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말’ 남상미 연기가 ‘숨바꼭질’ 이유리보다 돋보인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주말 밤 9시 MBC와 SBS는 막장극의 대결로 붙는 경우가 흔하다. 현재 MBC는 이유리 주연의 <숨바꼭질>로 승부를 보고 있으며 SBS는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이 종영을 앞두고 있다.

다만 MBC <숨바꼭질>은 방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지쳐가는 인상이다. 여주인공 이유리의 연기는 그녀의 막장 히트작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처럼 강강강강 감정펀치다. 물론 그때그때 감정의 스파크를 일으키는 이유리의 연기는 여전히 시선을 끈다. 다만 이유리는 작가의 글 솜씨를 많이 타는 배우다. 캐릭터를 배우의 뜻대로 재해석하기보다 캐릭터를 가장 극적인 감정으로 표현하는 데 능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왔다, 장보리>는 코믹한 장면에 감이 좋은 김순옥 작가의 능력 탓에 연민정의 강강강이 다른 장면으로 많이 희석되었다. 하지만 <숨바꼭질>은 오로지 연민정 연기로 인기를 끌었던 이유리만 믿고 온갖 강강강강을 다 갈아 넣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드라마의 승부수가 금방 읽히며 이유리의 연기까지 식상하게 다가오는 단점이 있다. 더구나 이유리는 KBS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혜영을 통해 평범하고 유쾌한 인물의 감정을 극적으로 재미있게 소화하는 센스를 이미 보여준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이유리는 연민정의 감옥에서 해방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숨바꼭질>의 민채린은 오로지 막장극을 위해 만들어진 자극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재벌가에 입양된 고아, 시댁의 음모, 남편은 바람둥이, 운전기사는 여주인공을 사랑하며, 거기에 재벌가의 잃어버린 친딸까지 민채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눈을 부라린다.



강한 것은 더 강하고 강렬하게 연기하는 방법에 능한 이유리에게 이번 캐릭터가 득은 아니다. 그녀의 감정연기가 폭발한들 기본적으로 얄팍한 캐릭터가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다가 캐릭터 자체가 강렬한 연기 외에 다른 면모를 그려낼 만한 여지가 거의 없다. 여러 모로 <숨바꼭질>의 민채린은 이유리에게 막장극의 덫이 되어가는 중이다.



SBS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막장의 요소가 다분한 작품이다. 폭력남편에게 고통당하던 여주인공은 전신성형 수술 후 기억상실에 걸린다. 그 기억을 찾아가며 본인의 화려한 집안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이 이 드라마의 플롯이다.

우선 <그녀말>은 숨바꼭질에 비해 차분하게 이야기의 고리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그 때문에 무조건 재빠르게 사건부터 터트리고 보는 <아내의 유혹>식 플롯과는 다른 색다른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여주인공 지은한을 연기하는 남상미 역시 주목할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남상미는 독보적으로 움직였다. 시어머니 민자영을 연기한 이미숙은 그녀의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작품에서 생각보다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지은한을 지키는 남자주인공 한강우 역의 김재원은 그냥 듬직한 모습만 보여주면 이 드라마에서의 역할이 끝난다.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이끌어야 할 진정한 주인공 강찬기를 연기한 조현재는 다소 심심했다. 강찬기의 불륜녀이자 방송 내내 지은한을 위기로 몰아가는 정수진은 정말 중요한 캐릭터다. 정수진 역할을 맡은 한은정은 안타깝게도 좋은 기회를 놓친 듯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여주인공 지은한의 몫이었다. 그런데 남상미는 기존의 이런 종류의 드라마와는 다른 식으로 지은한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남상미의 연기는 차분한 수채화 같은 톤이다. 의외로 강렬한 막장극과 어울릴 법하지 않았던 연기가 <그녀말>에서는 더 와 닿았던 면이 있다. 또한 비록 폭발하는 연기는 아니지만 클라이막스의 장면의 감정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강하게 치고 나가지는 않지만 꼼꼼한 바느질 같은 감정처리였다. 더구나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그녀 특유의 자연스러운 우아함 덕에 막장극의 주인공이 고전적인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순간까지 존재할 정도였다.



남상미는 알다시피 롯데리아 한양대점 알바생으로 유명세를 탄 후 연여계로 들어온 배우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보다 연예계에서는 그렇게 빛이 나는 존재는 아니었다. 꾸준히 연기를 해왔지만 그녀는 대개 남자주인공 뒤에 서 있는 심심한 여주인공이었다. 하지만 SBS <결혼의 여신>에서 본인 중심의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KBS <김과장>에서는 비중은 적었지만 모든 캐릭터가 들 떠 있는 작품을 안정적이고 자연스럽게 톤다운 시키는 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녀말>은 이런 남상미가 처음으로 드라마를 본인의 힘으로 끌어간 작품이었다. 그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며, 막장극 여주인공 캐릭터를 소화하는 남상미 식의 새로운 요리법을 발견해낸 인상까지 든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