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의 교훈과 여운이 뜨겁게 남는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가며 ‘조선어 큰 사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의 실화를 재구성하고, 그들 사이에 김판수라는 허구의 인물을 주조해 넣어 극영화적인 재미를 살린다. 평범한 인물이 우연한 계기로 역사적인 각성을 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나, 그의 시각을 통해 사건을 봄으로써 관객의 친근한 접근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택시 운전사>와 비슷한 얼개를 갖는다. 실제로 <말모이>는 <택시 운전사>의 시나리오를 썼던 엄유나가 극본을 쓰고 직접 연출에 도전한 데뷔작이다. 영화는 유해진의 코믹하고 서민적인 이미지에 많이 기대고 있긴 하지만, 아슬아슬한 서사의 재미를 온전히 살려내는 것에 성공한다. 그 결과 위인전을 보는 듯 한 느낌을 피해가면서도, 실제 사건이 지닌 무게와 가치도 온전히 전하는 성취를 보여준다.



◆ 잡범 김판수, 조선어학회를 만나다

영화 <말모이>는 김판수(유해진)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는 극장 직원이면서 관객들의 주머니를 터는 좀도둑과 한패이다. 부정행위가 발각되어 해고 된 날,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월사금 독촉 편지를 받는다. 돈 구할 곳이 없는 김판수는 일당들과 함께 소매치기에 나선다. 돈 많아 보이는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들고 뛴 악연으로 김판수는 조선어학회 사람들과 만난다. 과거 김판수와 감방동기였던 조갑윤(김홍파)의 추천으로 조선어학회에 사환으로 취직하게 된 김판수는 일제의 눈을 피해 말모이를 만들고 있던 이들의 비밀작업을 돕게 된다.

김판수는 생계형 잡범에 까막눈이고, 싸움도 못하면서 허세나 부리는 인물이다. 아무 대나 침을 뱉는 무교양의 인물인 그가 조선어 사전을 만들고 있던 조선어학회에 별다른 견제 없이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조갑윤의 절대적인 신뢰 덕분이다. 그는 함흥교도소에서 자신을 일제의 교도관으로부터 여러 번 살려준 은인이라 말하며, 그가 나름 의리 있고 올곧으며 자존감이 강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의 신뢰가 그리 믿음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를 여전히 경계하며 “그의 전과가 우리의 전과와 같냐?”고 반문하는 류정환의 의심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유해진의 친근감을 내세워 관객들의 경계심을 슬쩍 낮춘다. 그가 한글을 익히고, 예쁜 딸래미를 앞세워 류정환의 마음을 녹이는 모습은 그대로 관객의 마음의 마음을 여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들의 신뢰를 단단하게 굳히기 위해 류정환이 김판수를 크게 오해하였다가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시퀀스를 담는다. 그가 집까지 찾아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동지”라고 쓴 잡지를 주는 모습은 뭉클하다. 영화는 류정환이 김판수를 동지로 받아들이는 성장의 서사로도 읽힌다. 즉 엘리트주의적인 운동권 인사가 자신의 편협함을 딛고, 단지 구호로 존재하는 민족(민중)이 아니라, 내 옆에 살아 있는 민족(민중)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과정인 것이다. 그 깨달음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김판수는 지방어 수집과 표준말 제정이라는 난제를 앞두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내어 이들을 돕는다.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표준말을 임의로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팔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공청회를 열고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물론 옳은 말이다. 같은 의미에서 학자나 교사들의 방언 수집에만 의존하지 않고, 김판수와 그의 친구들이 방언 모으는 작업에 합류한 것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영화는 어려움 속에서도 말모이 작업이 진척되는 것을 보여주지만,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조선어학회를 향한 탄압이 더욱 거세어진다.



◆ 실제 에피소드에서 따온 이야기들

영화 <말모이>는 십년동안 계속되어 온 이들의 작업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은 몇 번의 위기를 보여준다. 이 위기와 위기 극복 과정은 매우 극적이지만, 실제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이다. 말모이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1911년 주시경 선생과 제자인 김두봉 선생 등에 의해 착수되었으나, 1914년 주시경 선생의 작고와 김두봉 선생의 해외 망명으로 중단되었다. 당시 만들어졌던 원고 카드는 3.1 운동 이후 대부분 분실되었는데, 일부 남은 원고가 계명 구락부로 넘어가 1927년에 박승빈 등이 편찬사업을 이어가려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편 1921년에 창립되어 활동 중이던 조선어연구회에서는 1929년에 이극로를 비롯한 108명이 참여하여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였다. 1936년에는 조선어학회가 창립되어 사전편찬사업을 넘겨받았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1933년 주시경 선생의 원고를 들고 도망치는 류정환을 보여주고, 1941년 황해도 선생들에게 건네받은 원고를 건네받은 류정환이 경성역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주시경 선생의 작업이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사업과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제시한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건물은 조선어 책을 파는 서점이자, 잡지 <한글>을 펴내는 조선어학회 사무실이자, 몰래 사전편찬 작업을 하는 곳으로 꽤 넓은 공간을 지니는데, 이것도 1935년에 실제로 문을 열었던 화동 129번지의 조선어학회 회관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 밖에도 원고 분실을 염려해 원고를 한 벌 더 만든 것이나, 최현배 선생이 우리말본 원고의 보충 수정을 진행할 때 집안에 항아리를 묻고 뚜껑을 덮었던 일화도 실제로 기록되어 있다. 지방어의 수집을 위해 잡지 <한글>의 독자들과 방학 때 시골에 가는 학생들에게 의뢰한 것도 모두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경찰이 교사 정태진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여 전원 검거와 강제 해산으로 이어진 것인데, 영화는 경찰이 민선생(민진웅)에게 접근하여 거짓거래를 한 것으로 재현함으로써 실제 사건의 그림자를 암시한다. 체포된 33인 중에서 이윤재와 한징이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하였고, 이극로, 최현배, 정인승 등 핵심 인물들은 옥중에서 해방을 맞아 밖으로 나오게 된 것도 영화의 결말과 같다.

영화 <말모이>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인 분실된 원고가 발견 된 것 역시 역사적인 사실이다. 1945년에 분실된 줄로만 알았던 원고가 서울역 운송부 창고 속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함흥 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이극로, 최현배 등의 상고로, 재판의 증빙자료로 쓰기 위해 경성 고등법원으로 이송되던 서류가 전쟁 막바지에 일제가 도망감으로써 그대로 창고에 방치되었다가 후일 발견된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기막힌 역사적 사실에 허구의 인물 김판수가 도주하다가 창고에 가방을 숨긴 것이라는 상상을 덧입힌다.



◆ 이극로와 이름 없는 민초의 항일운동

영화 <말모이>는 아슬아슬한 고비를 통해 극적인 재미와 감동을 안기며,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첫째는 이극로에 대한 환기이다. 극중 류정환과 가장 가까운 실존인물은 이극로이다. 그는 중국과 유럽에서 유학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1929년에 귀국한 후 우리말 사수 운동에 앞장서 14년간 조선어학회를 운영하면서 사전 편찬을 이끌었다. 일제에게 징역 6년형을 선고 받고 함흥감옥에 복역 중 해방으로 풀려난 후 1947년에 ‘조선말 큰사전’을 발간하였으며,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을 주도하다가 1948년 평양에 남는다. 조선어학회 인물 33인 중 24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으나, 그를 포함해 3인은 월북을 한 탓에 대한민국에서 포상과 기림을 받지 못하였다.

영화 <암살> 이후 김원봉이 알려졌듯이, <말모이> 이후 이극로가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울러 해마다 한글날에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한글의 우수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조선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항일투사들의 삶을 조명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는 김판수라는 인물을 통해 평범한 이들의 항일을 조명한 것이다. 김판수에게는 몇 번의 도망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동지로 불러준 이들과 함께 최후를 맞는다. 영화는 <택시 운전사>에서 주인공이 차를 돌리는 장면에 해당되는 선택의 고비를 보여준다. 그리곤 클라이맥스에서 그와 류정환의 첫 만남이었던 소매치기 장면을 패러디하여 수미쌍관의 만듦새를 보여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단지 김판수가 서사의 양념이자 전달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류정환이 마침내 각성하게 된 ‘추상적인 민족(민중)이 아닌, 구체적인 민족(민중)’이다. 흔히 민족에게 헌신하겠다는 뜻을 세웠지만, 내 옆의 무식하고 냄새나고 게으른 조선인을 보면 무시하고 싶어지는 것이 엘리트적 운동가의 한계이다. 하지만 류정환은 자신의 오류와 오만을 깨닫고, 김판수를 동지로 받아들인다.



김판수는 항일 운동의 역사에서 지금껏 간과되어왔던 잡일과 보살핌노동을 담당해왔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표본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을 했던 쟁쟁한 지사들의 삶도 숭고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돌보고 자신의 자리에서 조력했던 이들의 헌신도 가치 있다. 이름 없는 인력거꾼, 비록 일제에게 월급을 받는 우체부 일망정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을 도왔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서만이 그동안 친일-항일 논란에서 지겹게 반복되었던 면피의 논리, 즉 독립 운동가는 극소수의 엘리트들이었고, 나머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친일을 했다는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마치 민중의 궁박한 처지를 이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지만 사실은 반민중적인 사고이다. 예컨대 극소수 엘리트들만이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논리야 말로 대단히 엘리트주의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또한 이러한 논리가 무엇을 방어하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 논리는 기득권층의 적극적인 반민족 행위를 민초들의 생계형 친일과 뒤섞어버림으로써 부일배들의 면피를 돕는다.



이들의 거짓 논리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름 없는 민중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저항을 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적게나마 저항을 해나가는 동안 민족반역자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탐욕과 출세를 위해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질러 왔음을 똑바로 알고 단죄해야 한다. 흔히 흑백의 이분법을 배격한다면서 섬세하게 회색의 지대를 탐문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민족반역자들의 분명한 죄과를 생계형 친일로 물타기 함으로써, 모든 것에 회색을 덧칠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이처럼 가치를 무차별화 시키는 방식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논할 수 없는 오류에 빠진다.

김판수는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조선어학회에도 그들에게 밥을 해주고, 비가 새는 지붕을 고쳐준 까막눈의 여성이나 노동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 동지가 되어 한 몸처럼 움직이다가 이름 없이 죽거나 고초를 겪은 이들도 어쩌면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잡범에 불과했던 그가 아이들에게 덜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대의를 따랐으며, 그가 아이들의 가슴에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았음을 보여준다. <반딧불의 묘>의 일본 해군 장교의 아들은 어린 동생과 함께 굶어죽었지만, <말모이>의 소년은 어린 동생과 함께 살아남았다. 김판수가 보여준 민들레 같은, 혹은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았을 것이다. 영화의 교훈과 여운이 뜨겁게 남는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말모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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