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락’, 한국형 스릴러 중 가장 성공한 부류에 속하는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하우메 발라게로 감독의 <슬립 타이트>는 사악한 영화였다. 악랄한 성범죄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영화는 전적으로 그 범죄자에게 감정이입하고 있고 관객들 역시 그 방향으로 몰고 간다. 발라게로가 이 영화의 주인공 세자르의 행동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히치콕이 오래 전에 증명했듯, 서스펜스의 도구만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변태 악당을 계속 변태 악당이라고 말하면서도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발라게로는 이 작업을 아주 그럴싸하게 해치웠고 관객들은 불쾌한 입맛을 다시며 극장을 나왔다.

이권 감독, 공효진 주연의 <도어락>이 <슬립 타이트>의 리메이크라는 걸 시사회 며칠 전에 알았다. 걱정되는 동시에 안심이 되는 정보였다. 일단 난 주연배우가 누구이건 <슬립 타이트>의 이야기를 또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대가 한국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아무리 보도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도 원톱 주연이 공효진이고 누가 세자르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성범죄자 남자 악당에게 감정 이입하는 ‘블랙 코미디 + 캐릭터 스터디’라는 원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버렸다는 뜻이니까. 이러면 이야기가 평범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 ‘개성적인’ 이야기가 그렇게 많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시사회에서 보니 역시 영화는 원작의 거울상이었다. 이제 주인공은 남자 스토커 범죄자의 표적인 경민이다. 범인은 후반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것이고, 안 본 사람이라도 맞히기 어렵지는 않지만 적어도 주인공은 아니라는 뜻이다.

원작에서는 피해자였던 인물이 주인공의 위치로 옮겨가니, 묘사의 디테일이 달라진다. 원작의 클라라는 희생자라는 기본적인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다소 막연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도어락>은 경민을 모든 차원에서 꼼꼼하게 묘사한다. 수협 계약직 직원이라는 위태로운 직업, 자신이 피해자인 사건이 일어난 뒤에 경찰과 직장 동료들에게서 받은 부당한 대우. 그리고 그런 상황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시원하게 극복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실망. 여기에는 일반적인 한국 스릴러 영화가 잘 그리지 않는 사실성이 있다. 종종 영화가 그리는 현실의 갑갑함은 장르적 공포를 넘어선다. 이런 이야기를 오락으로 즐길 수 없는 관객이 있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어락>은 지금까지 꾸준히 나온 한국형 스릴러 중 가장 성공한 부류에 속한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렇게 간단하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한국의 ‘아저씨 스릴러’가 얼마나 큰 문제를 안고 있는지 지적한 적 있다. 한국영화에서 이 장르의 가장 큰 문제는 끝없이 여자들이 죽어나가는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주인공은 여전히 남자라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은 여자들이 죽어나가는 이야기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기연민에 빠진 중장년 남자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도어락>은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아저씨 스릴러를 넘어선다. 주인공이 고통과 공포에 당연한 현실감과 무게가 추가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자기연민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이를 가볍게 여길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을 죽어가는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 연민에 빠진 중년남자와 같은 줄에 세울 수 있을까?



여자들의 공포와 고통이 오락의 재료가 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오락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쓰냐에 달려 있다. <도어락>은 호러와 스릴러의 장르에 속한다. 이 장르들은 고통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선정적인 즐거움의 재료로 쓰는 것으로 악명 높다. 하지만 이들은 그와 함께 여성의 고통과 공포와 욕망과 해방감에 대해 가장 깊이, 자주 이야기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어느 장르도, 어느 이야기도 칼로 자른 것처럼 당연하지 않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있는 출구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며 그를 통해 무기가 되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도어락>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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