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매혹적 아이디어 가득한데 연기력 빈곤은 어찌할꼬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2019년 최대의 기대작 <킹덤>이 드디어 공개됐다. 글로벌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답게 회당 제작비가 역대 최고 수준인 데다가 ‘믿고 보는’ 김은희 작가의 신작이다.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주지훈, 배두나, 류승용, 허준호, 진선규 등 출연진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작품에 쏠린 기대와 별개로, 거대 기업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시장을 잠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높은 것이 현실이다. 여러모로 최고의 화제작이자 문제작 <킹덤>, 그 구중궁궐의 심연을 [TV삼분지계]가 들여다봤다.



◆ 영상미를 따라잡지 못하는 연기

심한 정체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길 한 복판에서 넷플릭스 <킹덤> 옥외 광고 영상을 봤다. 예고편이 어찌나 강렬하고 흥미진진하던지 정체로 인한 짜증이 어느 정도 희석 됐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즌 1’ 6회 전편이 공개됐다. 사실 이 글은 총 6회 중 2회까지 본 소감이다. 다 보고 써야 옳지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셋이 쓰기로 합의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바로 접었을 게다. 한 주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지루하다 싶으면 앞으로 버튼을 클릭해도 되고, 아예 회를 건너뛰어도 되고, 넷플릭스의 장점이긴 하다. 어쨌거나 <킹덤>은 취향에 따라 호오가 엇갈릴 작품이다. 누군가는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부담스러울 테고 그와 달리 누군가는 덜 잔인하다며 아쉬워할 테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배우와 작가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봐주겠고 누군가는 결국엔 포기하겠고. 물론 만족스러워 하며 ‘시즌 2’를 고대하는 이도 있을 테고.



이처럼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모두가 같은 마음일 부분이 있다. 중전 역할을 비롯한 몇몇 배우의 연기다. 마치 한정식 상차림에 놓인 노란 단무지처럼 어색하니 어울리지 않는다. 화려한 영상미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지도 모르겠다. 방송분을 끝까지 보지 않고 쓰는 일도 드물지만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검색 창을 열기도 드문 일. 방송을 보기 전 예고편만으로, 혹은 작가나 배우에 대한 신뢰만으로 글쓰기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마치 쇼호스트 말만 믿고 덥석 사는 홈쇼핑 제품과 같다는 것을.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헬조선 서사의 정점

조선은 이미 아포칼립스다. 두 번의 전란이 휩쓸고 지나간 땅, 왕은 죽기 전부터 실세 해원 조씨 가문의 꼭두각시였고, 굳게 닫힌 궐문 밖의 백성들은 맞아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어간다. <킹덤>의 비극은 십여 년 전부터 유행한 인조, 선조 시대 사극 속의 ‘헬조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작품의 원안이 된 <신의 나라>가 김은희 작가의 2012년 드라마 <유령> 바로 전에 쓰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좀 더 맥락을 따라잡기가 수월하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백성들이 인육을 먹은 뒤 “사람들의 살과 피를 탐하는 괴물”로 되살아나는 좀비의 재앙은 이 헬조선의 비극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는 설정이다. 이 기이한 역병의 근원이 왕에게 있고, 그 질환이 한양과 가장 거리가 먼 조선 맨 끝의 땅에서 창궐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밑바닥 빈민들의 고통이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고 그 이후조차 ‘누더기 입은 천것과 비단옷 입은 사대부’ 시신으로 구분되어 천대받는 <킹덤> 속의 무간지옥은 헬조선 서사의 정점이다.



좀비물로서 <킹덤>만의 재미도 바로 이 헬조선의 토대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좀비가 된 백성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자 “잡것들이 양반을 공격한다”고 외치면서 도망치다 물려 죽는 사대부들,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읊어대는 “지체 높으신 어른들”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역병 등 공포를 넘어 분노, 실소 등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하이라이트 신은 조선 최고 실세 조학주(류승용)가 대신들 앞에 왕의 실체를 공개하는 장면일 것이다. ‘나라의 근간’은 오래전부터 썩어있었다. <킹덤>은 그 증후로서의 좀비물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매혹적인 아이디어가 가득한데, 잘 안 꿰인다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동시 공개되었지만, 넷플릭스 <킹덤> 시즌1의 설정들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건 한국인 시청자일 것이다. “조선시대 역병처럼 번지는 좀비 바이러스”라는 기본 소재나 “백성을 아끼는 왕자님이 참된 군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익숙한 사극 코드도 매력적이지만, 김은희 작가가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적 순간들을 직설적으로 녹여내는 대목들은 동시대 한국인들이 아니면 그 맥락을 100% 파악하기 어렵다. 동래의 위정자들이 백성들을 내버리고 자기들만 배를 타고 피신하는 장면에서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이나 한강다리를 끊어 국민들을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 대통령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당한 방식으로 정권을 찬탈한 조학주(류승룡)와 계비 조씨(김해준)가 경상도를 ‘역병의 땅’이라 선언하고 군사를 풀어 경상도를 봉쇄하는 대목쯤 되면, 김은희 작가가 품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야심이 생각보다 거대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동시에 이 매혹적인 설정들이 잘 꿰이지 않았다는 점에 가장 고통스러울 시청자 또한 한국인 시청자들일 것이다. 자국의 언어로 더빙된 버전으로 <킹덤>을 즐길 타국 시청자들은 눈치채기 어렵겠지만, 현대극과 사극 말투 사이를 오가는 한국어 대사는 자꾸만 몰입을 방해한다. 사극이 처음인 배두나만 연기가 어색하다면 배우의 문제겠지만, 사극이 처음이 아닌 김상호조차 대사 처리가 어색하다면 각본과 연기지도의 문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4K 화질에 맞춰 섬세하게 재현된 의상들과 건축양식의 디테일에 비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더더욱 보수적으로 경직된 조선시대 사회상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언어생활은 좀처럼 재현이 안 된 셈이다.

45분짜리 에피소드 6편으로 구성된 시즌1이 작은 안티 클라이막스 뒤에 이어지는 클리프행어로 끝난다는 점 또한 <킹덤> 시즌1의 아쉬운 대목이다. 세자 이창(주지훈)이나 의녀 서비(배두나)의 캐릭터 모두 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기능적인 역할만 수행할 뿐 입체적인 캐릭터 빌딩이 채 덜 된 채 시즌을 마무리하고, 장르적 쾌감 역시 이제 좀 본격적인 좀비 아포칼립스물이 진행되려나 싶은 순간에서 멈춘다. 시즌1이 끝났다는 충족감 대신 ‘기-승-전-결’에서 ‘기-승’까지만 듣고 만 것 같은 갈증이 남는 것이다. 박하게 평을 하자니 매혹적인 순간들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호평을 하자니 이래저래 아쉬운 미완의 시즌이다. 다음 시즌엔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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