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타블로·슈가의 크레마 같은 ‘신청곡’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이소라, 에픽하이, 방탄소년단(BTS)은 각기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 이후에 데뷔했다. 언뜻 보기에 이들은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시대가 다를 뿐 아니라 음악적인 성향 역시 겹치는 부분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소라는 <낯선사람들1집>과 영화 <그대안의 블루>의 주제곡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특유의 감성적인 목소리와 그에 어울리는 노랫말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2003년 첫 앨범을 발표한 에픽하이는 사색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다른 힙합그룹들과 차별화되는 음악세계를 보여주었다.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방탄소년단은 2018년 현재 최고의 K-팝 아이돌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각기 다른 필드에서 고유의 개성을 지닌 이들이 노래 한 곡에 힘을 실었다. 이소라의 신곡 <신청곡>이 그것이다. <신청곡>은 이소라의 보컬에 ‘에픽하이’ 타블로가 음악을, 그리고 타블로와 ‘방탄소년단’ 슈가가 노랫말을, 거기에 슈가의 랩이 곁들여진 노래다.

처음에는 각기 개성이 너무 뚜렷한 이들이 함께한 블렌딩이 어떨까 궁금하면서도 의아했다. 묵직하고 대단한 곡이 나올까 궁금하다가도, 향이 달라도 너무 달라 이도저도 아닌 스타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신청곡>은 이러한 기대와 걱정의 잣대를 벗어나 있다. 언뜻 듣기에 <신청곡>은 우리가 예상하는 신청곡의 느낌 그대로다. 내가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신청한 듯, 들으면 마음에 와 닿는 라디오에서 들리는 그런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다. 세 사람의 에너지가 농축된 묵직한 에스프레소 질감보다 에스프레소 위의 크레마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노래인 것이다. 이소라와 타블로, 슈가 모두 본인들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최대한 힘을 빼고 이 노래 위에 마음을 실은 것이다.

<신청곡>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에픽하이에서 느껴졌던 타블로의 서정적인 멜로디 감수성이다. 아마도 에픽하이의 팬이라면 이 곡의 전주에서부터 타블로의 향취를 맡았을 게 틀림없다. ‘가슴이 답답한 밤에 나 대신 울어줄 그를 잊게 해줄 노래’라는 노랫말에 이르면 서정성과 아이러니가 어우러진 타블로의 가사 작법 손길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타블로의 향이 감도는 음악 위에서 이소라는 유영하듯 부드럽게 노래한다. 인간의 비통함과 애절함을 헤집는 노랫말을 쓰는 이소라는 <신청곡> 가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소라는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격하게 아끼는 그녀의 비탄어린 목소리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에 이소라는 <신청곡>의 멜로디와 노랫말 위를 편안하게 유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소라 특유의 풍부한 감성의 기포는 살아 있다.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smile’과 ‘to make me cry’를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게 넘나들 수 있는 감성의 톤인 것이다. 그 때문에 <신청곡>은 슬프지만 너무 우울하지 않게 위로의 감성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신기하게도 <신청곡>의 유니크함을 담당하는 것은 타블로나 이소라보다 슈가에게 주어졌다. <신청곡>에서 슈가는 ‘신청곡’의 입장에서 말하는 듯 재밌는 랩 파트를 맡았다. 그런데 슈가의 랩에서 느껴지는 톤이 마냥 달콤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약간 쌉쌀하거나 까끌까끌한 질감이 있다. 그 질감으로 ‘난 누군가에겐 행복 누군가에겐 넋/누군가에겐 자장가이자 때때로는 소음’이라고 튕겨줄 때 <신청곡>의 풍미는 달라진다. 특히 그의 까끌까끌한 음색은 레코드판의 지글대는 소음처럼 다가와 디지털시대의 <신청곡>에서 아날로그적인 포근함을 만들어준다. 슈가가 마지막으로 읊조리듯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는 ‘가끔 기대어 쉬어가기를’은 이런 특유의 질감을 압축하는 동시에 <신청곡>이 가진 독특한 풍미를 보여주는 순간이기도하다.

이처럼 <신청곡>은 타블로의 감성, 이소라의 보컬, 슈가의 매력이 어우러진 이 겨울에 듣기 좋은 따뜻한 노래다. 하지만 역시나 이들은 그 따뜻한 감성을 상투적인 다독임으로 끝내지 않는다.

<신청곡>의 끝에 이소라는 ‘창 밖에 또 비가 와/이럴 땐 꼭 네가 떠올라/잠이 오지 않아’라고 노래한다. 이어 이 노래의 마지막 파트는 ‘난 어쩔 수 없나 봐’라는 낯선 전개와 그에 어울리는 이소라의 담담한 보컬로 끝을 맺는다. 대개 위로의 노래가 편안한 마음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신청곡>은 라디오의 신청곡이 끝난 이후에도 노래의 화자는 여전히 헤어진 상대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노래의 처음과 마지막 감성의 결이 다르다. 어쩌면 노래의 화자는 이제 담담하게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처럼 <신청곡>은 헤어진 이를 잊지 못하는 멜랑콜리한 감성에서 시작해, 신청곡을 통해 위로의 감성에 푹 젖었다가, 스스로를 담담하게 돌아보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 과정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이소라, 에픽하이, 방탄소년단이 사랑받았던 대표적인 코드는 바로 위로였다. 그들의 음악에 위로받고 공감한 마니아적인 팬들을 통해 세 사람은 오랜 기간 사랑받아왔고, 열렬히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신청곡>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받아왔던 세 사람이 함께 만든 선물 같은 노래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에르타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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