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리’가 ‘패밀리가 떴다’의 후예 될 자격 충분한 이유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유재석의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받은 SBS 파일럿 예능 <미추리 8-1000>(이하 <미추리>)이 2회에 걸친 첫 미션을 마쳤다. 주말 다음으로 치열한 예능의 격전지인 금요일 늦은 시간대지만 시청률에 비해 화제성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평은 꽤 갈린다. 대체로 SBS <패밀리가 떴다>와 <런닝맨>, 넷플릭스의 <범인은 바로 너!> 등 기존 예능을 떠올리게 하는 진부한 포맷이라는 평가와 그럼에도 재밌다는 평가가 주요한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어떤 입장일까? 첫 미션에 대한 평가가 여기 있다.



◆ 뒤로 갈수록 재밌다

지난주 시작된 SBS 파일럿 추리 버라이어티 <미추리>. 첫 회 소감은 ‘볼만하다’와 ‘재미없다’로 서로 갈렸었다. 이유가 뭘까? 짐작컨대 재미없다는 쪽은 중간에 채널을 돌렸기 때문이지 싶다. 마을에 도착해 출연자를 비롯한 프로그램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과정은 다소 지루했지만 일명 ‘게임 지옥’에 빠지면서 각종 허당들이 속출했고 그로 인해 기대 이상의 재미가 생겼으니까. 그리고 미션 ‘숨겨진 천만 원 찾기’가 완료된 지금은 ‘재미있다’에 ‘참’을 덧붙여야 옳다. ‘우린 미쳤어’ 팀의 장도연, 손담비 콤비도 색달랐고 예능 초보라 할 제니와 김상호의 등장도 신선했다.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지만 송강의 마지막 한 방도 빼놓을 수 없고.



빠른 전개와 과감한 편집도 재미에 한 몫 했다. 예를 들어 강기영이 별 모양의 기와를 찾고 거기서 ‘독’이라는 힌트를 얻어낸 후 기뻐했으나 알고 보니 맨 마지막으로 찾은 멤버였다거나 가장 많은 힌트를 손에 쥔 임수향이 결정적으로 한발 늦는 바람에 천만 원 획득에 실패했다거나. 각고의 노력 끝에 천만 원을 찾아낸다 해도 멤버들에게 지목되면 천만 원 획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점도 흥미 요소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같은 퀴즈 프로그램일지라도 진행자의 능력에 따라 몰입도가 천지 차이가 난다는 걸 입증한 <미추리>. 앞으로 4회, 두 번의 추리 과정이 남아있지만 일단 정규 편성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 멤버 그대로!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여성 출연자들의 활약이 최대 관전 포인트

<미추리>는 대놓고 SBS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의 후예임을 밝히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연출자가 인터뷰를 통해 “유재석과 ‘패떴 참 재미있었는데, 그치’라는 대화로 시작해서 만들어진 프로”라고 밝힌 바 있다. 추리 요소를 가미했다지만, 뚜렷한 차별점이 될 만큼 밀도가 높은 건 아니다. 그런데도 2회 동안 지겹다는 느낌보다는 재밌다는 감상이 더 많았다. 물론 몇 년째 비슷비슷한 포맷의 관찰 예능이 TV에 넘쳐나는 걸 지켜보다가, 오랜만에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의 향수를 접하게 된 것도 재미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재미의 핵심은 <패떴>의 포맷보다 그 멤버 구성에서 오는 재미를 그대로 옮겨왔다는 데 있다. 과거 MBC <무한도전>과 KBS <해피 선데이- 1박 2일>이 이끈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의 유행 속에서 후발주자 <패떴>이 빠른 시간에 자리 잡으며 큰 인기를 누렸던 것은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하는 남성집단 예능과 차별화된 출연진 때문이었다. 성비는 남성이 우세했어도, 유재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SBS 연예대상을 공동수상한 이효리와 예능 원석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한 박예진 등 여성 멤버의 존재감이 막강했다.

이후 예능계의 주류적 흐름이 사생활에 더 깊숙이 밀착하는 관찰 예능으로 넘어가면서 여성들이 활약하는 프로그램들은 더 찾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추리>는 <패떴>처럼 여성 멤버들의 역할이 단연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라는 점만으로도 반갑다. 추리에서 압도적이었던 임수향, 게임에서 제일 큰 웃음을 준 손담비, 어떤 멤버와 붙어도 재치를 발휘하는 장도연, 막내라는 서열에 굴하지 않고 쏠쏠하게 실속을 챙긴 제니 등 네 명은 프로그램 곳곳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첫 합숙인데도 이 정도면 프로그램에 적응하고 서로 더 친해진 이후에는 얼마나 큰 활약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뻔하지만 그래도 제 할 일은 해내는 포맷

<미추리>는 많은 부분 넷플릭스가 투자 제작한 <범인은 바로 너!>와 닮은 예능이다. 당연한 일이다. 양쪽 다 SBS <런닝맨>을 연출한 경력이 있는 PD들이 유재석을 섭외해 만든 <런닝맨> 풍의 추리 예능이니까. 그러나 <범인은 바로 너!>가 <런닝맨> 풍의 게임과 레이스, 탐정단과 그들을 위협하는 흑막 사이의 암투라는 거대한 줄거리를 지닌 롤플레잉을 동시에 소화해내느라 바빴던 것에 비해, <미추리>의 목표는 간명하다. ‘게임을 통해 단서를 모으고, 모은 단서를 조합해 마을 모처에 숨겨진 돈 1,000만원을 찾는다.’ 쇼의 문법은 이해하기 쉽고, 추리의 비중도 의외로 더 높으며,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오로지 게임에만 몰두하면 되니 멤버들의 적응 또한 빠르다. 아직 2차례 밖에 방영 안 된 프로그램을 시즌1 방영을 마친 프로그램과 비교하는 게 다소 이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공개된 것만 놓고 보면 <미추리>의 만듦새가 더 안정적이다.



주목할 것은 아주 오랜만에 유재석이 플레이어가 아니라 진행자의 자리에 갔다는 것이다. 유재석은 돈 1,000만원의 행방을 함께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8명의 멤버들이 힌트를 얻기 위해 벌이는 게임을 진행하고 중재하는 역할에만 전념한다. MBC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을 연상케 하는 이와 같은 역할변화는, 유재석과 멤버들 모두에게 더 많은 공간을 열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게임 결과와 무관하게 진행과 전체 흐름 조율에만 전념하면 되는 유재석은 오랜만에 매우 편안해 보이고, 8명의 멤버들은 ‘플레이어 유재석’과 경쟁하는 일 없이 ‘진행자 유재석’이 해주는 배려만 받으며 게임에 전념할 수 있다. 물론 SBS <패밀리가 떴다>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을 연상케 한다는 말은 얼핏 뻔하고 익숙해서 이젠 낡은 포맷이란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가 아닌가를 떠나 쇼가 목표한 ‘추리’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두 개의 지향점을 제대로 짚어냈는가의 관점으로 보면, <미추리>는 성공적인 첫 스타트를 끊었다. 어쩌면 6부작이 끝난 뒤 정규편성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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