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리’ 제작진과 유재석이 받아든 난해한 성적표, 그 원인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파일럿예능 <미추리>를 둘러싼 의문은 프로그램 속 추리만이 아니다. 시청률과 화제성은 낮은데 재미있다는 시청자들의 스피커 데시벨은 굉장히 높다. 자세히 들어보면 <패밀리가 떴다>의 복고라며 환호한다. 관찰예능의 시대에 이런 올드스쿨 예능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반응이다. 또 다른 의문은 감히 국내 No.1 MC 유재석을 모시고 만든 신생 예능인데다 양세형, 제니를 비롯해 꽤나 규모 있는 진형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일럿이란 형태로 나왔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내부적인 상황은 알 수 없으나 무엇을 알아보기 위해 돌다리를 두드리는 형태를 취하는지 호기심이 인다.

<미추리>는 과거 <패밀리가 떴다>에다가 <런닝맨>식 추리를 덧입힌 예능이다. 시골마을에서 1박을 하면서 밥을 해먹고 <패떳>에서 했던 게임과 퀴즈를 하면서 웃음을 추출한다. 여기에 6부작을 잇는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각자 가져온 단서로 미추리의 비밀을 풀어가는 추리극을 얹었다. 자막, 배경음악, CG를 포함한 편집과 추리의 난이도와 전개 방식, 웃음을 추출하는 구성은 <런닝맨>, <패떴>, <범인은 바로 너> 등과 같은 익숙한 세계관 속에 있다.

<미추리>의 셀링포인트는 추리라기보다 살림배구 같은 몸개그와 퀴즈대결에서 나오는 직관적인 웃음이다. 손담비처럼 예쁜 여자 연예인이 조금 내려놓는 모습, 가장 핫한 아이돌인 제니의 색다른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다는 점 등의 재미 포인트 또한 <패떴>의 판박이다.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지만 지난 10년간 방송 콘텐츠 중 가장 비약적인 발전과 진화를 이뤄낸 예능에서, 이 분야를 늘 이끌어온 유재석의 신생 프로그램이 왜 갑자기 10년 전으로 회귀했을까. 그리고 과연 이 저조한 시청률과 일부 호평이 맞서는 분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인다. 과연 예고편에서부터 도전자의 자세로 호기롭게 맞붙은 <나 혼자 산다>의 영향 때문인 것인지, 마니악한 접근은 의도된 것인지도 궁금하다.



우선 시청률은 단 한명의 청춘스타 없이 1%에서 7.5%로 수직상승한 동시간대의 JTBC 드라마 [SKY 캐슬]을 보면 변명이 안 된다. <나 혼자 산다>가 굳건하지만 콘텐츠가 좋으면 뚫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떤 내부 사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재석과 계속 함께해오는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데다 이 정도 규모를 갖췄으면서도 파일럿으로 갔다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경로가 아니다. 우려하는 지점이 있거나, 분위기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해석하기 복잡한 성적표를 쥐었다. 수치로 나타나는 지표는 안 좋지만 평은 후하다. 그렇다면 후한 평가와 실제 성적 사이의 간극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방송사도 같고, 시골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설정도 유사한 <불타는 청춘>과 <미추리>를 비교해보자. <불타는 청춘>은 출연자들 간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친밀도가 높다. 김국진과 강수지가 하차하면서 훨씬 더 자연스러운 상황과 관계에서 에피소드가 나온다. 여기도 게임이나 정해진 동선을 따르지만 제작진은 촬영 중에 개입을 최소화하고, 연륜이 있는 만큼 누구하나 방송을 한다고 노력하지 않는다. 편집과정에서 미묘한 관계를 집어내고 중년 연예인들의 예능이지만 굉장히 젊은 감각의 자막과 편집으로 스토리텔링을 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이들과의 여행을 함께 따라하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인터넷 세대의 감수성으로 만드는 세련된 편집은 한물 간 중년 콘텐츠가 아니라 요즘 예능의 재미와 인상을 준다.



반면, <미추리>는 슛이 들어가고 카메라가 돌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방송을 한다. 대형마저 있다. 몸개그가 있다지만 지휘자가 꽤나 열성적인 만큼 모두 긴장이 팍팍 들어가 있으면서 수동적이고 전체적이다. 그리고 모두가 너무나 열심히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열일’하는 사람은 단연 유재석이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출연자들을 이끈다.

유재석은 플레이어로 함께하는 게 아니라 전지적인 시점에서 방송 자체를 조율한다. 웃음을 만들기 위해 자의적인 틀로 퀴즈를 이끌어가면서 캐릭터를 부여하고, 웃음 포인트라 여겨지는 부분에는 악센트를 강하게 주면서 현장의 모든 이들이 웃음 짓게 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와 웃음이 시청자들의 안방에도 전달되도록 에너지레벨을 관리한다. 예능 차원의 재미를 웃음의 총합으로 여기는 개념, 웃음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부단한 노력이 따른다는 점, 이 웃음에 유재석이 모든 순간 개입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점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샌드백 롤을 맞기 이전의 강호동이다. 그렇게 많은 비난을 받았던 바로 그 강호동의 진행방식이다. 톤의 차이가 있을 뿐 철이 지난 쇼버라이어티 시절의 진행과 웃음 코드라는 얘기다.



<미추리>가 난해한 성적표를 받아든 원인을 여기서 찾아본다. 유재석이 가장 활발히 활약할 수 있는 익숙한 무대지만, <개그콘서트>처럼 대중성을 잃은 과거 버전 예능이다. 너무 열심히 하고 노력할수록 자연스러움과는 멀어지고, 웃음은 산발적으로 남는다. 간혹 ‘짤방’은 생산할 수 있지만 매주 챙겨보게 만드는 동력인 스토리라인과 친밀도는 떨어진다. 이제는 실제로 TV에서 연애를 시작하고(<연애의 맛>), 인간 개조 프로젝트가 이뤄진다(<골목식당>). <무한도전>에서 시작된 리얼버라이어티는 현실과 방송의 경계가 보다 더 옅어진 버전(<신서유기 5,6>)으로 진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쇼버라이어티에 뿌리를 둔 리얼버라이어티는 일시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킬 순 있어도 미래를 만들어갈 동력이 되긴 어렵다.

지금까지 늘 첨단에 섰던 유재석과 그의 파트너들은 지금까지 가장 잘해왔던 것, 유느님의 모습을 증명할 수 있는 무대에 남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보다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한다. 허나 유재석의 진행방식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는 전지적 시점에서 총력을 다 해서 지휘할 것이 아니라 조금 뒤로 빠져주고, 흔들려야 한다. 한때 전소민을 영입하고 반등했던 <런닝맨>이 그런 사례다.



유재석이란 대형 브랜드의 행보는 늘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유느님의 은총을 받았던 한 시청자로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 변화의 포인트는 다작이 아니라 어떤 지향을 갖고 변화하고 있는지 그 궤적이다. 강호동은 복귀를 하고 오늘날 샌드백 롤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년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에도 이미지 변신을 계속 시도했다. 이경규는 패널로 전향하고 형님 코미디를 버렸다. 김구라는 과거의 독설 스트라이커에서 그냥 무난한 진행자로 색깔을 바꾸고 급을 낮췄다. 그런데 유재석에겐 이런 유연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미추리>처럼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성을 쌓는다.

지난 10여 년 가까이 최고 MC 자리를 차지한 유재석에게 시청자들은 늘 큰 웃음과 함께 한 발 더 나아간 진화된 모습을 기대한다. <동고동락>,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등에서 보여줬던 유재석의 영향력이 다시 재림하길 바란다. 마니악한 방송을 하는 MC로 남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추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유재석이 이끄는 에너지에 함께 텐션이 올라갈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는 웃음이 예능의 최우선 가치라며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적인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다. 따라서 유재석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는 입장에서 오늘날 예능 판도에서 그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있는 <미추리>에게 큰 점수를 주기 힘들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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