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로 옮긴 ‘정글의 법칙’이 살아남기 위한 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금요일 밤이 예능의 황금어장이 된 건 나영석 PD의 공만이 아니다. 아무도 TV를 보지 않는다는 편견 속에 오랫동안 방치된 금요일 밤을 예능의 장으로 탈바꿈한 건 김병만과 <정글의 법칙>이다. <나 혼자 산다>가 나름의 굴곡진 역사를 쌓고, 나영석 사단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2011년부터 지금까지 늘 그 자리에서 최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 <정글의 법칙>이 토요일로 편성되면서 최대의 변화에 직면했다.

초기 <정글의 법칙>은 현대문명이 단절된 오지에서 살아남는다는 모험담의 성격이 강했다. 탁 트인 대자연은 쳇바퀴 굴리듯 갑갑한 일상, 미래는 딱히 밝지 않은데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책무와 같은 아등바등 살기도 벅찬 현실의 번민을 한순간에 왜소하게 만들었다. 반면 깨어나는 생존 본능은 리셋과 리프레쉬라는 측면에서 정서적인 감흥을 선사했다. <정글의 법칙>은 예능에서 웃음이 아닌 볼거리와 정서적 충족을 통해 재미를 전달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대 유행했던 아웃도어 열풍을 타고, 부쉬크래프트, 생존 같은 키워드들이 많은 관심을 얻었던 것과 <정글의 법칙>이 최고의 인기 예능으로 올라선 것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 후,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정글의 법칙>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생존을 내건 모험담은 쿡방과 김병만의 리더십 스쿨에 가깝게 변화했다. 초창기에는 병만족이라 하면 리키 김이나 노우진, 강남 등등 고정 멤버와 게스트가 균형을 이뤘으나 오래전부터 김병만을 제외하고 매 여행마다 게스트들이 합류한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함께하던 방식도, 생존지마다 새로운 멤버들이 교체되는 선후발대 방식으로 달라졌다. 그러면서 <정글의 법칙>은 모험의 강도를 낮추고 레저에 가까워졌다.

김병만과 함께하는 체험의 성격에 맞게 스토리텔링 또한 변화했다. 집을 짓고, 불을 여러 방법을 동원해 피우는 것은 이제 잠시고 대부분의 시간이 사냥과 채집, 엑티비티 그리고 척박한 상황에서도 얼마나 맛있는 요리를 해서 먹느냐는 데 할애한다. 특히 낚시를 내세우는 이태곤, 지상렬과 이연복 셰프가 함께한 로타섬의 여정은 더욱 초점이 먹을거리에 맞춰졌다. 지난주 방송에서도 김병만은 어린 출연자들이 “자연에서 생활하는 경험이 없을 테니 비박을 결정했다”고 말했는데, 이런 식의 체험 위주의 진행이 가능한 것이 오늘날 <정글의 법칙>의 특징이다.



따라서 예능의 틀로 봤을 때 정글에서 보내온 에피소드들은 새롭지도 놀랍지 않다. 생존을 내건 진정성도 다소 퇴색되었다. 그럼에도 온 가족이 즐겨볼 수 있는 볼거리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김병만이 안내하는 대리체험의 휴가 덕분이다. 휴양지에 가야만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대자연의 풍경에는 일탈의 정서가 유효하고, 생존을 위한 활동에는 보이 스카웃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성 출연자들은 몸매를 노출하며 ‘여전사’로 보여지길 원하고, 자막에서는 매번 긴장감을 조성하며 최고난도의 모험을 강조하는 진부한 구석도 물론 있지만, 김병만의 존재는 모든 단점을 덮는다. 비록 판 자체는 꾸며진 울타리일지라도, 그의 신체 능력, 생존 기술, 리더십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언제나 믿음직한 족장의 능력은 <정글의 법칙>이 장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다.

그런 <정글의 법칙>이 지난 8년간 닦아온 금요일을 떠나 토요일 밤 9시로 자리를 옮겼다. 2월 개편을 맞아 SBS가 지난 주말부터 금토 밤 10시에 금토드라마를 신설하고, 그 일환으로 <열혈사제>를 편성하면서 벌어진 연쇄 이동이다. 덕분에 점점 소박해지고 있는 토요일 편성표가 단숨에 묵직해졌다. 동시간대 방영 중인 JTBC <아는 형님>과 맞붙게 되면서 지상파와 비지상파 예능국간의 자존심 대결을 벌이게 됐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 입장에서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이웃 지상파 채널이다. 완전히 맞물리지는 않지만 같은 시간대에 KBS2는 시청률 40%대를 노크하는 현존하는 최고 인기 TV콘텐츠인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이 있고, MBC의 주말드라마 시간과도 일정 부분 겹친다.



<정글의 법칙>은 이런 여파로 인해 시간대를 옮기면서 직전에 15%를 넘겼던 시청률이 9%대로 내려앉았다. 지난 1월 25일 아시안컵 중계로 인해 한 자릿수로 내려온 적 빼면, 두 자릿수를 기록하지 못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편성 변경하고 첫 방송 성적이니 위기의 시그널이라 볼 순 없지만 그만큼 편성 변경이 모험이고 도전이란 이야기다. 익숙함과도 결별이고, 상대의 성격도 달라졌다. 분량도 축소됐다. 이런 환경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성적을 거두기 위한 관건은 온가족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다. 이 기회에 <정글의 법칙>도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나서는 건 어떨까. 김병만도 좋고, 대자연의 풍광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매번 똑같은 정글 먹방은 조금 지쳤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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