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의 놀라움, 병원 이야기로 사회를 해부하네

[엔터미디어=정덕현] “그 생각만 들어요. 우린 어떻게 되나. 사람이 죽었는데 그 생각만. 뭐 이 따위죠?” 새글21의 최서현(최유화) 기자는 제보자가 사망하고 과실치사 혐의로 동료 기자가 구속될 위기에 처한 상황 속에서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그들은 위협받고 있다. 그 위협을 가하는 이들은 새글21을 평소부터 눈엣가시로 여기던 권력자들과 부자들이다. 그들의 성실하게까지 보이는 공조는 진실을 은폐하고 그 진실을 밝히려던 이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가 담은 이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응급실로 이송된 한 환자로부터 시작된다. 심정지로 사망하게 되지만,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체. 알고 보니 그 사체는 새로운 병원장인 오세화(문소리)에 의해 옮겨졌고, 그들은 은밀히 사체의 사인을 규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지시가 내려온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사건에 연루된 정재계의 깊은 뿌리들이 드러난다. 오원장에게 지시를 내린 인물은 다름 아닌 이 병원의 사장 구승효(조승우)였고, 그 구승효는 화정그룹 조남형 회장(정문성)의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조회장이 그런 지시를 내린 건 비즈니스 때문이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홍성찬 회장을 도와주는 대가로 사업제휴를 하기로 한 것.



사망한 제보자가 새글21 기자에게 제보한 건 국회의장이 이용하고 홍성찬 회장이 정산함으로써 자금세탁을 하려 했던 뷰티클리닉의 영수증이었다. 응급실에서 갑자기 사라진 사체와 새글21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보며 사망한 제보자의 사인을 의심하는 예진우(이동욱)는 신원이 노출되면서 심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제보자가 그로 인해 병사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이미 오원장에 의해 외부충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공식 발표되었고 그래서 이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가 과실치사로 구속되게 되었으며 나아가 새글21도 압수수색을 당하게 된 상황이었다. 모든 게 조남형 회장과 홍성찬 회장의 공조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상황, 부검을 주장하는 예진우의 위험성을 감지한 건 주경문(유재명)이었다.

“새글21이 눈엣가시이던 사람들이 있어. 다 권력자들이고 부자들이야. 그런데 자기들 뒤를 캐던 기자와 싸우던 사람이 쓰러졌고, 야 우리 병원으로 보내자. 잘 됐다. 근데 거기서 죽었어. 야 더 잘됐다. 맞아서 죽은 걸로 하자. 근데 허원장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야. 정확한 사인은 아직 어느 쪽도 몰라. 구사장이 개입했다고 해서 그게 꼭 사인을 왜곡했다는 뜻도 아냐. 병사일 수도 있고 발표대로 외부충격일 수도 있어. 문제는 이 판국에 예선생이 부검을 주장해. 절대 쉽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 어떻게 해서 부검 했다고 쳐. 색전증 아냐. 머리 상처. 뇌출혈 맞대. 그럼 본인 어떻게 될 것 같애? 더 문제는 부검을 했더니 결과가 뒤집혀. 폭행 아냐. 병사 맞대. 그래서 그 기자는 풀려나고. 높으신 분들은 복잡하게 됐어. 그 사람들이 예선생을 가만둘까? 기자 하나 살인자 만드는 건 일도 아닌 사람들이야.”



주경문의 이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은 <라이프>가 들여다보는 우리네 현실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이 우리네 사회를 해부하듯 담아낸 이 이야기가 어느 날 응급실로 이송된 한 환자의 죽음 하나로부터 술술 풀어헤쳐졌다는 점이다. 병원은 때론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만일 병원이 환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그들의 이익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며, 그래서 때론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사업적 이득을 얻어가는 곳이라면 어떨까. <라이프>는 그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를 병원에서부터 언론, 정계와 재계의 이야기까지 연결해 풀어내고 있다. 지금껏 이런 의학드라마는 처음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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