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삼분지계’ 선정 올해의 프로그램 - ‘전참시’·‘SKY캐슬’·‘거리의만찬’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상파는 여전히 고전했고, 비지상파는 한층 더 약진한 한해였다. 지상파가 파업 종료 후유증을 겪으며 방송 정상화를 위해 애쓰는 동안, 케이블과 종편은 예능, 드라마에서 연이어 히트작을 배출하면서 과거 지상파가 갖던 권력을 완전히 나눠 가졌다. 그럼에도 지상파가 시사교양 분야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서서히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인 일이다. 비지상파에서는 이미 대세가 된 tvN과 함께 양강 구도를 굳혀가는 JTBC의 활약이 가장 눈에 띈다.

TV 전체로 보면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과의 전쟁이 더 가속화된 한해였다. 내년에는 넷플릭스가 1월부터 최초의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킹덤>을 선보이고 유튜브가 자체 제작 콘텐츠 무료화를 선언하는 등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TV가 가진 여전한 힘은 과연 무엇일까. [TV삼분지계]가 2018년을 돌아보며 꼽은 ‘올해의 프로그램’들은 적어도 그 해답 중 하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 <전지적 참견 시점>이 보여준 새롭고 긍정적인 인간관계

2018년 한 해 동안 무수히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사라졌다. 하루라도 빨리 끝나길 바라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반대로 종영이 아쉬운 프로그램도 있었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은 비상의 순간 추락 위기가 왔으나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의 안일한 자세와 대처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입증한 경우이기도 하고. 그대로 막을 내리느냐 아니냐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사고의 수위로 봤을 때 중차대한 처벌이 마땅하나 그간 즐겨 시청해온 이들을 배려한다면 폐지가 답은 아니지 싶었는데 다시 돌아와 다행이다. 만약 거기서 멈췄다면 지금의 박성광 매니저 임송이나 이승윤 매니저 강현석은 보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전지적 참견 시점>은 스타보다는 매니저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덕에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늘 그 나물에 그 밥, 서로 밀고 끌어주는 인맥으로 얽힌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잡담에 질릴 대로 질린 시청자들이 새로운 인간관계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시청자들은 기존의 인기를 이끈 이영자 매니저 송성호를 비롯한 여러 매니저들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웃고 즐기는 예능 프로그램이 굳이 교육적이고 윤리적일 필요는 없지만 이미 우리는 헐뜯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폭로하는 장면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지 않나. 진심과 신뢰, 배려가 있는 긍정적인 인물을 통한 교육적 효과가 결국엔 지상파 방송의 차별점이 아닐까 한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SKY 캐슬], 지금 한국사회의 소름 끼치는 축소판

올해의 드라마는 수확량이 꽤 알차다. 비록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나 모두가 첫손에 꼽는 압도적인 걸작은 없었지만, 그 중간에 걸쳐진 수작들이 요 몇 년 사이 가장 풍성하게 쏟아진 한해였다. 대작 아니면 막장드라마로 양극화되던 드라마 시장에 다채로운 장르물을 선보인 OCN의 약진과 중장년층 취향의 웰메이드 드라마들을 통해 tvN과는 또 다른 독자적 브랜드를 형성 중인 JTBC가 선전한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수확 뒤에 열악한 제작 환경의 그림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성적표에 마냥 기뻐할 수 없게 만든다. 지난해 12월 tvN <화유기> 스태프 추락 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1월 넷플릭스 <킹덤> 제작 중의 스태프 사망, 8월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방영 중의 스태프 사망 등 연이은 비극적 소식은 방송 제작 환경 개선의 목소리를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는 절박한 신호다.



올해의 드라마로 JTBC [SKY 캐슬]을 선정한 것은 이 작품이야말로 지금 한국사회의 리얼한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최상급 성적표를 위해서라면 그 뒤에서 누군가 죽어 나가고 비명을 질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세상, 남을 밟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그 안에 소름 끼치게 재현되어 있다. 주인공들은 상위 0.1%의 최상류층이지만, 그들의 욕망은 한국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날 것의 그것이다. “증손자까지 대대로 SKY 캐슬에 쭉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그들이 지닌 기득권을 영구독점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슬 주민들보다 그들의 잘못을 거울에 비추려는 이수임(이태란)이 ‘오지라퍼’로 더 크게 욕먹는 바깥의 현실을 보면 더 확연하다. 수임이 교생 실습 시절 가르쳤던 학생이 죽어가던 날 유언처럼 남긴, “선생님 도와주세요. 저, 살고 싶어요”라는 문자는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에 보내는 구조신호와도 같다. 지금 그 목소리에 누가 귀 기울일 것인가.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거리의 만찬>, 목소리를 잃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다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그냥 시원하게 얘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좀 풀리지 않아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맘카페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말고 박미선은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 말은 KBS <거리의 만찬>의 존재 이유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문장이기도 하다.

KBS <거리의 만찬>은 한국사회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치부하고 넘어가거나, 애초에 존재 자체를 외면하려 했던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내는 걸 목표로 한 시사프로그램이다. 서울역 앞을 오가며 지겹게 보았던 KTX 승무원들의 천막이나, 무심코 지나친 지하철역 출구 앞 <빅이슈> 판매원의 조끼, 갑질로 점철된 공간이라 쉽게 악마화하고 넘어가버리는 온라인 맘카페와, 좀처럼 소리 내어 언급하길 꺼렸던 낙태 유경험 여성들의 눈빛 같은 것들을 <거리의 만찬>은 오래 곱씹는다. 물론 수치로 압축하면 더 빨리 설명할 수 있고, 온정의 눈빛으로 내려다보면 더 많이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리의 만찬>은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납작해지는 걸 최대한 피하기 위해 늘 당사자들의 곁까지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한 끼의 밥을 나눈다.



처음 <거리의 만찬>이 박미선, 김지윤, 김소영의 3인 여성 MC를 내세우며 “여성 중심의 시선”을 천명했을 때 조금은 우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감성적인 시 구절이나 배경음악을 활용하며 정서에 호소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여성적’이란 말을 ‘감상적’이란 의미로 오해하는 편견이 재생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거리의 만찬>은 절제된 표현 안에 당사자들의 입장을 풍성하게 담아내는 균형감각을 발휘하며 초반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객관과 거대담론이라는 명분으로 생략되기 쉬운 목소리들을 섬세하게 복원해 다시 공론의 장 위로 올려내는 태도는 “여성 중심의 시선”이란 말의 의미를 증명한다. 말할 기회를 빼앗긴 이들에게 제 목소리를 돌려주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폭력 대신 곁에서 같은 눈높이를 공유하고, 그를 통해 한국사회가 간과했던 것들을 다시 성찰해 보자고 설득하는 <거리의 만찬>의 태도는 눈부시다.

지역상인들과 맘카페 회원들을 차례로 만나고 돌아오는 길, 운전대를 잡은 박미선이 대화 끝에 말한다. “오늘 또 하나 배웠네. 우리 이제 어디로 가지…? 우리가 만나 주길 기다리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 주기를 바라는 분들. 만나러 가자고.” TV 너머의 우리도,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함께 배우고 느낄 일이 기다려진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JT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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