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이지도 뻔하지도 않은 ‘땐뽀걸즈’의 진짜 가치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렸을 때 내는 어른들의 거짓말이 싫었다. 어른들의 거짓말에 속아주고 내를 어린애 취급하는 그들을 비웃는 게 재밌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놀이가 재미없어졌다. 내도 엿 같은 진실보다는 그럴 듯한 거짓이 더 좋아졌다.”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에서 김시은(박세완)이 숨겨진 속내를 드러내는 이 내레이션에는 이 드라마가 주는 먹먹한 감동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준다.

겉으로 보기엔 밝디밝은 아이들이다. 때론 감정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아픈 현실 앞에 우울해지지만 그래도 땐뽀반에 와서 춤을 출 때 아이들의 얼굴은 밝다. 적어도 춤을 추고 있을 때는 모든 걸 잊고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그들을 대학 같은 곳에 보내주거나 꿈을 이루게 해주거나 혹은 현실적인 취업을 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땐뽀반에 모여든다. 이 아이들은 미래도 중요하지만 당장 버텨내는 게 더 중요하다. 춤이라도 추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현실인지라. 때론 그럴 듯한 거짓이 더 좋을 수 있으니.



그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김시은(박세완)과 권승찬(장동윤)은 서로가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지만 김시은의 엄마 박미영(김선영)과 권승찬의 아빠 권동석(장현성)은 노사분쟁으로 2년 전 죽은 김시은의 아버지 때문에 지금도 법정에서 만나는 관계다. 사측은 김시은의 아버지가 자살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박미영은 사고사를 주장한다. 박미영은 남편의 산재처리보다도 남편이 생전에 가족과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들은 ‘그럴 듯한 거짓말’들을 한다. 박미영은 권동석에게 자신은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이런 부모들의 문제를 알리지 말자고 말한다. 그래서 김시은이 자신도 다 알면서도 권동석에 대해 괜스레 엄마에게 물어볼 때 박미영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김시은은 권동석을 찾아와 자신도 다 알고 있다며 그렇지만 권승찬이 이 사실을 알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악의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선의다.



2016년 호황을 누리던 조선산업이 불황으로 돌아서면서 거제의 삶의 풍경은 무채색으로 바뀌었다. 거제여상 땐뽀반 아이들은 저마다 현실적인 문제에 휘둘린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엄마 때문에 그 깊은 상처를 지금껏 안고 살아가는 박혜진(이주영)이나, 술 마시면 폭력을 쓰기도 하는 아빠와 지내는 심영지(김수현) 같은 아이들이 그렇다. 또 생계를 위해 일하는 엄마를 도와야 하는 아이도 있고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아이도 있다. 웃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아이들은 그러나 땐뽀반에 모여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깔깔 대며 웃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현실. 하지만 김시은은 권승찬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렇게 ‘그럴듯한 거짓’으로 자신을 속이며 사는 삶은 좋을 수는 있어도 ‘성장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만의 비밀이었던 아빠의 죽음을 권승찬에게 사실 그대로 알려준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성숙해져가는 아이들을 보는 건 아픈 일이다. 그래서 거짓 속에서 활짝 웃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아이인 척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른만큼의 상처를 받고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이규호(김갑수) 선생님은 이 아이들을 이해해주고 지켜주는 진짜 어른이다. 아이들은 이규호 선생님에게 마치 부모를 대하듯 반말 반 존칭 반을 써가며 대하지만, 그는 늘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받아준다. 상처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려는 박혜진 같은 아이도 그는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챙긴다. 사비까지 털어가면서 아이들을 챙기고, 아이에 대한 책임 때문에 전근을 가야될 위기까지 처하면서도.

<땐뽀걸즈>가 먹먹한 감동을 주는 건 이들이 추는 춤이 꿈조차 꾸기 힘든 각박한 현실 속에서 겨우 버텨낼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춤은 현실적인 걸 해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처럼 치부되고 때론 현실도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들을 살게 해주는 힘이다. 그래서 그 갑갑한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감동을 준다. 이를 끝까지 지켜주는 이규호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땐뽀걸즈>는 사람이 몇 명씩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자극도 없고, 그렇다고 학원물에 멜로를 더한 뻔한 이야기도 아니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뻔하지도 않은 이 좋은 드라마가 낮은 시청률로 소외되고 있는 건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다. 소소해 보여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들을 드러내는 이 드라마가 현재 처하고 있는 상황이, 드라마 속 아이들이 처한 상황처럼 느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만한 좋은 이야기와 완성도를 가진 드라마도 없지만 소소해보여 소외되고 있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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