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 애초에 성공하긴 어려운 프로젝트인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김지운 감독은 원래 오시이 마모루의 히트작 <공각기동대>를 실사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논리적인 아이디어이고 만약 이게 현실화되었다면 얼마 전에 나온 할리우드 영화보다 괜찮았을 것이다. 적어도 화이트워싱과 오리엔탈리즘, 수상쩍은 지리적 배경에 대한 구박은 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판권은 할리우드로 넘어갔고, 그가 그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쓰고 그가 만든 허구의 대체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인랑>이었다.

그가 <인랑>의 실사판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도대체 왜?”였다. <공각기동대> 실사판을 포기하고 그 대안으로 <인랑>을 고르는 과정은 논리적이지만 여전히 그렇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김지운은 지금까지 호러, 코미디, 조폭 액션, 만주 서부극, 첩보물과 같은 장르를 유랑하듯 거쳤으니 차기작으로 근미래 SF영화를 고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데, 이게 <인랑>의 리메이크, 정확히 말해 한국어 실사 영화 번안물인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공각기동대>를 한국어 실사 영화로 만드는 건 말이 된다. 각본만 본다면 이 영화의 좋은 부분은 대부분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에서 나온 것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지며 과장된 자기도취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원작엔 강한 과학과 과학적 상상력 모두가 있으며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이야기 역시 풍부하다. 심지어 오시이 마모루를 빼고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랑>의 무게 절반 이상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전한 1960년대라는 대체 역사 자체와 그에 대한 오타쿠적 집착에서 나온다. 이를 제외하면 이야기는 빈곤하고 캐릭터도 특별할 게 없다. 그런데 한국어 영화로 만들려면 이 모든 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지운은 이 재료를 한국화하려고 시도하긴 했다. 그는 이 영화의 배경을 우리 역사에서 이어지는 근미래로 옮겼다. 남북한은 통일을 앞두고 있고 주변국은 이에 긴장하고 있으며 반통일세력이 부상한다. 이 정도면 강화복을 입은 특기대가 나타나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원작에 비하면 이 설정은 평범하면서도 어색하다. 일단 남북한통일 시도와 관련된 SF적 상상력이 반영된 작품은 흔한 편이고 한국판 <인랑>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아무리 기를 써도 우리 역사와 연결되는 미래는 <인랑>이 그리는 극단적인 미래와 연결이 쉽지가 않다. 특기대가 입고 다니는 강화복이 등장할 때는 더욱 그렇고.



일본 애니메이션과 스타 캐스팅의 한국 액션물 사이의 간극도 만만치 않게 크며 영화는 그 틈을 끝까지 채우지 못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일본어로 읊어도 오글오글한 대사들을 번역해 한국 배우에게 주고 실사영화를 찍는다. 당연히 민망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인랑>이라는 제목도 한국어와 맞지 않는다. 붉은 눈의 강화복을 입은 주인공은 애니메이션에서는 훌륭한 캐릭터 겸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강동원이 주인공인 영화여도 그럴까. 인터뷰를 읽기 전에 강화복 안에 누가 들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김지운이 채워넣은 여분의 이야기도 원작의 이야기와 계속 충돌할 뿐이다. 기본 설정을 바꾸더라도 관념적인 설정 나열일 수밖에 없는 각본이라 배우들은 모두 애를 먹는다.

<인랑>은 최근 혹독한 관객평에 시달리고 있고 흥행성적도 형편없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리얼> 급수라는 생각은 안 든다. 더 동의하기 힘든 건 김지운의 영화가 좋은 원작을 망쳐놓았다는 반응인데, 이 영화에서 덜컹거리는 곳 대부분이 원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애당초부터 재미있거나 좋은 영화가 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원작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도로 스타일화된 어법과 태도 때문에 그 단점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인랑>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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