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원정대의 하루, 살이’, 독립운동을 더 넓은 시야로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해다. 방송사마다 올해 라인업에 관련 특집 프로그램들을 예고한 가운데, [MBC 스페셜-독립원정대의 하루, 살이]가 먼저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다. 3부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박찬호, 김구라, 김동완, 강한나, 공찬 등 이 ‘독립원정대’로 분해 상하이 임시정부의 탄생 루트를 따라가며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삶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얼핏 흔한 역사 기행 예능을 닮아 보이지만, 그들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전에 걸어본 적 없는 새로운 역사적 풍경과 만나게 된다. 현재 3부 방송만을 남겨놓은 이 프로그램의 인상적인 여정에 [TV삼분지계]가 함께 동참해봤다.



◆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

마지막 3부 방송을 앞둔 [MBC 스페셜- 독립원정대의 하루, 살이]. 살펴보면 1부와 2부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박찬호, 김수로, 김동완, 강한나, 공찬 등 스타 5인을 적극 활용한 1부는 공항에 모여 수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필두로 이모저모가 여느 예능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특히 김수로가 너스레를 떨며 장사를 하는 장면은 그가 출연했던 타방송사 물건 파는 예능이 떠오르기도 했다. 예능 요소를 차용한 구성이 득이 될 수도, 반대로 실이 될 수도 있겠는데 또 해외여행인가, 또 먹방인가 싶어 채널을 돌렸다는 이도 있었다. 과거 애국지사들이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하셨다는 장사며 빨래 같은 일들을 체험해보자는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겉모양새로 인해 오해를 산 셈이다.

그러나 2부, 역사를 뒤흔든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의 발자취를 쫓으면서 분위기는 일변한다. 윤봉길 의사가 백범 김구 선생을 처음 만났다는 사해다관을 시작으로 거사 결행 전 함께 식사를 하고 시계 교환을 했다는 김해산의 집을 거쳐 거사 장소 홍커우 공원에 이르기까지, 걷고 보고 느끼며 독립원정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중국인들이 홍커우 의거의 뜻을 기리고자 세웠다는 기념비에 손을 얹고 묵념하는 김동완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족적을 담고 있지만 결국 이 방송이 전하고자 하는 얘기는 아마 역사에 오르지 못한 계획과 시도, 선열들에 대한 기록일 게다.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 곳곳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한 200만 명, 숱한 부상자와 체포자, 그리고 그로 인해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수많은 애국지사들. 아직은 부족하지만 지금이라도 짚어줘서 다행이다. 앞으로 ‘윤봉길 루트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따라 많은 이들이 길을 나서주길.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역사와 동시대가 나란히 걷다

보통 역사적 위인을 소재로 한 교양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생애, 업적, 신념 등을 조명하기 마련이다. [MBC 스페셜- 독립원정대의 하루, 살이](이하 <하루, 살이>)는 그러한 기존의 접근과 달리 생활인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나라를 잃고 이국에서 몇 칸 집을 임시정부청사라 명하며 셋방살이하는 동안, 그들은 어떻게 생활비를 조달하고, 무엇으로 끼니를 때웠을까. 소소해 보이지만 무척 중요한 문제들이 방송의 주 내용이 된다. 이러한 생활사적 접근이 역사책과 교과서 속에 박제된 위인들과 대중의 거리를 한층 좁혀준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이 같은 친밀한 접근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리얼 예능의 포맷을 차용한다. 1부 ‘독립자금을 벌어라’ 같은 경우는 시도는 신선했을지언정 다큐멘터리와 예능의 결합이 썩 매끄럽지는 않았다. 깜짝 미션의 콘셉트를 유지하려다 준비도 안 된 채로 상황에 투입돼 어색해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통해 미션의 의의를 공감하기란 어려웠다. 네 곳으로 흩어져 전개되는 산만한 미션 수행 과정도 몰입을 방해했다.

하지만 깜짝 미션 설정을 버리고 동선을 정리한 2부 ‘임시정부를 구하라’에서는 몰입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전후의 이야기를 그와 실시간으로 동행하듯 따라가는 구성은 그의 고뇌와 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손에 닿을 듯 실감케 했다. 의거의 그날, 윤봉길 의사가 걸어갔던 길 위로 현재 독립원정대의 모습이 겹쳐지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임시정부 100주년의 의의가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역사와 동시대, 그들과 우리를 나란히 걷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기술적 단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

완성도 면에서 보면 [MBC 스페셜- 독립원정대의 하루, 살이](이하 <하루, 살이>)를 아주 잘 만든 프로그램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일관성 없는 BGM의 사용과 투박한 편집리듬은 자주 몰입을 방해하고, 출연자들이 던지는 가벼운 농담들은 쇼 전체의 문맥에 섞이지 못하고 다소 겉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모두 셈하더라도 <하루, 살이>의 시도는 눈 여겨 볼 구석이 많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꾸리던 임시정부를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거사를 준비하던 투사들이 감내해야 했을 죽음의 공포와 그 숭고함을 먼저 떠올리지만, <하루, 살이>는 극단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던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를 지키고 자신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타향에서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구해 몸을 던져 일해야 했던 삶의 고단함을 먼저 이야기한다. 박찬호, 김수로, 김동완, 강한나, 공찬의 다섯 출연자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었던 초라한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세탁소나 가판대, 영화 촬영장 엑스트라와 일일교사 등의 다양한 일자리에 뛰어들어 일당을 벌며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간접 체험한다. 백산상회의 안희제나 중국의 영화황제 김염, 좌익계열 독립운동가 이화림 등 대중적으로 다소 덜 알려진 투사들이나 임시정부를 측면에서 지원한 지사들의 이름을 암기하듯 읊는 대신, 그들이 실제로 겪었을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몸으로 느낄 수 있게 유도한 것이다.

이는 독립운동을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겠다는 포부가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결과물이다. <하루, 살이>는 ‘상해임시정부 청사’라는 한정된 공간에만 집중하는 대신 상해와 충칭 지역 전체를 한민족이 독립을 준비하며 삶을 모색하던 공간으로 바라보며 물리적 시야를 넓히고, 독립운동에 나선 선조들의 말씀을 후대인들이 새겨듣는 선형적 서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박찬호의 강연 내용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재해석하는 프리즘으로 삼으며 적극적으로 과거를 향해 말을 건다. 눈에 밟히는 단점 때문에 놓치기에는 아까운, 썩 괜찮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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