

안내상 가족은 친구의 배신으로 회사가 파산해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가게 된 신세. 처남 윤계상 집에 얹혀살면서 빚쟁이에게 쫓겨다니는 그는 찌질하고 무능력해보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안내상이 연기했던 문영남 작가의 전작 ‘조강지처클럽’과 ‘수상한 삼형제’에서 이미 선보였기 때문에 새로움이 없었다. 안내상은 오랜 기간 진상 짓을 해도 캐릭터의 반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우려는 이미 제작발표에서도 제기된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안내상은 정극 연기를 하니 살아났다. 시트콤에서 이렇게 비극을 해도 되나 될 정도의 분위기에서 안내상은 빛을 발한다. 안내상이 생계를 위해 할머니 분장을 하고 공사판에서 일할 때, 그리고 허리를 다쳤을 때부터 안내상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구치소에 갇힌 안내상은 아내인 윤유선이 빚쟁이에게 무릎을 꿇은 후 처남 윤계상에게 돈을 빌려 출소할 수 있었다. 안내상은 하프마라톤 대회에 출전했지만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계속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과잉 행동, 심지어 공격성까지 보였다. 하지만 안내상은 가족들이 발견한 일기에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초라하지만 완주만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다”고 썼다.

안내상의 모습은 IMF 시절 직장을 잃은 40~50대 가장들 사이에 마라톤 열풍이 일었던 실제 우리 사회상을 연상케한다. 그래서 안내상 가족들이 안내상의 모습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웃으면서만 볼 수 없다.
 
이렇게 김병욱PD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면서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정조를 시트콤 내에서 또 다시 구현하고 있다.
 
‘밉상’ 안수정(크리스탈)의 캐릭터 변화도 이때부터다. 상대에 대한 배려심은커녕,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던 ‘스투피드’ 안수정은 자기중심적이고 버릇없는 대표적인 밉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좋아해주기 힘든 캐릭터였다. 오빠인 안종석과 조금도 지지 않으려고 매일 싸우는 모습에 싫증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안수정이 기운이 빠진 아빠에게 힘내라고 하면서 진심을 보여줄 때 시청자도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파산의 고민과 애로는 가족이 가장 먼저, 그리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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