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숱한 여행 프로그램 속 올곧이 빛난 까닭

“정겨운 기억 속 그 예쁜 동네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이발을 하고
누군가는 뜨신 밥을 짓습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 구두를 만들죠,
그 곳엔 그렇게 심지 곧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중에서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이 쉼 없이 유럽이며 중국, 일본, 동남아 골목골목을 누빈다. 올해만 해도 숱한 연예인들이 볼거리, 먹을거리를 찾아 떠났다. 실제로 인기 프로그램이 한 차례 다루고 나면 이내 우리나라 여행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지? 하기는 나 또한 즐겨찾기 하듯 눈에 담아 둔 곳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 기행 다큐멘터리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보고나니 비행기 탈 마음이 잦아들었다. 우선 ‘동네 한 바퀴 따라잡기’부터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왜 이 어여쁘고 정감 가는 곳을 몰랐던가, 반성도 된다. 살면서 줄잡아 열 번은 넘게 들렀을 중림동 약현 성당만 해도 그렇다. 걔서 남대문이 그토록 가까이 보일 줄이야. 고 노회찬 의원의 단골집이라는 성우 이용원도, 계동 세탁소와 양복점도 자주 지나친 곳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면 날 잡아 곱게 차려 입고 나들이를 하리라, 콩나물밥집, 개미 슈퍼, 부동산 주인 어르신과 넌지시 눈인사라도 나눠 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수그러들 기색이 없는 무더위. 갈증이라도 달랠 겸 먼저 안내자 역할의 연기자 김영철 씨를 만나봤다.



김영철 : 나이가 들면 그저 입을 닫는 게 상책이죠.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남은 미래를 내다보면 입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제 얘기를 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동네 분들의 얘기를 듣는 프로그램이라기에 따라 나섰는데 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한 자리에서 오랜 세월 장사를 해 오신 분들의 소신, 철학, 자긍심에 감탄했어요. 얼개는 짜여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이동하며 여러 분들을 만났는데요. 돌발 상황도 생기고 실없는 소리도 하게 되고, 그래서 오히려 더 풍성해졌어요. 3천 원짜리 콩나물밥집은 제가 지나가다 먹고 싶어서 들어간 곳이에요. 워낙 편히 먹는 음식을 좋아해서요. 아침 7시에 문을 여시는데 그러기 위해 새벽부터 혼자 준비를 하신다고 합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한 그릇의 추억을 먹었습니다. 평생 바르고 곧게 살아오신, 귀한 분들을 이번에 많이 만났어요.

KBS <태조 왕건>이나 SBS <야인시대>, KBS2 <아이리스> 때는 캐릭터가 강해서인지 사람들이 도무지 가까이 오질 않았어요. 그러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의 평범한 아버지 양병태 역이 전환점이 됐어요. 그제야 친근감을 느끼시더라고요, 지난 해 출연한 KBS2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 덕인지 ‘궁예’ 캐릭터 덕인지 이번에 많이들 반기시고 속내를 보여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맛 기행이나 문화, 역사적 가치를 알려드리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그래서 칼국수, 설렁탕, 콩국수 집 등 맛있는 집을 여러 곳 찾았지만 담지 않았어요.

제목 그대로 동네를 한 바퀴 거닐면서 눈에 들어오는 정겹고 따뜻하고 신기한 풍경들을 소개하려고 했죠. 순전히 김영철 시점으로요. 예를 들어 만리동 기름집에서 돈 통으로 쓰시던 탄통 같은 것은 아마 여자 분들은 못 알아보시지 싶어요. 반대로 제가 무심히 지나친 것도 많을 거고요. 한번 둘러보세요. 다른 분들의 시선이 더해져서 알찬 안내서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함께 작품을 한 적이 없는 강부자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 분들이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아내 이문희 씨 얼굴이 잠깐 비춰서 그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요즘 내외간에 또 자식이나 손자를 방송에 소개들을 하지만, 저는 사양하게 되더군요. 아무리 소수라 해도 불편하게 여기는 분들이 분명 계시기 때문이에요. 앞날을 장담 못하나 나이 들수록 모든 것이 조심스럽네요. 그런 의미에서 <동네 한 바퀴>가 또 다른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배우고 얻은 게 많아서 후배들에게도 권하고 싶고요.

“오늘도 누군가는 그 길에 꽃을 심고
누군가는 들고나는 이웃들을 위해 다리품을 팔 겁니다.
땀 흘려 구김살을 다리고
성실하게 하루하루 역사를 쓰는 사람들의 동네.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은 골목을 지나
저도 이제 집으로 갑니다.“

-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중에서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사진=KBS, 허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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