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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그림자’
기사입력 :[ 2011-12-07 15:23 ]


“공연은 오늘로 끝이야. 오늘밤 안으로 순양 떠나. 안 떠나면 당신 구속될 거야. 순양극장 강기태가 신민당 선거 캠프에 쇼 초대권을 뿌렸어. 신민당은 그 초대권으로 불법선거를 했지. 당신 이미 법을 어긴 거야. 내 말 알아듣겠나. 지금 당신을 처넣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밤 안으로 순양을 떠난다면 없었던 일로 하겠다. 떠나.”

- MBC <빛과 그림자>에서 순양시 지역 국회의원 장철환(전광렬)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지역 유지이자 극장주 강만식(전국환)의 아들 강기태(안재욱)는 섣불리 영화 제작에 손을 댔다가 사기를 당해 큰 손해를 보게 되고 설상가상, 추석 대목에 올릴 영화조차 잡지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이미 허랑방탕한 생활로 아버지에게 최후의 통첩을 받았던지라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는데,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우여곡절 끝에 ‘빛나라 쇼단’ 단장 신정구(성지루)의 도움으로 대형 극장쇼 유치에 성공한다.

지방 소도시 순양 땅에서 당대 최고의 가수 하춘하와 김추자를 만나게 되다니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싶었건만 아뿔싸, 의외의 복병이 등장한다. 지역 국회의원 장철환(전광렬)이 넌지시 기태를 불러 애로사항이 있다며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닌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에 닥쳤고 어차피 선거운동의 승패라는 게 결국은 금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돌리느냐에 있기 마련이나 이번엔 야당의 감시가 심해서 그게 어렵게 되었으니 추석공연 쇼 초대권을 좀 후원해달라는 얘기였다. 한 50 매 정도라면 선선히 내어줄 요량이었던 기태, 그런데 그가 원하는 양은 무려 5000 매다. 한 마디로 말해 이번 추석 대목 장사를 포기하라는 소리다.

누가 억누르면 더 엇나가는 성정을 지닌 기태는 되도 않은 그의 요구를 딱 잘라 거절을 했고 이에 장철환은 분기탱천해 이 결정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한다. 욱하는 마음에 기태는 그 즉시 야당 선거 사무실로 달려가 초대권 500 매를 후원하고 돌아온다. 반드시 장철환을 이겨달라는 당부와 함께.

그 결과가 바로 쇼 중단인 것이다. 장철환은 수하 조명국(이종원)을 움직여 신 단장을 폭행 감금까지 했으나 기태의 적극적인 방어로 도모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끝내 신 단장을 협박해 스스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한 동네에 TV가 두어 대 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 톱스타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극장 쇼에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을 했겠는가. 난생 처음 보는 쇼 무대에 대한 기대는 또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국회의원 하나가 제 뜻을 거슬렀다 하여, 혹은 정치적 이유로 건달을 동원해 지역 주민의 기대와 희망을 한 순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드라마 안에서 벌어진,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충분히 가능했을, 일어나고도 남을 일이다. 그 당시 풍토가 그랬으니까.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이라는 세월을 조명하는 MBC 창사50주년특별기획 드라마 <빛과 그림자>. ‘빛’이 과연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그림자’는 이처럼 벌써부터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좀 산다 하는 집이면 누구나 식모를 두던 시절, 기태네 일 도와주는 아주머니(김미경)의 아들 차수혁(이필모)처럼 공부를 아무리 빼어나게 잘해 서울대를 나왔다 해도 ‘식모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던 시절이다.

요즘 젊은이들로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서울 한 복판에 소가 끄는 달구지가 다녔는가 하면 전차도 다녔었다. 그리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 70년대에 들어서자 느닷없이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국기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상상을 한번 해보라. 호스티스 물이 성행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영자의 전성시대>를 비롯한 야한 영화를 보기 전에 경건한 자세로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을. 1989년 별 다른 배경 설명 없이 극장에서 애국가가 사라지기까지 어언 20년 가까이 관객들은 언제나 일제히 일어나 애국심을 표해야만 했다.

강산이 몇 차례 변하는 사이 소달구지가 다니던 길에는 외제차가 넘쳐나게 됐고 극장에서 하루 몇 차례씩 울려 퍼지던 애국가도 사라졌지만 순양 국회의원 장철환처럼 공권력을 남발해가며 얼토당토않은 행태를 벌이는 파렴치한 인물들도 과연 말끔히 사라졌을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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