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황소’ 한 번은 웃었다만, 두 번은 하지마라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성난 황소>는 ‘마동석 표’ 영화다. 올해만 해도 <챔피언><신과 함께2><원더풀 고스트><동네 사람들>에 이어 다섯 번째 영화다. 영화는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착하게 살아가던 마동석이 납치된 아내를 찾아 나선다는 <테이큰> 혹은 <아저씨> 류의 영화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식상함은 크지 않다. 영화 <성난 황소>는 마동석의 우람한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 액션을 활용하지만, 드라마의 서사도 탄탄한 편이고, 조연과 악역을 활용한 유머로 식상함을 잠재운다.



◆ 주연보다 돋보이는 악역과 조연

영화 <성난 황소>는 수산시장에서 수산물을 납품하는 강동철(마동석)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는 굳센 팔뚝으로 아이스박스를 나르며 성실히 일하지만 양아치 같은 조합장에게 미수금을 받지 못해 애를 먹는다. 아내 지수(송지효)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식당 알바까지 뛰며 돈을 모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갚지 못한 빚이 있어서 집세도 내기 힘들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강동철은 대출까지 받아 엉뚱한 사업에 투자를 한다. 아내의 생일에 분위기를 잡고 그 사실을 털어놓자 아내는 화를 내며 혼자 집으로 가버린다. 그리곤 아내가 납치된다.

아내를 납치해간 범인은 강동철에게 돈 가방을 보내온다. 강동철의 납치 신고에 미적대던 경찰은 돈 가방을 받았다는 황당한 말에 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강동철은 하는 수 없이 아는 동생 춘식(박지환)과 사람 찾기의 달인 곰사장(김민재)과 함께 직접 아내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강동철 일행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수사극의 형식으로 펼쳐 보인다. 꼬리를 밟는 수사 방식이 제법 촘촘하고 다채로운 데다, 곰사장과 춘식, 그리고 범인 기태(김성오)가 보여주는 의외의 개성과 유머가 상당한 재미를 안긴다.



강동철의 캐릭터는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동석은 ‘어두운 과거를 지녔지만 성실히 살아가며,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다. 하지만 분노가 폭발하면 괴력을 발휘한다.’는 짤막한 소개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을 연기한다. 애드립이나 튀는 연기도 거의 없는 정극 연기이다.

반면 악역과 조연은 풍부한 진폭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김성오는 대단히 화려하고 창의적인 악역을 선보인다. 그는 돈 때문에 사람을 처 죽이려다가 희생자의 딸을 보자 반색을 하고 ‘장인어른’ 이라며 희죽 댄다. 운전 시비가 붙었을 때, 부하를 대하는 태도는 진심 꺼림칙하다. 그는 나름의 스타일과 자기 철학을 보여주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휴머니즘의 거부’이다. 그는 사랑, 헌신, 인격 등을 전부 가짜로 취급한다. 그는 인간의 약함을 시험하며 즐거워하는 악마적인 면모를 보인다. 즉 세상에 사랑 따위는 없으며, 인간은 돈 앞에서 가족을 포기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며 킬킬댄다. 이처럼 반인륜적인 자기 확신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는 단순히 잔혹한 충동이나 악취미를 지닌 캐릭터와는 다른 악역인 셈이다.



조력자인 곰사장도 꽤나 독특하다. 그는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고, 맡은 일에 대해서는 나름 전문적인 실력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프로페셔널’의 면모를 갖춘 사람이다. 그가 여러 가지 캐릭터를 소화하며 사기 치는 실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강동철의 과거 경력을 듣고는 “그 사람 팬” 임을 자처하는데, 이러한 디테일은 웃기기도 하거니와 곰사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강동철과 함께 하는 이유를 뒷받침해준다.

영화 <성난 황소>는 곳곳에 유머를 포진해놓는다. 겉늙어 보이는 춘식이 26세라고 우기는 것도 웃기고, 김원해의 사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도 웃기다. 조합 사람들이나 도박장 여사장이 순간적으로 태세를 전환하는 것도 어찌나 웃기던지. 그래도 가장 큰 웃음은 범인 기태(김성오)가 준다.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김성오는 마동석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끊임없이 허세와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말이 많은 악당은 본 적이 없는데, 그는 꽤나 악마적인 신념을 지닌 캐릭터이지만 이상하게 경박하고 귀여운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 마동석을 통해 보여주고픈 남성의 정신승리

<성난 황소>의 구도는 사실 노골적이다. 한류로 외국에서 인기가 높아진 한국 여자들을 유인하고 납치하여 해외 원정 성매매에 팔아먹는 범죄 집단에서 아내를 구출하는 남자라는 설정도 노골적이지만, 그러한 설정을 마동석의 육체를 통해 구현해 보인다는 기획은 더욱 노골적이다. 마동석은 우람한 육체와 우직한 성격을 지녔다. 즉 그는 남자의 힘과 순정을 상징한다.

영화는 그를 통해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가치 하락을 겪고 있는 남성의 본래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환기시킨다. 이를테면 작금의 남성들이 여성들을 사회경제적으로 압도하지 못하더라도, 남성은 여성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네 곁에 있는 그 남자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다고 느끼는가, 험악한 세상에서 너를 납치하고 강간하고 팔아먹으려는 무수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네 옆의 남자이니라.’ 라는 교훈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남성의 효용에 대한 판타지적인 전유이다.



강동철은 과연 아내를 무사히 구출해 낸다. 그런데 마지막 카 체이싱 장면에 이상한 점이 있다. 범인이 탄 차에 아내가 같이 있음이 제시되지만, 그 사실로 인해 강동철의 행동이 제약을 받거나 그의 작전이 변화되진 않는다. 그는 거리낌 없이 범인의 차를 반복해서 들이받는다. 운전자와 범인이 중상을 입는 상황에서, 안전벨트도 매지 않은 채 뒷좌석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아내는 더 큰 부상을 입지 않았을까. 어쩌면 강동철이 범인은 때려잡았지만 아내는 구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아내가 아무런 부상 없이 구출되는 해피엔딩을 보여준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인질인 아내의 안전에 대한 고려보다 남편의 분노를 온전히 폭주시키는 것을 영화가 더 중요하게 다루었음을 말해준다. 예컨대 아내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도 분노의 폭주만으로는 아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 ‘현실의 논리’ 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어른의 이성적 사고 대신, 아내에 대한 사랑이 곧 분노의 폭주이고, 분노의 폭주가 곧 아내를 구한다는 유아적이고 일차원적인 ‘소망충족의 논리’를 구사한다.



영화는 여기에 같은 방식의 미성숙한 남성의 정신승리를 또 하나 덧댄다. 영화는 강동철의 잘못된 투자들로 인해 부부가 곤경에 빠졌음을 누차 강조한다. 아내를 호강시켜주겠다는 헛꿈에 경도되어 강동철은 점점 더 위험한 선택을 한다. 남성적 호기와 결합된 한탕주의의 발현이다. 이러한 투자는 대개의 경우 남편의 선의와 무관하게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영화는 남편이 아내를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구출하는 것에 한 술 더 떠서 남편의 투자가 진짜로 대박을 터뜨려서 아내를 ‘벤츠 탄 사모님’을 만들어주겠다는 그의 공언이 실현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신과 함께 2>에서 같은 마동석의 펀드 투자가 대박을 터뜨리는 것과 겹쳐진다. 즉 남성적 호기가 대박을 낳는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을 통해 남성의 선의를 추인해주겠다는 의도를 심하게 내보이는 대목이다.

예컨대 ‘너의 남자가 위험한 경제행위로 큰 손해를 끼쳤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마라. 그는 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선의에서 행동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의 위험한 투자가 정말로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지 않겠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투자의 세계에서 대범한 투자는 역시 남자의 몫이고, 큰 성공 역시 간 큰 남자 덕분이란다.’ 라는 허황된 가르침을 암시한다. 현실의 남자가 다소 비루하게 느껴지더라도, 폭력이 들끓는 세상에서 나를 구할 유일한 존재로 알고 의지하며, 남자가 헛된 투자로 돈을 날리더라도 그의 실패에 더욱 관대해지라는 말씀되시겠다.



영화의 서사와 액션이 나름 재미있지만, 영화의 주제를 생각하면 뒷맛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체 살인사건의 20%가 ‘남편에 의한 아내 살인’이라는 통계를 외면한 채 남편이 아내를 살인마로부터 구하는 서사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우습고, 무너지는 남자의 허약한 자아를 위무하기 위해 여자도 구하고 대박도 터뜨리는 남자의 정신승리를 구경하는 것도 객쩍다. 그러니 제발 청하건대, 한번은 웃었다만, 두 번은 하지마라.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성난 황소>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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