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장 알고도 밀어부친’ 알리 사태가 주는 교훈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알리 사태가 주는 파장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 기자회견을 자청해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까지 고백했지만 여론은 양분되고 있다. 알리는 지난 17일 KBS ‘불후의 명곡2’에서 압도적인 성량과 짙은 호소력으로 김태화의 ‘안녕’을 열창했음에도 노래만은 불렀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하차해달라는 의견으로 갈리고 있다.
알리에게 이번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 차체가 괴로움이겠지만 생각해봐야 할 사안들이 적지않다. 이 시대의 성폭행 피해자에게 위로를 전하겠다는 의도의 진정성만큼은 기자도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지만 몇 가지는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알리는 최근 데뷔 후 첫 정식앨범 ‘SOUL-RI: 영혼이 있는 마을’을 발매하며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에 관한 ‘나영이’란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해 넣었음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영이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병실에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 것이 떠올랐죠. 앞으로 나영이가 미래를 바라보고 당당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다만, 거친 느낌의 가사가 있어서 나영이가 들으면 좀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이 말은 처음부터 나영이라는 노래가 나갔을 때의 파장을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알리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알리는 실제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대 중후반인데, 이 시기에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사랑과 이별 노래만 다루고 싶지는 않았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시사적인 것에도 마음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알리가 파장이 예상되는 부분으로 생각한 듯한 “청춘을 버린 채 몸 팔아 영 팔아 빼앗겨 버린 불쌍한 너의 인생아”는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말이 안된다. 논란이 일자 처음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도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억지 해명을 했기 때문이다. 제목을 ‘나영이’로 정해놓고 가해자를 가사에 대입시켜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통해 “나도 수년전 남자후배에게 성폭행당했다”며 자신을 향한 메시지였음을 눈물로 항변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성폭행 사실은 밝히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 겨우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어린 나영이를 다시 끄집어내 충격을 주는 일은 왜 이리 쉽게 이뤄졌을까?
노래 ‘나영이’의 작사 작곡은 알리가 직접 했지만 이 음반을 기획한 소속사가 사전에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도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이다. 알리는 백보 양보해 노래를 업으로 하는 예술가라서 그 노래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 둔감했다 쳐도 음반제작사는 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를 막지 않고 음반에 실은 것은 끔찍한 성폭행 피해 아동의 이야기를 건드려 상업성을 추구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알리 측은 노래가 나가자 소셜테이너 김여진이 트위터에 “가수 알리는 제목부터 바꾸길, 위로는커녕 기본적인 예의조차 아니다”라고 질타했고, 프로 레슬러출신 해설가 김남훈도 “미성년자 성매매 통칭 원조교제를 다룬 노래같다, 당시 피해자는 9살이었다”고 하는 등 비판에 직면하자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계속 언론에 해명성의 말들을 던졌다.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사건의 대응방식이 크게 잘못되었다.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라면 언론에 말도 안되는 해명을 하기보다는 언론 몰래 나영이 아버지를 찾아가 빌고 오는 게 우선 해야 할 일이었다.
알리는 오랜 무명 생활끝에 ‘불후2’를 통해 뒤늦게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다. 이런 가수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자 또한 가창력에 감동까지 주는 알리는 ‘불후2’의 보물이라고 썼었다.
알리는 ‘불후2’에서 노래에 자신의 인생과 진심을 실어 감동을 극대화했다. 인순이가 ‘거위의 꿈’을 통해 내적 성찰을 보여주었듯이, 알리도 삶의 무게감을 노래에 실어 화학적 반응을 이뤄냈다. 기자 또한 누구보다도 알리가 노래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하지만 ‘불후2’ 출연에 매달리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주고 있다. 이번 사태로 뼈아픈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서병기
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