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이제 와서 이두삼과 박정희를 겹쳐 놓는다 한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마약왕>은 올 연말 최대 기대작이었다. <내부자들>을 통해 적나라한 고발과 사회비판을 담은 장르물을 선보였던 우민호 감독의 차기작인데다 송강호, 배두나를 비롯해 실력을 인정받은 주조연급 배우들이 총출연하는 호화 캐스팅이 기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영화의 만듦새는 물론 훌륭하다. 1970년대를 재현한 공들인 미술도 볼만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나위도 없다. 더욱이 단순히 마약왕에 대한 조명이 아니라, 국내 필로폰 제조와 수출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으며, ‘수출입국’을 내세웠던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기에 깊이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가 ‘지금 여기’와 어떤 접점을 맺고 있는지는 모호하다. 이제 와서 박정희 시대를 성찰한다는 것이 다소 철지난 느낌이 드는 탓이다.



◆ 밀수꾼의 수출입국의 꿈

영화 <마약왕>은 필로폰이 태평양전쟁 중 일제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가미가제의 두려움을 없애는 용도로 활용되었음을 흑백의 자료 화면과 나레이션으로 짚어준다. 전후 필로폰은 일본의 사회 문제로 대두됐고, 일본 정부는 필로폰 제조를 엄벌했다. 공장이 필요해진 일본 필로폰 시장과 수출로 외화 벌이가 절실했던 한국 경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새로운 무역회로가 만들어졌다. 대만에서 원료를 들여와 한국에서 필로폰을 제조해 일본에 수출하는 일명 ‘화이트 트라이앵글’이다. 영화는 그 시절 필로폰을 제조해 일본에 수출하는 일로 검은 돈을 긁어모으면서, 대외적으로는 ‘새마을 지도자’를 비롯한 온갖 감투를 쓰고 건전한 시민으로 자처했던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다.

<마약왕>은 시작 자막에서 밝히듯이 1970년대 일어났던 수많은 실제 마약 사건을 녹여냈으며, 그 중에서도 이황순 사건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1970년대 초 금괴와 시계 밀수로 자금을 축적했던 이황순은 당시 한국 마약범죄 사상 최고치에 달하는 140kg의 필로폰을 제조해 일본에 수출했다. 영화가 결말에서 보여주는 경찰과의 총격신도 1980년 부산 민락동의 호화주택에서 벌어진 이황순 검거 작전을 재현한 것이다.



영화는 1972년 금세공업 출신의 이두삼(송강호)이 금과 시계를 밀수하는 조직의 일원이 되어 신임을 얻은 뒤 일제 전기밥솥 등으로 밀수품의 품목을 확장해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밀수업은 흥했고, 밀수가 딱히 나쁘다는 생각도 없었다. 단지 세금을 내지 않을 뿐인데, 성경에도 세리가 나쁘게 그려져 있듯이 세금은 좋은 것이 아니며, 문익점도 목화씨를 밀수했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러니 이두삼의 밀수 품목이 필로폰으로 넘어가는 것도 놀랍지 않은 수순이다. 그에게 필로폰은 단지 ‘비싼 물건’이고, 밥솥보다 열배나 마진이 좋은 물품일 뿐이다,

어느 날 이두삼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죽도록 맞는다. 밀수출에 사용했던 배가 중앙정보부의 소유였다는 것이다. 윗선끼리 짜고 친 고스톱에 그만 희생양이 되었다. 교도소에 간 그는 뇌물을 써서 가까스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난다. 이두삼은 이환수로 신분을 세탁한 뒤 교도소에서 알게 된 마약밀수업자 최진필(이희준)과 동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팀을 꾸려 마약사업에 뛰어든다. 영화는 이후 그가 여러 위기를 넘기면서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두삼은 무수한 인물들과 손을 잡았다가 필요에 의해 배신하거나 헤어진다.

그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가 죽도록 얻어맞았던 악몽을 떠올리며, ‘그런 상황에서 전화 한통 할 데가 있는 삶’을 위해 사회적 인맥을 만드는데 매진한다. 그 중의 백미는 김정아(배두나)로, 국내외 다양한 인맥을 지닌 그는 이두삼의 사업을 한 단계 도약시킨다. 그의 필로폰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브랜드로 일본시장을 석권한다.



◆ 박정희와 겹쳐 놓기

영화 <마약왕>은 이두삼의 마약사업이 박정희 시대를 관통하였던 정신인 ‘수출입국’의 재현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을 수출역군이자 애국자라고 믿는다. 더욱이 아편이 청나라를 망하게 했듯, 필로폰이 일본을 망하게 할 거라는 반일감정으로 필로폰 밀수출을 합리화하는 대목은 블랙코미디적인 느낌마저 자아낸다. 곧 그의 수출품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상당량이 국내에 풀리게 되고, 이두삼의 사촌동생과 이두삼 자신까지도 그 수출품에 잡아먹히는 운명을 맞는다.

영화는 그의 흥망성쇠에 박정희를 겹쳐놓는다. 만주 출신의 가난한 가장인 그는 “잘 살아 보세” 라는 마음으로 수출에 매진했으며, 처음에는 “빨갱이면 어때?”라며 조총련 출신의 김순평(윤제문)과도 손을 잡았지만 갈수록 각하와 조국을 위한다며 반공단체에 앞장서는 극우가 된다. 이는 만주군관 학교 출신의 박정희가 처음에는 남로당이었다가 극우화되었던 궤적의 인용으로 읽힌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사용되었던 중앙정보부의 배로 밀수를 하던 그가 새마을 지도자로 행세하고, 결국 그가 벌어들인 돈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박정희 선거자금으로 흘러드는 것도 노골적이다. 이는 1966년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환기시킨다. 당시 삼성그룹 산하의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일본의 대기업에서 거액의 사카린을 밀수하고, 이를 묵인한 박정희 정권이 정치자금을 조달받는 정경유착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그뿐이 아니다. 아내를 육영수 여사처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처럼 그는 많은 돈을 벌어다주지만, 진짜로 육영수 스타일의 귀부인 코스프레를 하게 된 아내(김소진)가 여자 문제로 피눈물을 쏟게 만든다. 그는 “다들 내덕에 먹고 살았다”며 큰 소리를 치지만, 마약과 살인에 손을 댄 그는 점점 의심에 미쳐간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외로운 지경이 되어 최측근이던 사촌동생 이두환(김대평)의 배신으로 최후를 맞는 것도 박정희와 비슷한 궤적을 갖는다. 유신 치하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가 박정희가 죽은 뒤 박정희 주구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체포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는 착란 속에서 “김신조가 날 죽이러 온다”고 중얼거린다. 박정희를 죽이러 온 김신조가 자신을 죽이러 온다고 말하는 것은 박정희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또한 반공 콤플렉스가 일종의 마약에 의한 환각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였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 지금 한국 사회와의 접점은 무엇인지?

이처럼 영화는 마약왕 이두삼과 박정희를 겹쳐놓으며, 그 시대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기에서 유의할만한 정치적 의미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시대와 현재의 접점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시민이었던 한 인간이 시대의 공기를 가로지르며 범죄세계에서 권력을 잡아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림으로써 한국사회의 모순과 권력의 계보학을 드러내는 영화로는 이미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이 있다. 이 영화는 최익현이라는 세관의 비리 공무원이 종친을 들먹이며 깡패와 손을 잡고, 다시 배신을 거듭하면서 범죄세계의 거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이 검사가 되는 결말을 통해 한국사회의 악과 권력이 어떻게 커넥션을 맺고 세습되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더욱이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로, 한 세대를 지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다. 요컨대 ‘최익현의 아들들’이 현재 부장검사 쯤 되는 자리에서 한창 활동을 해나가며 대한민국 사회를 쥐락펴락 하고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반면 <마약왕>은 박정희와 유비되는 마약왕의 흥망성쇠를 통해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지만, 그것의 현재적 의미는 불분명하다. 이 사건 이후 대검찰청에 마약과가 신설되었다는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는 별다른 울림을 생성하지 못한다. 영화의 모델이 된 이황순의 기록은 1989년에 검거된 윤재성-김정숙 부부에 의해 경신되었으며, 그 후로도 수많은 마약사건들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마당에, 대검에 마약과가 신설되었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분기점이랴.



그런 계통적인 의미가 아니라, 마약산업이 수출위주의 한국경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이해하기에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런 의미로는 이미 <독전>이 있기 때문이다. <독전>은 스타일리시한 감각으로 마약산업의 규모가 “삼성과 맞먹으며”, 명문대 출신의 박선창(박해준)이 출세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투자자와 이사들이 존재하는 등 대기업과 동일한 구조로 돌아가는 산업임을 아찔하게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1970년대 필로폰 수출이 당시의 수출입국의 슬로건에 맞아떨어지는 산업이었음을 이제 와서 밝히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지적이 될 수 있으랴.

그런 시대적 사회적 메시지와 무관하게, 마약을 둘러싼 범죄의 징글징글한 속성을 고발하며 , 결국 모두를 파멸시킨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읽더라도 새로울 건 없다. 이미 <사생결단>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들이 마약범죄의 징그러운 속성과 허망함을 모두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즉 <마약왕>을 통해 새롭게 얻을 메시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 “첫 끗발이 개 끗발, 첫 뽕이 개 뽕”

사실 메시지뿐만 아니라, 스타일 면에서도 새로움이 없다. 수많은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새로운 인물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검사 조정석의 연기는 안정되어 있지만, 광고 등을 통해 알려져 있는 자신의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영화의 뒷부분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송강호의 얼굴이 드러나는 몇 장면들이 존재하고, 조우진이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배두나와 김소진의 연기는 물론 훌륭했지만, 이들이 묘사한 캐릭터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로비스트 김정아가 아무리 멋져 보여도 결국 이두삼에게 성적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통해 그 남자의 ‘빻은’ 여성관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할 뿐이며, 마약왕인 남편에게 기죽지 않고 대거리를 해대는 부인이 강단 있어 보일지라도 그가 어떤 철학과 윤리로 살아가는 인물인지 알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을 총출동 시켰지만, 배우들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낭비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영화 <마약왕>은 대단한 기대를 품게 하였고, 전반부를 보는 동안 재미있다는 느낌도 주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허무감이 밀려온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요, 첫 뽕이 개 뽕”이라는 영화 속 격언이 얄궂은 자기실현의 암시일 줄은 감독도 배우도 몰랐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마약왕>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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