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상씨’, 이야기는 신파지만 유준상의 연기는 신선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왜 그래 풍상씨>의 테마곡은 1991년 조용필이 부른 <꿈>이다. 배우 유준상이 연기하는 드라마의 주인공 풍상씨는 마흔일곱 살, 아마도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풍상씨는 공고를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풍상씨는 이 노래의 노랫말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빌딩 속을 헤매다/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라는 가사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마흔일곱 살 풍상씨는 간암 선고를 받은 후 어린 시절 하도 먹어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국수를 꾸역꾸역 먹는다. 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자기도 행복해지고 싶어 먹었다면서.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국수를 먹으면서 풍상씨는 펑펑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때 묻은 점퍼를 입은 모습으로 강가에 앉아 멍하니 도시를 바라본다.

사실 <왜 그래 풍상씨>는 2.5배속으로 빨리 감는 신파극이다. 홀어머니가 도망친 이후 이풍상(유준상)은 네 명의 동생을 건사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야 <왜 그래 풍상씨>를 보지 않는 시청자들도 모두 짐작할 수 있다. 풍상의 노력과 상관없이 가지 많은 집이 바람 잘 날이 없다.



동생들은 이런저런 사고로 풍상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물론 동생들도 억울함이 없는 건 아니다. 말 안 듣는 여동생 이화상(이시영)은 똑똑하고 야무진 쌍둥이 이정상(전혜빈) 때문에 더 엇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유일하게 반듯한 동생인 이정상의 약점 불륜을 까발려 그녀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 대학입학금을 도박판에 잃은 이진상(오지호)은 그 이후 풀리는 일이 없다. 막내 이외상(이창엽)은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조폭과의 싸움 때문에 부상으로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결국 건달 노릇까지 하게 된다.

카센터를 운영하는 풍상은 이 동생들을 모두 건사하려 노력한다. 물론 동생들 신경 쓰는 일 때문에 아내 간분실(신동미)은 덩달아 고생이고, 딸 이중이(김지영)는 가정에 관심 없는 아빠를 벌레 보듯 한다.

문영남 스타일의 신파극은 2005년 최진실 주연의 KBS <장밋빛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들 때문에 풍파를 겪은 주인공이 암이라는 병 때문에 우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주 플롯이다.



이 진부한 신파극 <왜 그래 풍상씨>의 이야기가 딱히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수많은 신파적 요소와 자극적 요소를 개그감에 버무려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그래 풍상씨>는 가슴을 턱턱 치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 그것은 대부분 배우 유준상이 보여주는 ‘풍상씨’ 덕이다. 유준상은 늘 반복되어온 희생하는 맏형의 얼굴을 시대에 맞는 얼굴로 신선하게 그려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풍상은 분명 마흔일곱의 중년이다. 하지만 풍상의 입매와 표정에는 아직 겁먹은 아이의 얼굴이 남아 있다. 어떤 아이들은 제대로 어른이 되기 전에 어른의 역할을 홀로 해야 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동생들을 길러야 했던 풍상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무너지면 동생까지 죽는다는 생각으로 일만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아이의 표정이나 마음이 그의 안에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남아 있다. 그 때문인지 풍상은 믿음직한 맏형의 롤보다 구부정하고 어설픈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준상은 그 디테일들을 코믹하면서도 애잔하게 그려낸다.



또 <왜 그래 풍상씨>에는 유달리 주인공이 엉엉 우는 장면들이 많다. 유준상은 그런 장면들에서 보는 이를 먹먹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른 남자배우들처럼 처절하게 울거나, 멋있게 울거나, 쓸쓸하게 울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유준상의 풍상은 덜 자란 소년처럼 입매를 찡그리고 아이처럼 운다. 그 울음은 풍상의 내면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의 슬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순간들이다. 수많은 맏형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우는 맏형은 없었다. 비록 캐릭터 자체는 신파에서 태어났지만 배우 유준상은 이 캐릭터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한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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