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혼’, 네 주연배우의 앙상블이 돋보인 드라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에는 각기 다른 네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진유영(이엘)은 네 명의 인물 중 가장 단단해 보이는 타입이다. 그녀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한다. 겉보기에 안정되어 있고, 누가 봐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물 위의 백조와 같다. 실은 이성과 감성, 두 개의 다른 끈을 붙잡으려 늘 안간힘을 쓰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행복을 보여주고 싶지만, 행복하지 못했던 그녀의 모친처럼 늘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강휘루(배두나) 역시 진유영처럼 감성과 이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이성으로 삶을 소유하려는 유영과 달리 휘루는 감성으로 삶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녀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감정의 흔들림이 심해 타인보다 쉽게 상처 받으며, 감정이 앞선 탓에 벌어진 일들을 후회하며 가슴을 칠 때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따뜻한 감성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춘 좋은 사람이다. 문제는 스스로를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느낀다는 데 있다.



유영과 휘루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을 ‘괜찮은’ 사람으로 판단한다. 한편 <최고의 이혼>에는 괜찮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인 두 남자도 등장한다.

휘루의 남편 조석무(차태현)는 이성이 발달하고 감성은 거의 없는 인간이다. 나쁜 짓은 절대 하지 않지만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하다. 휘루는 아마도 석무를 그녀와 다른 이성적이고 정리정돈 잘하는 친구 같은 파트너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석무와 살면서 휘루는 그녀가 석무를 사랑하는 감정이, 석무에게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체험한다. 심지어 석무는 아내로서의 휘루 외에 동화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휘루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석무는 본인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기만을 꿈꾼다. 하지만 결혼은 블록 쌓기가 아니며, 내 생각이 타인의 생각과 항상 같지만은 않다.



한편 유영의 남편 이장현(손석구)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아니, 자유롭다고 자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감성대로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고, 그 손을 잡은 후에는 상대가 그 손을 놓을까 먼저 달아난다. 유영은 나비 같은 남자 장현에게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이란 원래 두 가지 방식으로 다가온다. 나와 닮은 사람과 함께 편안하게 공명하거나, 내가 꿈꾸지만 결코 다가설 수 없는 존재에게 미친 듯이 흔들리거나. 유영에게 전자가 석무였다면, 후자는 장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장현을 소유해 영원한 행복을 꿈꿨지만 그것은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달음질에 불과했다. 그것이 결혼이라면 삶이 얼마나 피폐할까?

<최고의 이혼>은 비록 이야기의 진행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결혼과 이혼에 대한 현대인의 고뇌, 그것을 풀어가는 네 배우의 멋진 연기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더구나 네 배우는 본인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려냈다.



이엘은 네 명의 배우 중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정확한 감정의 흐름을 짚는다. 어찌 보면 이엘의 연기는 가장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엘이 연기한 유영의 캐릭터는 그런 방식의 연기가 어울리는 캐릭터다. 그 때문에 유영은 극 후반부에 이르면 고전적인 비극의 여주인공 같은 비장미가 풍긴다. 그리고 종종 ‘아무말 대잔치’처럼 흘러가다가도 드라마의 중심이 잡히는 것은 이엘의 모범적인 연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반면 차태현은 방송 내내 호불호가 갈렸던 배우였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악하진 않지만 답답한 석무를 이만큼 잘 연기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속은 터져도 우리는 차태현이 연기한 석무를 미워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석무는 지극히 평면적인 감성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윤리적인 인물이다. 차태현이 좀 더 섬세하거나, 좀 더 허세를 부려서 석무를 표현했다면 한국판 <최고의 이혼>의 석무는 아무 존재감도 없거나 드라마의 앙상블을 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판 <최고의 이혼> 특유의 색감을 만든 것은 누가 뭐래도 휘루를 연기한 배두나다. 배두나는 삶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드라마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배우다. 휘루의 말투와 표정, 감성은 90년대 후반에서 2천 년대 초반에 10대와 20대를 보낸 35세 전후의 여자들의 것과 거의 흡사하다. 배두나의 휘루는 그 방식과 그 감성으로 말하고, 웃고, 울고 떠든다. 그렇기에 휘루가 초라해질 때, 휘루가 석무를 잊지 못할 때, 유영 앞에서 휘루가 샴페인에 젖는 순간은 드라마가 아닌 삶처럼 느껴지는 아픈 울컥함이 있다. 배두나의 생활 연기에 힘입어 자칫 지지부진한 치정극으로 변할 뻔한 순간들이 인생의 아픈 한 컷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편 이장현을 연기한 손석구는 이 드라마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배두나가 현실감 있는 누군가를 연기한다면, 손석구는 우리가 홍대거리나 이태원에서 본 멋있지만 현실감 없이 사는 덜 자란 남자 어른들을 묘사한다. 이런 남자는 드라마에 가끔 등장했지만, 이런 표정, 말투,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은 손석구의 이장현이 처음이다. 손석구가 보여준 공허하고 우스운 이장현의 모습은 <최고의 이혼>이 지니는 특별한 잔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최고의 이혼>은 대단한 시청률을 끌어낸 작품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결혼생활의 희비극을 보여준 명작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짜증나고 지루하거나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드라마였을 것도 같다. 하지만 각기 다른 스타일의 연기로 멋진 합을 보여준 네 명의 배우들이 그려낸 명장면들은 드라마의 종영 후에도 몇 번이고 ‘다시보기’할 가치가 있다. 아마 이 드라마의 마니아라면 각 배우들이 연기한 명장면을 추천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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