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와 ‘킬빌’ 통해 본 지상파 예능의 적나라한 현주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목요일 밤 예능은 지상파 채널의 몰락, 조금 더 유하게 말하면 방송 콘텐츠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지상파 콘텐츠의 현재를 보여줬다. KBS2 <해피투게더>는 지난 2년간 최고의 드라마로 꼽힐 것이 분명한 JTBC ‘SKY 캐슬’에서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들을 섭외했다. 타사 드라마를 통째로 가져와 특집을 마련했다는 점이 이색적인 만큼 시청률도 지난 주 대비 2배 정도 되는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평소 <해피투게더>가 쌓아온 재미에 대한 신뢰라기보다 반가운 이들의 또 다른 얼굴, 궁금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 결말, 내일이면 ‘캐슬’에서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만든 결과다.

타사 프로그램을 전면으로 내세워 다뤘다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에 비판을 받을 만한 기획은 아니다. 열린 마인드라 볼 수도 있다. 다만, MC들이 코스프레 분장을 하고, 오프닝을 패러디 콩트로 여는 진부한 출발부터 시작해 스캔들과 친분 관련 에피소드, 촬영장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진부한 MC 주도 토크는 질문이나 토의가 없는 교실 풍경처럼 전혀 신선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SKY 캐슬’의 인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의도가 너무 뚜렷해서 예의를 잃었다.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사랑받은 드라마가 마지막 방송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곽혜나설’의 진위여부 등 시청자들이 설왕설래하던 결말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니 ‘SKY 캐슬’ 시청자 입장에선 반가운 마음에 방송을 보다가 일종의 스포를 당한 셈이다.

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을 때 관련 특집 프로그램이나 기획을 통해 들었음 훨씬 좋았을 이야기가, 종영 하루 전에 타방송사 예능에서 미리 들으니 김이 새는 분위기다. 이제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있고 인기와 관심도가 비교불가인 ‘SKY 캐슬’ 입장에서 도움 받을 일은 적어 보인다. 물론, 대부분 예능 출연이 처음인 신인 배우 입장에서 지상파 예능에 얼굴을 비춘다는 것은 좋은 기회다. 노련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지만, 국내 최고 MC라 꼽히는 유재석과 전현무가 버티고 있는 프로그램이란 점을 감안하면 JTBC는 물론이고, ‘SKY 캐슬’ 시청자들에게 실례가 된 특집이었다.



그러는 사이 MBC는 죽음의 땅 목요일에 또다시 도전장을 냈다. 이번엔 힙합을 내세운 음악 경연쇼다. 그런데 <킬빌>이라니 제목부터가 문제다. 빌보드 차트를 점령시키러 출격할 ‘한국 힙합전사’를 뽑는 서바이벌이라는 기획이란 뜻을 담은 킬 빌보드의 준말이지만, 그런 언어유희에 웃어줄 사람보다는 즉각적으로 우마 서먼이 떠오르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어디서 확실히 본 듯한 인상은 1회를 시청하면 보다 더 명확해진다.

분명 <나가수> 힙합 편을 떠올리며 국내 최정상급 힙합 가수들 간의 경연을 내세웠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힙합과 서바이벌쇼는 이미 전혀 새로운 조합이 아니다. 검은색 가죽 쇼파가 놓인 스튜디오 디자인부터 나름의 스웩과 디스 발언을 교차 편집하는 스타일까지 엠넷의 <쇼미더머니><언프리티랩스타><고딩래퍼> 등 CJ표 힙합 서바이벌을 통해 숱하게 봐온 장면들이다. 출연진 면면만 봐도 양동근, 도끼, 제시, 산이, 치타, 리듬파워, 비와이까지 모두 위에서 열거한 서바이벌쇼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어 스타가 된 뮤지션이다.



따라서 자막으로 ‘무대 하나하나가 레전드일 예정’이라고 썼으나 바람으로 남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힙합은 엠넷이란 프리즘을 거치면서 보다 대중적인 장르이자 산업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대표 힙합 뮤지션을 섭외했다고 하지만 엠넷의 자장권을 넘어서거나 비껴선 새로운 인물도 없었고, 한국 힙합의 지형도나 경향을 보여줄 만한 그림도 아니었다.

각기 개성 있는 레이블간의 대결과 같은 뚜렷한 경쟁구도를 갖춘 것도 아니고 공연 무대와 음향에 투자해서 음악성이나 무대 집중도를 높인 것도 아니다. 어색한 블러 처리가 가장 눈길을 끈 효과였다. 서로 디스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연 예능 특유의 긴장이나 갈등과 같은 예능의 스토리라인도 매우 약하고, 어색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목표 설정의 개연성과 진정성이 없다보니, 경연 예능 특유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한 매체의 취재 보도에 따르면 빌보드 관계자들은 “오로지 빌보드 차트 입성만을 목표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콘셉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밑도 끝도 없이 미국 빌보드를 점령한다는 자체부터 엠넷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온 것까지 관에서 기획한 청춘 페스티벌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출연자 중 가장 거물인 도끼는 얼마 전 천만 원 발언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고, 산이는 페미니즘 이슈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마음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전무하다.

장안의 화제에 편승하기 급급했던 KBS2 <해피투게더>나 엠넷 자체도 정제가 필요한 시기에 생뚱맞은 목표의 힙합 서바이벌쇼를 내세운 MBC <킬빌>는 위태로운 지상파 예능 콘텐츠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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