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네 반찬’, 기억이 소환되는 복고 레시피의 묘미

[엔터미디어=정덕현] 음식은 본래 기억이 그 맛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누군가 해줬던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비슷한 음식이 나왔을 때 다시 떠올려진다. 지금 눈앞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기억의 맛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요리도 결국은 그 기억의 맛을 찾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풍족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방과 후 학교 앞에서 종이 봉지에 담아 파는 고둥을 입으로 쪽쪽 빨아먹으며 하교하던 그 기억이 있어 <수미네 반찬>이 ‘오늘의 주전부리’로 가져와 먹는 고둥이 남다른 맛으로 떠올려진다. 이건 <수미네 반찬>이 여타의 요리 프로그램과 달리 풍미가 깊어지는 이유다.

tvN 예능 <수미네 반찬>에서 김수미가 소개한 도미머리조림이 더 맛나게 느껴지는 건 거기에 깃든 이야기가 자극하는 기억의 맛 때문이다. 김수미의 시어머니가 해주셨다는 도미머리조림. 김수미는 흰쌀밥과 먹어본 그 요리가 너무 맛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정식으로 한 열 번 어머니에게 반복해 그 요리를 배웠다고 했다. 아마도 김수미가 도미머리조림의 맛을 남다르게 느끼는 건, 다름 아닌 시어머니가 손수 해주셨다는 그 마음이 주는 푸근한 기억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항상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아차리는 것이지만, 음식의 맛에 남은 기억은 그걸 해줬던 분의 마음이 더해져 깊어진다.



같은 도미머리조림 요리를 하면서 이 날 게스트로 출연한 이원일 셰프는 문득 식초를 한두 방울 마지막에 넣지 않느냐고 묻는다. 김수미는 그렇게 하면 비린내도 잡아주고 좋다고 답해준다. 그러자 이원일 셰프는 자신의 어머니가 조림 요리에는 항상 그렇게 식초를 살짝 넣어 마무리한다고 말한다. 같은 음식을 해도 그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건 누군가 해줬던 요리와 그 맛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달라서다.

요리를 배우러 온 것인지 아니면 먹방을 하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남다른 먹성을 보여주는 이원일 셰프는 다 만들어진 도미머리조림을 흰 쌀밥 위에 크게 얹어 싹싹 비워내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너무 잘 먹는 이원일 셰프에게 김수미가 너무 먹는 거 아니냐고 묻자, 그는 늘 혼자 밥을 먹어서 “가끔 엄마의 밥이 그립다”고 말한다. <수미네 반찬>이 여타의 요리 프로그램과 다르게 다가오는 건 이런 장면이 들어 있어서다. 이원일의 잘 먹는 모습과 그가 소환하는 ‘엄마의 밥’은 김수미가 해주는 레시피와 어우러져 저마다의 우리 기억 속에 있는 그 ‘밥’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자 최현석 셰프는 어머니가 해주셨던 자반 고등어에 고춧가루를 넣어 하는 요리가 생각난다면 그 요리를 김수미에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원일 셰프는 어머니가 동태를 짜게 해서 하는 ‘짠태 조림’을 해주신다며 그 맛을 떠올린다. 최현석 셰프는 어머니들이 좋은 부위는 다 자식들 주고 “난 이게 좋아” 하며 꼬리 드시고 했던 일들을 말한다. 그러자 김수미는 “우리 엄마는 보리굴비를 못 먹는 줄 알았다”고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흔한 거짓말’에 담긴 마음을 소환해낸다.

이런 이야기들이 덧붙여져서일까. 김수미가 소개하는 콩자반도 대충 숭덩숭덩 썰어 양념 넣고 버무려 뚝딱 만들어내는 겉절이가 남다른 기억을 자극한다.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싸오곤 했던 콩자반의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그 맛에는 그 시절 점심시간 뭘 먹어도 양이 부족할 정도로 맛이 있었던 그 반찬에 대한 기억이 더해진다. 엄마가 만드시던 겉절이를 옆에서 간을 본다며 자꾸만 먹어 물을 켜던 기억도.



프로그램 말미 김수미가 이원일 셰프에게 너무 잘 먹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는 말도 그냥 들리지 않는다. 엄마들은 무엇보다 그렇게 잘 먹어주는 자식들을 보며 포만감을 느끼셨을 터다. 본인들은 심지어 ‘못 먹는다’며 안 먹으면서도 느꼈던 포만감. <수미네 반찬>이 그저 레시피를 전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다르게 다가오는 건 바로 그런 저마다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포만감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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