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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씨, 언제쯤 허울 벗을까요?
기사입력 :[ 2011-12-09 14:17 ]


- ‘청담동 살아요’, 허울에 휘둘리는 우리의 현주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말이 그럴싸해 청담동이지 재개발 직전의 좁고 낡은 2층 건물에서 만화방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김혜자(김혜자) 씨네 이야기,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제목만 접했을 적엔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든 물색없는 사람들의 이야기판이지 싶어 삐딱한 시선을 보냈는데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이 가족의 좌충우돌은 ‘허울’에 휘둘려 살아가는 바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딱 한 편 영화에 출연한 이력으로 ‘영화배우에요’라는 허울에 목을 매고 사는 혜자 씨 여동생 김보희(이보희)나, 역시나 지난 날 어쩌다 펴낸 만화책 한 편 덕에 ‘만화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남동생 김우현(우현), 그리고 ‘청담동에 살아요’를 앞세워 신분상승을 꿈꾸는 딸 오지은(오지은)까지, 다들 되도 않은 허울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제 자리 걸음 중이지만 이들의 갈 짓자 걸음이 우리에게 영 낯설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솔직히 살다보면 그 놈의 허울을 내던지지 못해 생고생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예를 들어 우연히 아이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으로 1등이라도 한번 할라치면 그 1등이라는 허울을 유지하고자 부모도 아이도 평생을 아등바등 애를 써야 한다. 거기다 ‘노스페이스 입는 애’라는 소리 듣게 할 마음에 무리를 해가며 몇 십만 원씩이나 한다는 패딩 점퍼를 사 안겨야 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가당치 않은 성적이라도 ‘우리 애 서울에서 대학 다녀요’라는 허울 하나 때문에 부모들은 소 팔아가며 전답 팔아가며 뼈 빠지게 뒷바라지를 해야 하지 않나.

어디 그뿐일까. 직장이며 집이며 자동차며 너나할 것 없이 턱없이 크고 높은 허울을 이고 지고 사느라 다들 고군분투 중이 아니던가. 혜자네 하숙생 최무성(최무성)만 해도 그렇다. 남부러울 것 없을 성형외과 월급의사라지만 두 아이를 유학 보내느라 압구정 자가 아파트에서 전세, 월세를 거쳐 급기야 3인 1실 하숙생 신세에 이르고 말았다.

누구보다 가장 감정 이입이 되는 건 우리의 주인공 혜자 씨다. “이렇게 해서 이번 달도 간신히 버틸 것 같습니다. 항상 딱 필요한 만큼 찰랑찰랑하게 채워지는 내 가계부.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가계부의 목줄을 쥐고 있다가 필요한 양의 눈금까지 딱 재고 닫아버리는 것처럼, 어쩜 그리도 얄짤 없는지요.”

아르바이트로 일본 관광객 가이드에 나서 겨우 이달치 생활비 아귀를 맞춘 혜자 씨, 백화점 명품관 앞 벤치에 앉아 고단한 다리를 두들겨 가며 신세한탄을 하던 중에 ‘박경근 시인과 함께 하는 문인클럽’이라는 포스터를 발견하고 반색을 한다. 하지만 시가 항상 배고픈 사람들의 편이었던 건 이미 옛말, 대상이 백화점 VIP 고객이라는 구절에 좌절하고 마는데, 천만다행 백화점 측의 착오로 문인클럽 회원 카드의 주인이 되고 세상을 다 얻은 양 기뻐한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다. 문인클럽 회원이라는 허울은 결국 엄청난 족쇄가 되어 그녀를 조여오기 시작하는데, 한 회원이 아빠와 아이가 예일 동문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기뻐하자 다른 회원 하나가 우리 남편도 예일 나왔다고 한 마디 보태고, 이에 또 다른 회원의 부녀지간 파슨즈 동문 타령이 이어진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등장하는 하바드, 캠브리지, 옥스퍼드 등 어마어마한 명문대학들. 궁여지책으로 혜자 씨는 일본을 입에 올려 보지만 강사 박경근 시인이 동경대를 나왔다는 소리에 즉시 말을 돌려 북경을 거쳐 심지어 브라질까지 언급하게 된다.

그리하여 비로소 한숨 놓게 됐다 싶었건만, 느닷없이 나타난 여고동창생 서승현(서승현)으로 인해 지난 과거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고, 급해진 혜자 씨는 당시 남편과는 사별했고 브라질 거주 정형외과 의사와 재혼했으며 남편이 축구선수 펠레의 주치의였다는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 이름으로 축구장이 하나, '혜자 Kim' 리조트가 있다고 둘러대기까지 했으니 가히 ‘미세스 리플리’의 탄생이랄 밖에.

서글픈 건 이 모든 상황들이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은 아닐지라도 남편의 학벌을 마치 내 학벌인양 자랑스레 내세우는 여자들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봐왔는지 모른다.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아이들을 끊임없이 닦달해대는 노력들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확실한 또 다른 허울을 얻고자함일 수도 있다. 부디 혜자 씨가 하루라도 빨리 미련 없이 문인클럽 회원의 허울을 벗어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몰라도 좋을 걸 너무 많이 알게 되는 바람에 안 해도 될 고민을 떠안고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또 없으니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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