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윤·김유정·이세영, 맹활약 펼치는 아역 출신 좋은 연기자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아역’이라는 말은 사실 불필요한 수식어다. 성인 역할을 따로 지칭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럼에도 이 표현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것은 아역이 독립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성인 주인공의 어린 시절 모습에 머무르거나 기성세대의 편견이 고스란히 담긴 제한적 역할만을 떠맡는다. ‘잘 자란 아역 배우’라는 표현 역시 불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나, 연기자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환기하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일찌감치 톱스타로 자리 잡은 김유정에서부터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세영, 오승윤까지, ‘잘 자란 아역’ 출신 배우인 동시에 그냥 ‘좋은 연기자’들인 이들의 현재 활약을 살펴본다.



◆ <황후의 품격>의 오승윤, 이제야 내공 살릴 캐릭터를 만났다

SBS <황후의 품격>에서 과거 사고를 당한 황제 이혁(신성록)을 살리고자 태후 강 씨(신은경)가 수를 쓰는 바람에 황후 오써니(장나라)의 어머니가 숨졌다는 것을 알게 된 황태제 이윤(오승윤)은 크게 절망한다. 둘을 찾아가 사실 여부를 따져 묻지만 ‘별 일도 아닌데 웬 소란이냐’는 반응이었다. “당신들이 사람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최소한의 죄책감은 가지실 줄 알았는데요.”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방약무인일 줄이야. 이윤은 황실의 패륜을 낱낱이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붉어진 눈시울, 분노와 괴로움에 찬 포효, 허망한 탄식, 그리고 결단. 곳곳에서 빛나는 이와 같은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막장 코드 드라마 <황후의 품격>의 구동력이지 싶다.



극의 전환점이 될 결정적 장면을 완벽히 소화한 배우 오승윤은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에 불과하나 연차로 따지면 중견급에 달하는 연기자다. 2001년 SBS <여인천하>의 ‘복성군’ 역으로 이름을 알렸고 2002년 방송을 시작한 무려 496부작 KBS2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의 주인공 ‘마수리’를 맡아 인기도 얻었다. 본격 성인 연기는 2010년 KBS2 사극 <근초고왕>이고 그 이후 꾸준히 연기를 해왔지만 어린 시절만큼 주목 받지는 못했다. 그의 내공을 살릴 개연성 있는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번 이윤은 대한제국 승계서열 1위 황태제이자, 써니 치킨 호프의 알바이자, 얼굴 없는 추리 소설 작가 빈센트 리까지, 다양하다 못해 복잡하기까지 한 인물이다. 앞으로 이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나아가 오승윤이 이윤을 디딤돌 삼아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그의 미래가 궁금하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김유정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벽

1999년생 배우 김유정이 ‘미성년’ 꼬리표를 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멜로 연기로 따지면 이미 ‘대가’라는 표현을 붙여도 과하지 않다. 열 살의 나이에 여진구와 함께 성인 주인공들의 운명적 인연의 첫 순간을 연기한 SBS <일지매>가 그 싹을 보여줬다면, 2년 뒤 KBS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구미호와 인간의 딸로 태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달픔을 보여주면서 극의 메인 멜로를 담당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3년, 여진구와 다시 만나 역시 성인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MBC <해를 품은 달>에서는 판타지 로맨스 사극이라는 새 장르의 색깔을 규정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성인 시절로 넘어간 뒤의 이야기가 종종 김유정과 여진구가 그려낸 첫사랑의 후일담처럼 보일 정도였다. 김유정은 같은 장르인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주연으로 나서며 이미 앞서 완성된 멜로 연기에 코미디, 정치극 등 좀 더 다양한 폭을 더하게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첫 로맨스 드라마로 선택한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는 김유정이 ‘아역’ 시절 이후 앞으로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장애물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바로 로맨스물의 ‘여주인공 역할’이라는 한계다. 재벌가 출신의 청소업체 대표와 가난한 취업준비생의 사랑을 그린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로맨스다. 이 드라마에서 김유정이 맡은 길오솔은 빛나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설정만 평범하다고 우기는 ‘흔녀’이자 캔디 캐릭터로 출발해, 악연으로 만난 남자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 그의 일일 비서를 거쳐 급기야 입주 도우미가 되는, 로맨스의 클리셰 모음집 코스만을 착실하게 따라간다. 김유정의 경력과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장르에서는 남주인공에 휘둘리는 캔디렐라로 소비되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상대 남배우들이 모두 나이는 한참 연상이지만 연기 경력은 한참 아래인 후배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린이 배우들도 마찬가지지만, 여성 배우들도 좀 더 폭넓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시급하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주말사용설명서> 이세영,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 꺾기의 미학

“세영이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아?” 세상 독특한 후배들과 두루 방송을 해 본 김숙조차 tvN <주말사용설명서>에 오면 막내 이세영에게 화들짝 놀라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연예인이 소속사 사무실 한 켠에 자기 책상을 가져다 놓고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가 하면, 주말에는 혼자 집에서 멀쩡한 냉장고 위에 페인트칠을 하고, 라미란이 차려준 밥상을 다 먹고 배가 너무 부르다며 가쁜 숨을 쉬다가도 은근 슬쩍 주방으로 나와 믹스커피가 당긴다며 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이세영은, 확실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얼굴의 장르는 멜로인데 영혼의 정체는 한없이 비글에 가까운 그를 볼 때마다 언니들은 “너 다음 작품(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인데 이미지 괜찮겠어?”라고 묻지만, 이세영은 개의치 않는다. 지금 눈앞에 언니들이 좋고, 음식이 맛있고, 촬영이 즐거우면 됐지 무슨 상관이람.



돌이켜보면 이세영은 아역시절부터 그랬다. 마냥 되바라지기만 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겁이 많은 학생이었을 뿐인 <여선생 vs. 여제자>의 고미남도, 부잣집에서 자란 서울깍쟁이 전학생인 줄 알았지만 그 뒤엔 겹겹이 쌓인 사연이 있었던 <아홉 살 인생>의 장우림도, 지금 돌이켜보면 겉모습으로 지레짐작한 이미지들을 무참히 배반하는 캐릭터들이었다. 성인이 되어 연기한 <불타는 청춘>의 최소희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차 홍성에 전학 온 청순한 서울내기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어마어마한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지 않았나. 깍쟁이인 것 같았는데 사실 절절한 사연이 있고, 청순가련한 줄 알았는데 사실 한 가닥 하던 사람인 캐릭터들을, 이세영은 필모그래피 내내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건 어쩌면 자연인 이세영 또한 첫 인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건지도 모른다. 다 안다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으면 기습하듯 방향을 꺾어버리는, 그래서 매번 새로워지는 다채로움.

영화 <광해>를 리메이크한 tvN <왕이 된 남자>의 초반은, 아직 호평을 하기엔 껄끄럽다. 영화판에 비해 드라마에는 불필요한 폭력이 많아졌고, 영화판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들을 의무방어전처럼 재현하는 순간들은 다소 민망하다. 이세영이 맡은 중전 캐릭터 또한 한효주가 연기한 영화판 속 중전에 비하면 아직 하는 일이 우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섣불리 기대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 중전을 연기하는 사람이 전형적인 캐릭터일 거라 생각한 순간 보란 듯이 방향을 틀곤 했던 이세영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JTBC, 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