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이 특별이 된 아이들, ‘땐뽀걸즈’의 댄스에 담긴 짠함

[엔터미디어=정덕현] “박혜진. 니는 춤 왜 추는데? 니도 추고 싶어서 추는 거 아이가. 춤.” 버스에 오른 박혜진(이주영)에게 김시은(박세완)이 퉁명스럽게 묻는다. 학교도 띄엄띄엄 다니고 어딘지 불량해 보여 술 마시고 심지어 원조교제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박혜진이 굳이 댄스스포츠를 하는 게 김시은은 못내 의아해 보인다. 자신도 사실 춤이 좋아서 댄스스포츠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대학을 가서 영화감독이 되고픈 김시은은 이 동아리에서 리더 역할을 해 스펙 하나 얹는 게 그 목적이었으니까.

“사는 게 엿 같잖아. 인간들도 엿 같고 다 뒤져버렸으면 좋겠는데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그럴 리는 없고. 그냥 다 잊어뿔고 싶은데. 그것도 엇다 대가리 박아서 기억상실증 걸리지 않는 이상 안되고. 근데 춤추면 열라 힘들거든. 그럼 아무 생각이 안나.” 박혜진의 의외의 이야기에 김시은은 괜스레 툴툴 댄다. “뭔 소리고?” 그러자 박혜진이 되묻는다. “니는 사는 게 안 엿 같은가 보지?

버스에서 김시은과 박혜진이 나누는 이 짧은 대화는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가 담고 있는 댄스스포츠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그건 그저 춤이 아니고 이들에게는 일종의 몸부림이자 탈출구다. 몸을 힘들게 해서라도 잊고픈 눈앞의 암담한 현실. 그저 누구나 똑같이 하듯 학교 다니고 졸업해 대학에 가고 그래서 자신이 하고픈 일들을 시도라도 해보는 그런 평범해 보이는 삶이 이들에게는 그리 평범한 일이 아니다.

거제라는 조선 산업의 성장과 추락에 따라 그 삶 역시 오르락내리락 했던 공간에서 여상을 다니는 고등학생들은 대학을 간다거나 서울에 간다는 일이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대부분이 졸업과 함께 취업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조선소에서 일하는 건 부모 세대부터 자식 세대로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대학을 가겠다는 김시은의 꿈은 불가능한 비현실로 다가온다.

이미 다큐멘터리로 큰 감동을 주었던 <땐뽀걸즈>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다. 워낙 실제 상황이 주는 감동이 컸던지라 그걸 드라마라는 이야기가 넘어설 수 있을까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땐뽀걸즈>는 다큐멘터리가 더 집중했던 이규호 선생님(김갑수)보다, 김시은을 비롯한 이 거제의 댄스스포츠 동아리에서 댄스를 하는 아이들에 더 집중한다.

다큐에서는 모두가 포기한 듯한 아이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치 ‘성자 같은’ 이규호 선생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드라마 <땐뽀걸즈>는 이 아이들이 겪는 결코 쉽지 않은 현실과 그 아픔들을 댄스를 통해 풀어내는 과정이 먹먹한 감동을 준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들이 추려 하는 댄스스포츠의 그 춤동작 하나하나에 깃들여진 마음을 읽어내게 된다.

춤이 좀체 늘지 않는 김시은에게 이규호 선생님은 댄스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저 동작을 외워서 추는 것이 아니라 진짜 흥이 올라 즐거워서 추는 춤이어야 그게 진짜 댄스라고 선생님은 말한다. 김시은이 박혜진에게 퉁명스럽게 물어본 건 그 역시 자신처럼 즐거워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억지로 동아리에 들어와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의 답변을 들은 김시은은 방과 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춘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발견한 권승찬(장동윤)이 다가와 함께 춤을 추는 그 장면에서 김시은은 진짜 춤에 빠져 환하게 웃고 있다. 비로소 김시은은 춤이 즐거워서 추는 게 아니라 즐거워지기 위해 추는 거라는 걸 알게 된다.

<땐뽀걸즈>는 특이하게도 어두운 현실 앞에 놓여 있지만 밝은 아이들의 모습을 더 많이 비춰보여준다. 그건 특히 춤을 추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더더욱 그렇다. 음악에 빠져 춤에 몰입한 이들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 것처럼 밝아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그 밝음은 오히려 보는 이들에게 짠하게 다가온다. 그 밝은 만큼 그들의 현실이 대비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도 김시은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일 게다.

‘이 아이들은 참 밝은데 이상하게 그게 낼 우울하게 만든다. 자기들의 미래가 그렇게 희망적일 리가 없는데 그걸 모른다. 서울은 위험하지 않다. 위험한 건 여기다.’ 한없이 밝을 나이에 겪고 있는 어두운 현실이 춤 동작 하나에도 느껴지는 경험. 아이들의 현실처럼 이 드라마는 화려한 캐스팅도 없고 굉장한 극적 사건들도 별로 없다. 그래서 겨우 2%대 시청률을 내고 있는 드라마지만, 그렇다고 <땐뽀걸즈>를 그 2%로 평가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표피적인 자극이 아니라 마음을 건드리는 좋은 드라마라는 사실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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