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정 작가의 ‘알함브라’, 이번엔 게임과 판타지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쫓기며 유진우(현빈)에게 그라나다의 보니따 호스텔에서 만나자 전화를 하는 게임 프로그래머. 그는 유진우의 라이벌인 차형석(박훈)이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런칭하려 하지만 그가 나쁜 사람이라며 유진우와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하지만 게임 프로그래머가 도망치듯 오른 기차가 그라나다에 도착할 즈음 갑자기 마법처럼 맑던 하늘이 흐리게 변하고 비가 쏟아지는 예사롭지 않은 풍경으로 변한다. 결국 게임 프로그래머는 누군가의 총에 맞고 쓰러진다.

tvN 새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오프닝은 쫓기는 한 의문의 게임 프로그래머로 시작하지만, 거기에는 이상한 장면 하나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마치 해피포터의 한 장면처럼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날씨의 변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화창한 날씨의 그라나다에 들어온 기차에는 게임 프로그래머의 가방만 놓여 있다. 총성에 의해 흩뿌려지던 핏자국도, 총알이 날아가며 구멍을 냈던 창문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상태로 돌아간 채.

그리고 이야기는 그 게임 프로그래머의 전화를 받고 보니따 호스텔을 찾아오게 된 유진우가 그 호스텔의 주인인 정희주(박신혜)를 만나게 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허름하고 청소도 되어 있지 않고 변기 물도 잘 내려가지 않으며 전기코드도 고장 나 핸드폰 충전하기 위해서는 1층까지 내려가야 하는데다 심지어 쥐가 구멍으로 돌아다니는 방에 머물게 된 유진우.



그런데 그가 호스텔에 짐을 풀고 그라나다의 거리로 나왔을 때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저 멀리서 전쟁이 벌어진 듯 화염이 피어오르고 멀리서 날아오는 무언가에 건물이 부서져 내리며 뽀얀 연기 속으로 활에 맞아 고슴도치처럼 되어버린 기사가 말을 타고 다가온다. 현재와 중세의 시간이 겹쳐진 듯한 그 풍경 속에서 갑자기 석상으로 서 있던 전사가 뛰어내려와 다짜고짜 칼로 유진우를 베어버린다.

알고 보면 증강현실을 이용한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유진우. 그 게임은 다름 아닌 사라진 게임 프로그래머가 만든 것이다. 유진우는 그 놀라운 실감을 주는 게임의 세계 속에 푹 빠져버린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게임을 만든 이를 만나 함께 사업을 하려는 강렬한 욕망이 피어난다. 경쟁자인 차형석에게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그런데 허름하고 낡은 방 때문에 한바탕 화를 쏟아냈던 정희주가 바로 그 게임 프로그래머의 누나이자 법적 대리인이란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질 관계의 케미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송재정 작가는 여러모로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이전 작품이었던 [W]가 만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게임의 세계다. 다른 점에 있다면 [W]의 만화 속 세계가 다분히 비현실적 판타지였다면, 이번 게임의 세계는 증강현실이라는 실제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기술에 의해 어느 정도는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 모호함이 주는 호기심과 궁금증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게임의 증강현실이라는 코드를 가져와 현실과 가상이 겹쳐진 세계를 그려낸다. 그래서 실제처럼 느껴지는 가상 속에서의 모험이 가능하고 그 체험이 물론 가상이지만 실제 현실도 바꿔놓을 만큼 매력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 증강현실의 게임에 푹 빠져 밤새도록 전사와의 사투를 벌이는 유진우의 모습은 그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잘 드러내준다. 그런데 그 유진우의 모습은 고스란히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시선이기도 하다. 게임과 현실, 중세와 현재, 서울과 그라나다 같은 공존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그 세계가 하나로 겹쳐지는 마법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말했듯 이러한 게임의 세계 같은 가상의 체험은 그저 가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물리적인 것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그 경험을 한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에는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건 앞으로 유진우와 정희주가 엮어갈 관계 속에서 나타날 변화들을 예고하는 건 아닐까. 다른 목적으로 시작된 관계일지도 모르지만, 그를 통해 서서히 만들어질 감정들은 진짜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유진우가 말하는 ‘마법’의 경험은 그래서 게임 같은 가상세계만을 말하는 건 아닐 듯싶다.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보이지 않는 가상의 무언가에 빠져드는 일 역시 마법 같은 경험이 될 테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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