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힙합’, 청소년물로서도 힙합물로서도 성공적인 이유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난주 목요일 첫 회가 방송된 SBS <방과 후 힙합>은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10대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랩으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힙합 버라이어티를 표방하지만, 교양국에서 제작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연출자 출신의 도준우 PD가 프로그램 지휘를 맡았다. 교양 프로그램답게 힙합 예능에서 흔히 예상되는 경쟁도, 서바이벌도, 악마의 편집도 없다. 다양한 고민을 토해내는 10대들과 이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기성세대의 모습도 실로 오랜만에 만나보는 풍경이다. 힙합 프로그램으로서도, 청소년 프로그램으로서도 신선하고 감동적인 <방과 후 힙합>을 [TV삼분지계]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 십대들의 톡톡 튀는 감성과 개성의 무대

Mnet <고등래퍼>와 EBS <배워서 남줄랩>에 이어 드디어 지상파 3사에서도 청소년 힙합 프로그램이 나왔다. 그러나 SBS <방과 후 힙합>은 같은 힙합이긴 해도 앞서 두 프로그램과는 결이 다르다. 래퍼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이 아닌 일반 학생들의 속마음을 담고 있기에 오히려 20년 전에 방송된 SBS <기쁜 우리 토요일> ‘영 파워 가슴을 열어라’와 맥이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너나 할 것 없이 입시 위주의 교육에 내내 갇혀있었지 싶은데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사이 우리 청소년들도 많이 달라졌다. 훨씬 솔직해졌고 자연스러워졌다. 자신만의 BPM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학습되지 않은 톡톡 튀는 감성, 반짝이는 개성들이 속속 드러나지 뭔가. 아이들의 진심이 전해져서인지 진행자 김신영과 피오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힙합 선생님 리듬파워, 슬리피, 킬라그램, 키썸도 여느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키썸 반 영현이가 쓴 가사다. ‘아빠 딸은 잘 지내고 있어. 보고 싶어도 울지도 않고 언제나 씩씩하게 잘 견뎠어. 사실 다 거짓말이야. 울기도 많이 울고 원망도 하고 미워도 했어.’ 어머니에게도 차마 내비치지 못했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어느 노랫말보다 가슴을 울렸다. 그런가 하면 같은 키썸 반 정민이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 때 헤어져 사진 한 장 지니지 못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가사를 썼다. 키썸과 영현, 정민이 속내를 시원히 토해낸 ‘사실은’ 무대는 그 어떤 방송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짝 걱정도 있다. <방과 후 힙합>이 2013년 물의를 빚었던 <송포유>와 같은 일을 겪지는 않을까? 괜한 우려이리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청소년물로서도, 힙합 프로그램으로서도 성공적이다

지상파 3사에서 청소년물을 본 지가 오래됐다. <방과 후 힙합> 제작진이 자사의 비슷한 프로그램을 예로 들기 위해 무려 20년 전 <기쁜 우리 토요일>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를 인용한 것만 봐도 청소년물의 희소함을 알 수 있다. 최근 지상파에서 청소년 프로그램들을 연이어 선보이는 현상을 두고 너무 늦었다는 기사들이 많은데 어쨌거나 소외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더욱이 <방과 후 힙합>은 ‘뒷북’으로 싸잡히기에는 여러모로 아까운 프로그램이다. 2년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연출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2년 전이면 정부 차원에서의 세웛호 참사 유족에 대한 억압이 한창 진행 중이고 그 비극을 눈여겨 본 세월호 세대의 분노가 아직 생생할 때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의 족쇄를 벗고 가장 하고픈 말이 많을 세대의 목소리에 이제라도 귀 기울일 프로그램이 나타나 반갑다.



그 표현 수단이 힙합인 점도 인상적이다. 수많은 힙합 프로그램에서 서바이벌의 승자가 되기 위한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로 축소됐던 힙합은 이 프로그램에 와서 사회적 약자의 솔직한 외침이자 다양한 표현 매체로서의 모습을 찾았다. ‘힙합은 음악의 한 장르이기도 하지만 삶의 태도이고 개인의 가치관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문화’라고 했던 연출자의 철학은 굳이 힙합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창한 열변 없이도 학생들 하나하나의 개성적이고 진지한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왕따 경험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기장을 더듬듯이 진솔하게 읊조린 한 학생에게 킬라그램이 ‘그건 정말 힙합이었다’고 경의를 표한 장면은 단적인 사례다. 청소년 프로그램으로서도, 힙합 프로그램으로서도 성공적인 프로그램이다. 부디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젊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난 반가움

가온고등학교 힙합 동아리 악센트 학생들을 지도하게 된 힙합그룹 리듬파워는 19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모두가 기억할 만한 현수막을 펼쳤다. “가슴을 열어라” 그렇다. 굳이 유사성을 따지자면 SBS <방과 후 힙합>은 Mnet <고등래퍼>나 <쇼 미 더 머니>보다는 오히려 20년 전 SBS <기쁜 우리 토요일>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 쪽에 더 가까운 프로그램이다. 2010년대의 청춘이 선택한 언어인 힙합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기존의 힙합 프로그램들과 유사하지만, <방과 후 힙합>은 참가학생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훌륭한 랩을 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다.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 학생이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가’이며, 멘토로 참가한 래퍼들 또한 지도학생들이 제 이야기를 최대한 잘 할 수 있도록 독려해준다. 지도학생들 중 실력은 가장 처지는 편이어도 하고 싶은 말이 가장 절절했던 학생들을 뽑았던 키썸처럼, 첫 방송에서 <방과 후 힙합>이 보여준 방향성은 분명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창구는 부족했던 10대들에게, 창구를 하나라도 더 열어주는 것 말이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멘토가 지도학생들 중 마이크 앞에 설 기회를 얻을 학생을 뽑는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무대의 완성도나 시간적 제약, 의의 때문에 그 기회를 얻지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도 있다는 얘기다. 모든 학생들의 사연을 다 소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혹시라도 프로그램이 자칫 보다 센 서사를 말하는 학생들이 전진배치되는 서사의 경쟁 구도로 발전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을 제외하고 나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하나라도 더 생겼다는 점은 몹시 고무적이다. 젊은 래퍼들이 세상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이 느낀 바를 랩으로 표현하는 EBS <배워서 남줄랩>에 이어, 힙합이 오늘날의 청년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한 프로그램이 또 등장했다는 사실이 못내 반갑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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