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부록’, 어째서 이나영·이종석의 팬픽처럼 보일까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토일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마치 로맨스는 부차적이고 심지어 사치인 양 경단녀 강단이(이나영)가 겪는 경력 단절녀 이른바 ‘경단녀’의 현실로 시작했다. 한 때는 광고회사에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이었지만 결혼 생활로 7년, 이혼 후 지낼 집도 없는 상황에 해외에서 유학하는 아이까지 챙겨야하는 상황. 일자리가 절실하지만 그의 경력은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력서를 50군데 넘게 쓰고 떨어지길 반복하다 우연히 어린 시절부터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알게 된 동생 차은호(이종석)가 편집장으로 있는 도서출판 겨루에서 신입 계약직 사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학력 경력을 모두 지워버린 채 지원해 합격한다. 차은호는 잡일을 해야 하는 그 취업을 반대하지만 강단이는 ‘1년짜리 잡일 전담 고졸 계약직’도 감지덕지다. 실제로 고학력자 경단녀가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이 드라마는 그 도입부분에 보여준다. 이 경단녀의 눈물 마를 날 없는 현실에 로맨스란 사치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하지만 로맨스가 ‘별책부록’이라는 제스처는 여기까지다. 결국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연상연하 로맨스의 공식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냥 버티며 지내던 다 무너져가는 집이 결국 철거되어 버리자 갈 곳이 없어진 강단이는 차은호의 넓은 집에 숨어 지내다 들키고, 사정을 알게 된 차은호는 하나하나 강단이를 챙겨주기 시작한다. 자신의 회사에 입사한 강단이에게 버리는 옷인 것처럼 꾸며 옷을 사주고, 창고 같은 방에 지내던 강단이를 위해 방 하나를 제대로 꾸며 그를 지내게 한다.

물론 강단이는 전혀 로맨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첫째가 해외에 있는 아이이고 둘째가 일이라고 말하지만, 같이 지내게 된 차은호는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그가 아주 오래 전부터 강단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려나간다. 술만 취하면 괜스레 다른 남자와 결혼한 강단이의 집을 습관처럼 찾아갔었다는 사실을 담아내고, 이제는 더 이상 그 집을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제 그가 자신의 집에 함께 살고 있으니.



그래서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며 어딘지 경단녀의 현실이나 그가 다니는 출판사를 둘러싼 책 만드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담길 것 같았던 드라마는 이제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 뻔하고 흔한 로맨스 드라마, 그 중에서도 연상연하 커플 이야기의 공식을 보여주는 것. 동생이지만 베스트셀러작가에 출판사 편집장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차은호가 있고, 경단녀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줌마렐라인데 전혀 이혼한 아주머니라고 생각할 수 없는 비주얼의 강단이가 있다. 동생은 좋아하지만 누나는 동생을 어떻게 좋아하냐며 부정하다가 점점 남자로 다가오는 동생에게 빠져든다.... 뭐 이런 공식이다.

게다가 삼각관계다. 우연히 비 오는 날 잃어버린 구두를 찾아준 인연으로 만나게 된 지서준(위하준)이 또 한 축의 로맨스다. 강단이는 그런 인연 이후 우연을 통해 다시 동네에서 지서준을 만나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동네 친구’가 된다. 그런데 지서준 역시 잘 나가는 북디자이너다. 누가 봐도 신데렐라 판티지지만, 여기서도 강단이는 이를 부정한다. 그럴 여유가 자신에게는 없다고.



즉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이는 강단이다. 하지만 차은호와 지서준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게다가 출판사의 송해린 대리(정유진)는 은근히 차은호를 좋아해온 눈치다. 이러니 로맨스 공식의 대부분이 완성된다. 어느 새 경단녀의 현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출판사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이를 테면 파지가 되는 책의 운명이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이사 같은) 그게 그렇게 심도 있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놀라운 건 이토록 반복되어온 로맨스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뻔한 공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건 다름 아닌 강단이 역할을 하는 이나영과 차은호 역할을 이종석의 현실감 없는 비주얼이다. 만일 이나영과 이종석의 팬이라면 이 드라마는 한 편의 ‘팬픽’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팬이 아니라도 이런 비주얼의 배우들이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 장면에는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정도니.



특히 이나영은 마치 이 드라마의 경단녀 강단이처럼 한동안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이렇게 변함없이 그 비주얼을 유지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과거에는 어딘지 딱딱한 인형 같은 비주얼이었지만(아마도 그런 연기를 보여줘서 그랬을 게다) 지금은 훨씬 자연스러워진 모습까지 더해져 이젠 따뜻함과 원숙함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경단녀의 현실을 너무 쉽게 줌마렐라 판타지로 처리한 드라마의 내용에 불편해지다가도 이나영의 아름다운 비주얼과 따뜻한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게 된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아쉬움이다. 대본만 좀 더 현실감각을 더하고, 지금의 젠더 감수성을 제대로 담아내려 했다면 ‘불편한 감정’ 없이 드라마에, 또 이 배우들에 빠져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별책부록 정도가 됐으면 딱 좋았을 로맨스가, 흔한 공식(그것도 퇴행적인 남녀관계를 보여주는)을 따르는 본권이 되면서 드라마는 배우들의 비주얼의 힘만 오히려 실감하게 만드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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