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용두사미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세계관과 드라마의 서사구조가 결합한 혼종인데다, 게임의 증강현실과 눈에 보이는 현실이 수시로 뒤섞이고,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의 이색적인 풍경과 메가시티 서울의 밤이 교차된다. 한국 판타지 드라마의 개척자 송재정 작가도 밝혔듯 ‘포켓몬 고’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슈퍼히어로물의 서사를 바탕으로 요즘 유행하는 <존 윅>과 같은 밀리터리 액션으로 풀어낸다. 여기에 우리나라 드라마 특유의 치정극과 로맨스까지 집어넣었다. 도전과 도전의 연속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다.

그런데 뒤의 두 가지는 넣지 않는 편이 더 깔끔할 뻔 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유명 투자회사 대표인 유진우(현빈 분)가 스페인 그라나다에 게임 개발자와 계약을 하러 가서 겪는 기묘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 실리콘벨리나 어바인, 핀란드, 아일랜드 혹은 판교나 가산디지털단지가 아니라 그라나다에 게임 개발자들이 있다는 것부터 신선함이 한 가득이다. 유진우는 게임 공동 개발자 정세주(찬열)의 누나 정희주(박신혜 분)가 운영하는 호스텔에서 지내며 연을 맺고, 이후 게임 속 세계에 갇히면서 스스로 미로를 탐색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 레벨업에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유진우의 시선을, 다시 말해 다양한 표정을 가진 현빈의 얼굴을 따라다니며 게임을 하듯 추리와 긴장을 느끼는 능동적 시청 체험에 열광했다.



그런데, 미지의 판타지를 그려내던 게임의 세계관은 레벨업이란 단순 미션으로 축소됐다. 더 복잡한 것은 현실에서다. 그를 축출하려는 차병준 교수(김의성)와 그 사이에 끼인 두 명의 전처와의 관계에다 새로운 애인과의 연애까지 마치 어느 차선으로 빠져야 할지 몰라 헷갈리는 인터체인지 같다. 1인칭 시점으로 달리던 이야기가 속도를 줄이고, 제3자의 감정과 치정 관계가 강력한 브레이크로 작용하면서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며 게임의 비밀을 파헤치던 유진우의 모험담은 렉에 걸린 것처럼 헛바퀴를 돈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서서히 유진우가 고난을 극복하고 안녕을 수호하며 예쁜 여자 친구를 얻는 고리타분한 영웅서사이자 미녀를 구원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스토리로 전환된다. 여주인공 정희주(박신혜)는 스페인에 유학을 왔다가 부모가 사망하는 바람에 가장이 됐다. 그런데 남자주인공 유진우를 만나면서부터 정희주라는 인물은 주체적인 삶은 사라진다. 오로지 유진우의 여자 친구로서만 존재의 가치, 사회적 위치를 갖는다. 캔디에서 신데렐라로 전환되는 고전적인 여성 캐릭터다.



기타를 만든다고 하지만 별다른 직업이 없고, 사내에 직함이나 역할이 없음에도 (전) 대표의 여자 친구 자격으로 늘 회사 중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남자친구를 기다리면서 걱정하거나 간호하는 게 대부분의 일상이며, 눈물은 의사표현의 한 방식이다. 그러다 뛰쳐나가서 대부분의 경우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곤 한다. 수습은 역시나 유진우의 몫이다. 얼마나 의존적인지 동생이 실종된 마당에 남자 친구 걱정에 맘 편히 하루를 살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러브라인을 꽃 피운 피팅룸 키스씬은 다른 의미로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피팅룸을 장시간 점거하며 피신하던 진우는 걱정하다 무작정 남자친구를 찾으러 나온 희주를 피팅룸 안으로 피신시키고 키스를 했다. 의도대로라면 감정선이 폭발하는 킬링포인트였지만 공공장소 사용 에티켓이나 답답함을 유발하는 여배우를 지켜보는 감정선 측면에서나 와 닿지 않는 장면이었다.



물론, 희주는 드라마 전반을 아우르는 매우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모른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휘할 여지도 없다. 차라리 동생을 찾아 나선 남자친구와 함께 총을 들고 나섰으면 좋았겠지만, 박신혜는 게임 광고의 여신처럼 미션완수를 상징하는 트로피 정도에 머물고 만다. 평면적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일까. 또래 여주인공급 배우 중 연기력으로도 톱 레벨에 있는 박신혜는 늘 한결같은 표정과 톤으로 질문하고 따지기만 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중반부까지 신나게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러브라인이 생기고, 치정극이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확장되면서 게임의 세계관은 축소되고 구태의연한 로맨스로 전환됐다. 판타지는 현빈의 얼굴 정도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이해가 쉽지 않은 건 시공간이 낯선 설정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시청 경험을 선사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너무나 익숙한 전개로 흐르면서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를 넘은 분량 늘리기 편집도 이런 갑갑함에 한몫을 했다. 모든 시청자들을 편집실로 초대하듯이 지난 주 봤던 장면들, 조금 전에 봤던 장면들을 변주해 반복 재생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넘었어야 하는 경계는 가상현실과 현실, 그라나다와 서울 정도면 충분했다. 게임의 세계관을 빌려와 신선한 시청경험을 선사하던 드라마가 케케묵은 로맨스로 전환되면서 실험과 구태가 뒤섞이는 또 다른 혼종을 경험하게 했다. 굳이 이 경계를 넘어야 했을까. 모든 것이 새롭고 도전적이면서 왜 신데렐라 스토리에 기댄 로맨스를 결합했을까. 결말보다도 오히려 그 이유가 더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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